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관 목사의 목회의 길에서] 신앙은 꽃을 피우는 것과 같습니다
아내와 제가 지금도 가끔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 감동하는 것은 예전에 저희 목장(가정교회 소그룹)을 거쳐 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기막힌 사연으로 목장(가정교회 소그룹)에 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극적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를 나누다 보면, 지금도 여전히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많습니다. 그 감동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수요일 간증 시간에서 비슷한 얘기를 들으면 그 감동이 그대로 살아나 눈물이 나곤 합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그렇게 감동적으로 구원을 받고 간증을 한 사람들 가운데는 지금도 여전히 신앙이 자라고 삶에 열매가 많은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극적인 간증 이후에 미적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거나 심지어는 지금은 교회 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사람, 그럴 때도 있었는데…’ 하고 아쉬워하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신앙은 시작보다 끝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마지막에 어떤 모습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첫째가 꼴찌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셨고(마태 20:16), 또 그것이 성경을 쓰신 분들이 구원의 확신에 흔들리지 말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우리의 구원의 여부를 경고하고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한 때 그런 기쁨을 누렸던 사람이 신앙에서 멀어지고, 결국은 흔적도 없는 경우를 보면 많은 경우 처음의 기쁨을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이나 타주로 이주해 가서는 초기에 바쁘다는 이유로 교회를 찾는 것을 등한시해서, 또는 여기의 교회 생활과 비교하며 교회를 다니지 않을 때 금방 멀어져 버립니다. 또 싱글의 경우는 결혼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믿음이 없는 배우자를 만나서 그 사람의 기분을 맞추느라 교회를 등한시하다 보면 금방 초기의 기쁨은 사라져 버립니다.
따라서 이제 막 신앙의 기쁨을 맛 본 성도님들은 꽃 몽우리가 졌을 때 그것을 키우기 위해서 적당히 물을 주고, 햇빛이 드는 곳에 두었다 옮기고, 그렇게 몽우리를 꽃 피우기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처럼 그 기쁨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기도를 통해서 해결하여 하나님을 만나가고, 작은 일에도 그분을 기억하며 감사를 돌리고, 그분에 대한 감사를 사역을 통해서, 때로는 작은 희생을 통해서 돌려 드리는 것이 방법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위기가 찾아왔을 때, 몸을 낮추고 버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끝까지 붙들고 떠나가지 않는 어떤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도를 넘은 취미 생활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성공에 대한 집착일 수 있습니다. 특별히 돈이나 성공에 대한 욕심과 그에 대한 염려는 끝까지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마음을 막습니다. 그런 분들은 내가 그것에 매달릴수록 평생 그것에 노예가 되어서 자유롭지 못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내려놓을 때(마태 6:33), 하나님은 우리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시고 우리의 소원도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