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일 목사의 세상에서 말씀 찾기] 스티그마와 스티그마타
스티그마와 스티그마타
가톨릭 교회에는 성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라틴어로 ‘Sanctus’, 영어로 ‘Saint’라고 불립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성인으로 인정받으려면 살아있을 때나 죽은 후에 인정받을 만한 특별한 기적이 적어도 2개가 있어야 합니다. 성인이 된 사람들 중에 인정받은 기적의 하나로써, 몸에 성흔 즉 거룩한 흔적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스티그마타’라고 불리는 예수의 못자국을 몸에 가지고 있는 성인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적이 진짜든 아니든 그 기적을 자기도 가지고 싶어서, 자신의 몸을 일부러 자해한 후 “나도 스티그마타가 있다”라고 거짓말을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아픔의 상처를 감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흔적을 ‘기적의 하나’로 자신의 몸에 소유하고 싶어했습니다. 그 흔적이 그를 성인의 반열 즉 나는 예수님을 진짜로 잘 믿어서 나도 예수님처럼 이런 흔적을 가지게 된 것이라는 ‘자랑’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나는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에 쓰인 흔적이란 말은 ‘스티그마타’가 아닌, ‘스티그마’라고 적혀 있습니다. 바울의 몸에 기적적으로 십자가의 상처가 생겨났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그가 주님을 위해 걸어온 길에서 받은 상처와 모든 시련을 말하는 것입니다.
‘스티그마’와 ‘스티그마타’는 한 글자만 다릅니다. ‘스티그마타’는 성흔 즉 영적인 흔적으로써 몸에 나타난 상처를 말합니다. 그러나 ‘스티그마’는 이와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스티그마’는 당시 짐승이나 사람에게 불도장을 찍어 누구에게 속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표시였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지금 자신의 삶에 있는 모든 시련과 상처는 바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존재임을 나타내는 표시로, 예수님이 자신의 주인되심을 선포하는 흔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스티그마타’가 아닌, 그리스도의 ‘스티그마’가 필요합니다. 몸에 새겨진 기적의 흔적 스티그마타가 아니라,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내 삶에 그리스도가 주인이라는 표식 ‘스티그마’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스티그마는 내가 얼마나 잘난 존재인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예수 믿는 좋은 사람인가를 보여주기보다 내 삶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세상으로 보게 할 것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성탄을 맞이하며 내 입과 내 삶에서 고백되는 모든 감사가 ‘스티그마타’로 보여지는 자랑이 아니라, 감사의 주체되시는 예수님만을 나타내는 ‘스티그마’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