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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이명희 교수] 팬데믹 이후 교회와 목회의 회복을 위한 원리와 전망  (1)

[특별기고-이명희 교수]   팬데믹 이후 교회와 목회의 회복을 위한 원리와 전망  (1)

온 세상은 지금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 ‘포스트 코로나’ 또는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어 엔데믹 상황으로 나가고 있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이제 코로나 이전인 BC(Before Corona)와 코로나 이후인 AC(After Corona)로 구분될 것이라고 썼다. 일부에선 코로나 대신 질병(Disease)을 붙여 코로나 이후를 아예 AD(After Disease)로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인식하였다. 우스개 말이기도 하지만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구호가 모든 것을 대변해주었다.

팬데믹 발생 3년째다. 터널의 끝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 인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영원히 함께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이를 계기로 재난이 일상화되는 불안감마저 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상이 상식 밖으로 불확실해졌다는 점이다. 모두 이 바이러스가 세상을 엄청나게 바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인류는 이미 14세기 유럽 흑사병, 1918년 스페인 독감 이후로 세계 문명이 대전환되는 것을 경험했다. 코로나19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코로나 전염병이 건강은 물론 사회생태적인 재앙이지만 영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결과로 여겨졌다. 이제 3년 세월이 흐르면서 인류는 의학적으로 상당 부분 극복하였고, 어느 정도 조정 가능한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코로나 이후를 생각해야 할 시기이다. 코로나 상황에서의 회복을 말할 때 그 이전으로의 완전한 복귀는 어렵고 진일보하는 새로운 단계로의 나아갈 준비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 중에 회복을 말할 때 손꼽히는 장면이 창세기 35장에 수록된 야곱의 귀환 이야기이다. 이 글은 야곱의 귀환 이야기를 기초로 하여 코로나 이후 교회와 목회의 회복을 전망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우선 야곱의 귀환 이야기를 분석적으로 고찰해보고, 이어 코로나 이후의 교회와 목회를 전망해보고자 한다. 

1. 회복의 원리: 야곱을 회복시키신 하나님 

야곱은 거짓말로 아버지와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다. 그 바람에 외갓집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 펼쳐진 그의 생애는 그 자신의 고백대로 “험악한 세월”(창 47:9)이 되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피신하면서 그의 두 딸과 시녀들과 결혼하여 열두 아들을 얻고, 많은 양 떼와 소 떼를 거느린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형 에서와 재회를 앞두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오랜 세월 그의 마음속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던 미해결과제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감에 얍복 나루터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옛 자아’와 ‘거짓 자아’를 털어내고 ‘참 자기’와 ‘새 자기’를 발견해야 하는 큰 숙제가 가로놓여 있었다. 그날 밤에 낯선 이가 걸어오는 알 수 없는 씨름을 통하여 야곱은 경쟁심과 다툼과 속임수로 점철된 옛사람을 내려놓고 새 사람을 입을 수 있었다. 이것은 참 자유를 얻는 치료적 경험이었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그에게 하늘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놀라운 체험을 한 것이었다.  

형 에서와 극적인 재회를 나누고, 잠시 안정을 찾는가 싶었지만 외동딸 디나의 참담한 사건으로 큰 나락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야곱은 큰 소리 한 번 못 내고 위축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처절한 위기의 순간에 그는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창 35:1). 비로소 진정한 야곱의 회복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일어나라”고 명하셨다. 히브리어 “쿰”은 큰 일을 앞두고 결단하며 단호한 마음으로 떨쳐 일어서는 모습을 의미한다. 벧엘은 야곱의 생애에서 가장 괴로울 때 가장 뜨겁게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장소였으며, 가장 순수한 심정으로 가장 진실되게 신앙을 고백하였던 서원의 장소였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곳이었다. 야곱을 벧엘로 올려보내시는 하나님은 야곱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것만이 유일하고도 진정한 회복임을 나타내 주셨다. 야곱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루신 내역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1) 예배를 회복하라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명하셨다. 원래 벧엘은 야곱이 생애 처음 제단을 쌓고 서원을 한 곳이었다(창 28:18). 이제 돌고 돌아 야곱은 다시 벧엘로 올라가게 되었다. 야곱은 선언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코로나 상황을 지나면서 성도와 교회는 회중예배 생활의 위축을 겪었다. 그러므로 코로나로부터의 회복은 제일 먼저 예배를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예배는 인간의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사명이다. 예배가 하나님과 인간의 최우선적이고 중심적인 관계를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배를 위하여 존재하며, 성도는 예배를 위하여 어떤 대가도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 예배의 회복 없이는 어떤 신앙적 부흥이나 영적 회복도 불가능하다.  

2) 우상을 버리라 

진정한 예배의 회복은 우상을 버림으로부터 시작된다. 우상숭배와 하나님 예배는 결코 양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야곱은 자기 식솔에게 명했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라.” 

이방 신상은 형상화된 우상뿐 아니라(출 20:4; 사 45:20; 렘 10:2-5; 행 17:29; 롬 1:22-23),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배척하는 모든 세력과 종교행위와 사상들(범신론, 샤마니즘, 애니미즘, 혼합주의, 세속주의, 물질주의 등) 그리고 경건한 삶을 방해하는 여러 중독증세들(지나친 오락물, 영상물, 놀이, 스포츠, 도박, 술, 마약 등)도 포함된다.  

코로나 상황에서 세계는 마치 백신이 코로나의 구세주인 것처럼 환영했고,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방역 지침을 우상숭배처럼 받들었다. 백신의 숨겨진 부작용에 귀를 닫았고, 백신의 성분에 대해서도 눈을 감았다. 이처럼 온 세계를 단일 주제로 순식간에 사로잡은 적이 없었다. 온 인류는 백신과 방역체계에 맹목적으로 순응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행태는 코로나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여타의 상황에서도 그럴 수 있음을 나타내는 시금석이 되기에 두렵기까지 하다. 빅 부라더의 출현이나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해 크나큰 수용성을 시사해주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인간사회에 자리잡게 된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혹은 직간접적인 제반 우상숭배적 요소들을 타파하지 않으면 인류는 팬데믹 자체에 앞서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생성되는 우상숭배적 행태에 의해 질식되고 말 것이다.  

3)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 

야곱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도록 지시하였다. 정결함이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일체의 부정한 것을 제거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의식적 시도이다. 하나님은 성도를 향하여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4-45)고 하시면서 거룩함을 더럽히는 일체의 부정한 요소들을 제거하고 깨끗함을 얻도록 요구하신다. 인간의 회복은 항상 몸과 마음의 동시적 정결을 통하여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음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율법의 결례 의식의 중심 사상이며(출 19:14; 민 19:12-13; 레 14:8) 헌신과 순종을 상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벧전 1:22).  

정결예식에 의복을 바꾸는 것도 포함된다. 출애굽 직후 모세에게도 내려졌던 이 명령은(출 19:10) 영적, 도덕적 정결상태를 외형적으로도 나타내는 ‘회개’를 상징하였다(겔 36:25-27; 히 10:22). 의복은 그 의복을 입은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며, 의복을 바꾸는 것은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는 것은 회개함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결단으로 여겨진다.  

4) 정체성을 회복하라 

하나님은 야곱에게 주셨던 언약을 새롭게 재확인시키심으로 그의 정체성을 회복시켜주셨다. 벧엘에서 나타나 언약을 주셨던 하나님께서(창 28장) 다시 벧엘에서 그를 만나시고, 엘벧엘의 제단을 쌓게 하시면서(6-7절), 비로소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왔노라고 선언하셨다(9절). 그리고 그에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이어 그에게 언약을 재확인해주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는 예언적 언약의 말씀과 이어지는 바 그의 조상들에게 주셨던 땅과 후손에 관한 언약도 거듭 언급해주셨다(11-12절). 

야곱에게 있어서 진정한 회복은 방랑하고 고단했던 인생여정을 끝내고 자리를 잡아 안정을 찾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해주신 이름 “이스라엘”로 나가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새 이름을 거듭 언급하심으로 그는 이스라엘로 존재해야 할 사명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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