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수다(20) – 경목증의 효능
김영하 목사(샬롬선교교회, 미주)
경목증의 효능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온 나라가 민주화와 경제적 성장기에 접어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곳곳에는 아직 옛 습관과 제도가 많이 남아있던 1990년대 초에 의경이나 전경이라고 불리는, 군복무를 경찰에서 하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경찰을 도와 치안유지, 교통, 경비 등의 업무를 하며 주로 경찰서 맨 꼭대기 층에 마련된 내무반에서 생활하였다. 근무 여건상 주일이나 공휴일에도 임무를 수행했기에 기독교인들은 할 수 없이 목요일마다 경찰서 강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고참이나 직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서울시 중랑구에서 목회를 하던 나는 약간의 선물을 준비하여 위문도 하고 예배도 인도하였다. 그들은 격무에 지쳤지만 예배시간에는 뜨겁게 은혜를 사모하며 말씀을 듣고 찬양도 우렁차게 불렀다. 그런 태도에 감동이 되어 나는 교인들에게 위급한 일이 없으면 빠지지 않고 그들과 함께 예배하기를 권했다.
어느 날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과장급 직원이 와서 서장이 찾으니 서장실에 들어가 보라고 했다. 나처럼 조그마한 개척교회의 목사를 서장이 부르는 것이 의아했지만, 서장이 부르는데 가지 않을 수도 없기에 서장실에 들어섰다.
우리 교회가 예배를 드리는 공간보다 혼자 쓰는 서장실이 훨씬 넓어보였다. 서장은 젊은 목사님이 매주 예배를 인도하여 주니 감사하다며 마침 경목증이 하나 여유가 있어서 나에게 주고 싶어 만나자고 했다며 친절하게 대했다. 높은 계급인 경찰서장이 그렇게 선해 보이고 순전하게 생겼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그러자 의아하다는 듯이 서장은 다른 분들은 경목증을 달라고 여러모로 부탁을 하고 청탁도 하는데 왜 사양하냐고 물었다. 경찰서에 들어올 때 나의 얼굴을 아니까 신원파악도 하지 않고 들여보내 주는데, 그 경목증을 어디에 사용하는 것이냐고 재차 물었다. 불심검문을 할 때 보여주면 경찰이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을 가능성이 크며, 혹시 과속을 할 때 이것을 보여주면 딱지를 끊지 않을 것이라고 서장은 순진해 보이는 나에게 여러 가지 경목증의 효능(?)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러자 나는 더욱 받을 수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드리라고 사양했다. 불심검문은 경찰의 직무 중의 하나이고 시민은 그것을 따를 의무가 있으며 아무 잘못 없으면 당당하게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면 될 것이고, 목사가 과속해서도 안 되지만 혹시 과속하여 적발이 되었을 때 목사임을 감추고 과태료를 내는 것이 더 좋지 젊은 의경에게 목사가 과속하며 경목증이나 보여주면 되겠냐고 정중히 거절했다. 서장은 고개를 끄떡이며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그 후 예배시간마다 서장이 특별지시를 내려 의경들이 더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특혜를 거부하니 복음을 더욱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하늘나라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신 주님을 전하는 목사가 낮아짐을 경험하기 원해야 주님의 심정을 더욱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은 복음을 전하며 너무 많은 특혜에 익숙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