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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관 목사의 목회의 길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이질적인 단어들” 

[이수관 목사의 목회의 길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이질적인 단어들” 

이수관 목사 – 휴스턴 서울교회(미주)

“세상 사람들에게 이질적인 단어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만이 사용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이런 단어들 가운데 어떤 것은 아직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지고 교회나 목장이 멀게 느껴지게 만듭니다. 저는 서른한 살 때 처음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첫 번째로 느꼈던 이상한 단어가 ‘도전 받았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교회를 다니기 전에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무슨 이런 말이 다 있나 하고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그 말이 워낙 익숙하기 때문에 당시에 무엇 때문에 이상했는지 조차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세상에서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하다’라는 식으로 쓰지 그 단어를 수동태로 쓰지는 않는 것 같고, 어떤 사람이나 말로부터 도전의식이 생긴다는 의미로 그렇게 쓰는 경우는 교회에서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목장에서 사람들을 초대할 때 목장 식구들이 모두 생경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뭔가 본인은 외인이라고 느낄 것입니다. 

다행이 이런 단어는 그저 생경하게 느껴질 뿐이지만 단어에 따라서는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도 없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간증이라는 단어입니다. 간증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원래는 법정에 증인으로 나서서 하는 말이지만 거의 쓰이지 않고 지금은 기독교에서 본인의 신앙적 체험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나옵니다. 이런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 이제 막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은 사람에게 간증을 하라고 하니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 교회에서는 오래 전에 ‘침례간증’을 ‘침례소감’으로 바꾸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쉽게 ‘침례 받고 나면 간증해야 해’라고 하니 새신자들이 두려워하는 일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단어의 선택에 주의를 기울여 주면 새신자들에게 편안한 마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슷한 말 가운데 하나는 ‘성령 충만’이라는 단어입니다. 신앙이 없는 분이 기독교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는 가끔 TV에서 보여주는 광신도 같은 기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성령 충만’이라는 단어는 그들에게 그런 광신도를 연상시킵니다. 만약에 ‘우리 목장에는 성령 충만한 분들이 많아요’라고 소개를 한다면 오늘 목장 시간에 오시냐고 전화하면 사실은 선약이 있었던 것을 잊었노라고 목장에 못 가겠다고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또 구원이라는 말도 교회에서만 쓰는 단어입니다. 의미는 통하겠지만 세상에서는 구호나 구조라는 단어를 쓰지 구원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지요. 따라서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합니다’라고 할 때 그 말을 정확히 알아들을 사람이 많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물에 빠진 것도 아니고, 수렁에서 건진 내 딸도 아니고, 내가 왜 구원을 받아?’ 할지 모릅니다. 그보다는 ‘예수님 안에 행복이 있어요’ 또는 ‘예수님을 만났더니 인생의 고민들이 해결되었어요’라는 말이 더 나을 것입니다. 본인들이 영적으로 죽어 있다는 것을 모르니 말입니다. 비슷하게 천국가야 한다는 말도 어떤 사람에게는 죽으라는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교회는 VIP(전도대상자)를 배려하는 교회입니다. 따라서 목장에 VIP가 왔을 때, 또는 안 믿는 분을 만날 때, 교회에 익숙한 우리는 그들의 불편함을 잊기 쉽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섬김의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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