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Select Page

[송경원 목사의 청년을 품은 교회이야기]

성(聖)스러워야 할 성(性)

[송경원 목사의 청년을 품은 교회이야기] </br></br> 성(聖)스러워야 할 성(性)

 

최근에 있었던 EM/KM 연합수련회에서 Dating Seminar 및 Q&A 시간이 있었다. 청년들이 연애에 관해서 항상 궁금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스킨십은 어디까지 해도 괜찮은가?’이다. 청년을 위한 Dating Seminar를 하면서 성(性)에 관한 주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요즘 뉴스를 보면 성교육을 받아야 할 사람은 비단 청년만이 아닌 것 같다. 아니, 청년보다 오히려 기성세대가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17 올해의 인물’에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이 선정될 만큼 미국에서 Me Too 운동이 뜨겁게 일어났고 이제는 세계 곳곳으로 번지는 추세다. 최근 한국에서도 그 부끄러운 민낯을 각계각층에서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연예계는 물론이고 법조인, 또 유명 정치인의 성폭행 사건이 한국 사회에 작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 스타인이 있다면 한국에도 이에 비슷한 괴물 같은 감독이 있다. 최근 방영된 PD 수첩에 나온 피해자의 증언에 의하면 영화를 찍는 중에도 김기덕 감독은 여자 배우들 방을 두드리고 다니며 성폭행을 한다는 것이다. 방송을 시청하는 내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었다.

그런데 성경에도 그런 인간이 나온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다. 다윗의 통치는 사무엘하 11장에 기록된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을 기점으로 점진적인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13장에 나오는 암논의 다말 성폭행 사건과 이에 대한 압살롬의 보복 살인은 그 하강 곡선의 연장선상에 있다. 암논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으로 있을 때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에게서 낳은 첫 번째 아들이었다. 그 암논이 배다른 누이동생 다말을 사랑했다. 그러나 다말을 향한 그의 사랑은 진정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섬기는 온전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랑으로 위장된 탐욕에 불과했다.

미투 운동은 매우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병들고 썩어 있는 부분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야 치유와 회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병, 마음의 병, 영적인 문제, 그리고 관계의 문제에서도 회복의 첫걸음은 문제를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문제를 감추고 있으면 병이 더 악화되고 문제가 커진다. 드러내야 한다. 그러나 드러내기만 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큰 병을 발견할까 무서워서 건강검진을 안 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픈 곳을 드러내고 병을 진단한 후에 적절한 치료가 없다면 이 또한 심각한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미투 운동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폭로하는 것만으로는 이 고질적인 사회적 병폐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특별히 성추행과 성폭력은 갑과 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요즘 소위 말해서 갑질을 하는 하나의 형태이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없다면 온전한 해결은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었던 정치인이 비서를 성폭행하고 다니면서 미투 운동에 대한 강연도 했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실망과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이렇게 어둡기 때문에 작은 불빛이 오히려 더 큰 빛을 발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세상이 이렇게 어두울수록 빛으로 부름을 받은 주의 제자들이 절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참된 소망, 복음의 소식을 삶으로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안타까운 현실은 세상의 많은 리더들이 결국 돈, 섹스, 그리고 권력 때문에 무너지듯이 기독교인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계의 많은 리더들이 그동안 이 셋 중에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이유로 쓰러졌다. 한국 사회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 운동을 보면서 혹시나 목사님들의 이름이 거론되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하다. 이미 교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전병욱 목사와 같은 사례가 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한국 소식을 전해 듣는 요즘이다.

신구약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죄 중의 하나가 성적인 죄다.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인 죄에서부터 비롯하였음을 알 수 있다. 얼마나 성적으로 타락했으면 동네 사람들이 롯의 집으로 몰려와서 천사를 성폭행하려고 했겠는가? 지금 미국과 한국의 성적 타락은 소돔과 고모라의 수준을 넘은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만약에 이 추세로 계속 간다면 하나님은 조만간 이 땅을 분명히 심판해야 하시는 게 맞다. 그렇게 안 하시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서 심판받고 멸망당한 영혼들에게 사과를 하셔야 할지도 모른다.

각계각층에 만연한 성폭력의 실태를 보면서 세상 풍조가 얼마나 음란한지 깨닫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동시에 이 기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性)이 얼마나 성(聖)스러운 선물인지를 깨닫고 결혼의 의미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기도한다. 어둡고 썩은 세상에서 믿음의 자녀들이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유보되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회개의 기회가 더 주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자!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미주침례신문 앱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