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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총회 소개 영상] ③ [인터뷰] 주강사 박성근 목사

[다가오는 총회 소개 영상] ③ [인터뷰] 주강사 박성근 목사

“팬데믹 후 과거로의 회복이 아니라 새 방향으로 리바운드 해야 한다”

역이민 시대, 최첨단 시대에 우리의 정답은 ‘복음’과 ‘다민족’

제43차 정기총회를 앞두고, 정기총회 소개영상 세 번째(마지막)인 주강사 박성근 목사님(남가주 새누리교회, sCA) 인터뷰 영상이 업로드 됐습니다. 이번 총회 주강사로 초청받은 박성근 목사님을 통해 이번 총회에서 나눌 말씀과 이 시대 교계에 관한 현재, 미래 등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많은 유익이 있으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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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근 #남가주 새누리 #제43차 정기총회

제43차 정기총회의 한어권 주강사로 남가주 새누리교회 박성근 목사가 초청됐고, 영어권 강사로는 J.D. Greear 목사와(The Summit Church, NC), Greg mann 선교사(IMB)가 초청됐다. 지금까지 한어권 주강사는 한국에서 초청된 경향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미주 내에서 박성근 목사가 초청됐다. 또한, 총회는 SBC의 주제를 따라가지 않고, 우리의 상황에 맞는 주제를 선택했는데 “리바운드”(Rebound)로 선정했다. 이 주제는 남가주 새누리교회의 2022년도 표어다. 이런 배경에서 지난 5월 12일 어머니 주일에 남가주 새누리교회에서 정기총회 주강사 박성근 목사를 만나 소감, 주제와 팬데믹, 이민교회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인터뷰는 ‘미주침례신문’유튜브 채널에서 영상으로 볼 수 있다.<편집자 주>


Q: 총회 주강사가 주로 한국에서 오셨는데, 이번에 목사님이 초청되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처음에 총무님이 연락하셨을 때, 사실은 좀 의외라 생각했죠. 첫째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미주에 있는 목회자고, 또 나이도 많은데 왜 나 같은 사람을 불렀을까? 라는 생각 때문에 조금 의아해했고, 또 한편으로 제가 미주에서 오랫동안 목회를 했고 또 미주 목회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우리 후배 목사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말씀을 전하고, 내가 그동안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것들을 나눌 기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Q: 그동안 총회는 SBC의 주제를 번역해서 사용했지만, 이번 총회 주제는 “Re-bound”입니다. 남가주 새누리교회에서 2022년에 이 주제를 선정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A: 짐작하시는 대로 팬데믹을 통과했잖아요. 그리고 2022년을 시작할 때도 아직 완전히 다 끝나지 않았고 약 3년 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다시 일어서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이었죠. 그래서 팬데믹으로 좀 침체되기도 하고, 교인들이 떠나가기도 하고, 나오던 분들 중에 그냥 집에 계시는 분도 계시는 등 여러 면에서 영적으로 침체된 상태에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이것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려면 “Re-bound”가 필요하지 않나? “Re-bound”라는 말이 아시겠지만 두 가지 의미가 있지요. 그냥 rebound 하면 농구에서 슛에 실패한 볼을 다시 잡는 것을 rebound 한다고 하지요. 어떤 위대한 선수도 100% 성공하지 못하죠. 코비 같은 경우도 약 40~45%로 성공한다고 하니까 넣지 못하는 볼이 더 많지요. 그런데 넣지 못했던 그 리바운드를 누가 잡는가에 따라서 농구게임의 승패가 결정된다고 하지요. 그래서 우리가 실패했거나 놓쳤던 부분들을 다시 붙잡는 것은 좋은 기회가 될 거라는 것이 첫 번째 아이디어이고, 두 번째는 Re-bound라고 해서 땅에 떨어졌던 볼이 다시 튀어 오르는 것을 말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영적인 삶도, 교회도 침체되거나 눌려 있는 것에 머무는 정도가 아니라, 다시 바운드에서 그다음 단계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교회에 소개하고, 앞으로 2022년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방향과 비전으로 더 성장하자는 의미로 “Re-bound”라고 정했지요.

사실은 저희 교회뿐만 아니라 팬데믹은 다 경험했고 이미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한국이든 미국이든 팬데믹 이후로 어디나 많은 영향을 받았고, 또 침체된 면도 많이 경험했고, 아직도 완전히 다 회복이 안 됐다고 생각해요. 이 상태에서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올라갈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된 거지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것은 침체된 가운데서 다시 회복한다면 참 좋은 것이지만, 그것보다는 한 단계 더 넘어가서 회복이 되지만 “무엇을 위해 회복할 것인가?” 그것이 제가 생각했던 포커스였어요. 멈췄던 교회 성장이 회복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동기부여가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보다는 침체되고 다운됐지만 다시 뛰어오른다면, “새로운 차원의 어떤 비전과 뜻을 향해 뛰어올라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했고, 사실은 그 전 해에 표어를 정할 때, “break through”라는 단어를 선택했어요. “break through”도 어떤 난관을 넘어서는데, 넘어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넘어선 후에 그다음 단계로 가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Re-bound”도 같은 컨셉이죠. 일어선 후에 무엇을 할 것이냐? 어디로 갈 것이냐? 그것이 관심사였고 아마도 우리 미주 내에 있는 교회들의 관심사도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지만 한국교회가 많이 침체되고,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고, 노령화되어 가고 있어요. 미국 이민교회 같은 경우는 이젠 이민자가 거의 오지 않고 오히려 한국으로 돌아가는 추세지요. 그럼, 그 가운데 우리 이민교회가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가? 이대로 기다린다고 회복되는 것도 아니고, 세월이 지나가면 약이 되는 그런 케이스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보면서 지금 이민교회 상황에서 어디로 가야 되냐는 질문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Re-bound”에 대한 그 새로운 방향성을 다시 복음 중심적인, 선교 중심적인 교회로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 내용으로 설교도 많이 하고 훈련도 시키고 또, 성도들의 마음속에 품도록 사역도 했어요.

Q: 당시에 이 주제를 통해 개인과 가정, 교회에 어떤 유익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총회 동역자들과 나누고 싶은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A: 사실은 제가 팬데믹이 오면서 “Re-bound” 때도 그렇고, 그전에도 사도행전을 가지고 설교를 많이 했어요. 다 아시는 이야기지만 교회가 한참 부흥하려고 할 때, 갑자기 핍박이 시작됐잖아요. 하루에 3,000명씩, 5,000명씩 엄청나게 폭발적인 부흥을 하는데, 갑자기 핍박이 찾아오면서 8장에 보면 스데반의 죽음과 함께 사도들 외에는 다 흩어졌다고 했어요. 그것을 보면 교회가 망하는 시나리오지요. 공권력은 강해지고 로마와 또 유대 종교 집행부에서 기독교를 말살시키려 하고, 실제로 핍박이 시작되면서 사울이 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잡아가잖아요. 거기까지 보면 교회가 망하는 시나리오지요. 희망도 없어 보이고 다 흩어지니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거죠. 교회는 모여야 하는데 흩어졌으니까. 여기서 멈추지 말고 9장, 10장, 11장 계속 가보자는 거죠. 가 보았더니 흩어진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면서 오히려 복음이 확장하는 기회가 됐고, 그 결과 세워진 교회가 안디옥교회지요.

예루살렘교회 중심으로 시작된 복음 운동이 사실 예루살렘 안에서 계속 성장하고 부흥되는 것이 좋긴 하지만, 릭 워렌 같은 경우는 그 당시 10만 명 이상이었다고 짐작하는데요. 그 당시 예루살렘 인구의 절반 정도 되는 상당한 숫자이죠. 그런 폭발적인 성장은 굉장히 좋아 보이긴 하는데,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신 비전 하고는 너무 거리가 먼 거예요.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벗어나서 땅끝까지 가라고 하셨는데, 예루살렘교회가 성장하고 부흥되는 것만 보는 것은 마치 한국교회가 한때 부흥이 일어났을 때 참 좋아했던 것과 같지요. 부흥 이후에 “So what?” 여기던 답을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냥 성장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교인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 목적인 거죠. 그래서 교회 크게 짓고, 또 대형 교회가 되고 이것이 마치 사역의 목적인 것처럼 되다 보니까 아무래도 영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게 된 거죠. 그래서 예루살렘교회가 그냥 머물렀더라면 그 정도로 끝났을 뻔했는데, 하나님이 핍박이라는 철퇴를 통해서 흩어 주셨고, 흩어져 간 그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안디옥교회가 시작되잖아요. 안디옥교회가 사실은 세계선교를 위한 중심이 되어 그때부터 본격적인 의미에서 미션이 시작된 거니까요.

제가 이런 사도행전의 맥락을 설명해 주면서 팬데믹을 적용했죠. 팬데믹이 왔을 때 교회가 다 문 닫았잖아요. 예배도 못 드리고 다 흩어졌지요. 거기까지 보면 절망이지요.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는데, 그러나 하나님은 그다음 단계를 준비하셨지요. 더 큰 차원의 목표로 나가기 위해 사람들이 복음에 더 집중하게 하고, 복음 중심의 교회로 안디옥교회를 세우시고, 안디옥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처음 분부하셨던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는 Kingdom vision이 이루어지게 하신 겁니다. 이것을 이제 우리 교회에 적용해 보자고 설교한 거죠. 그래서 우리가 팬데믹으로 흩어진 것처럼 보이고 절망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그다음 단계가 반드시 있다. 그다음 단계가 뭐냐? 저는 그것이 “선교”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교회들도 잘 모르지만,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고, 전도로 새로 온 사람들은 굉장히 제한적이지요. 80년대, 90년대랑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썰렁하죠. 청년들 가운데도 백 명 중 한두 명이 크리스천이고, 실제로 군대는 옛날에 한 부대에 20%~30%의 크리스천이 있었는데, 200명 중대에 한 명 있을 정도로 적대요. 그러다 보니까 한국교회가 지금은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루즈(loose)한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그다음 단계를 무엇으로 가야 하냐는 거죠. 동일한 질문이지만 저는 그것을 선교라고 보고 여기까지 한국교회를 축복하신 하나님이 이제는 한국이라는 어떤 틀을 벗어나서 세계선교 아니면, 한국 내에 있는 다민족선교, 땅끝까지 나아가는 전략으로 바꿔야지 교회가 힘도 생기고 다이내믹 해지고 그리고 사람들도 교회를 다시 새롭게 볼 거로 생각해요.

이민 교회도 마찬가지죠. 이민 교회도 한국보다는 조금 슬로우 할지 모르지만, 오는 영향이 거의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고, 이민 땅에 교회가 세워지고 오랫동안 존재해 왔는데, 이민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이 뭔가? 영어도 배우고 미국 문화도 알게 된 우리가 이곳에서 세계를 발판으로 삼고 다시 나간다면 너무 많은 일들과 도전(challenge)이 있지요. 목회자도 성도도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분명해야 열정도 생기고 힘도 나는데, 그것이 없는 가운데서 그냥 현상 유지하고 회복만 하려고 하다 보면 희망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Re-bound” 해야 된다. 다시 일어나되 그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새로운 방향의 “Re-bound”입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가 살지 않을까 생각해요.

Q: 이 주제는 코로나와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교회와 교계에 어떤 영향(변화)을 주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저희가 너무 좀 나이브(naive)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많이 갖지 않은 상태에서 사역하고 목회를 하다가 다시 내가 누구인가? 교회가 무엇인가? 복음이 무엇인가?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이 쓰는 동일한 용어지만 본질로 돌아가기 위한 기회가 아닌가? 인간이 그러잖아요. 모든 것이 편하면 나이브하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채찍질하지 않게 되는데, 어려움이 생기면 본인을 돌아보는 것처럼 내가 정말 바로 가고 있나? 뭘 해야 하나? 이것을 다시 돌아보는 것처럼, 팬데믹이 그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물량 중심적인 교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좋다는 식의 인식을 깨뜨리고, 다시 영적인 본성을 깨닫고 본질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니까 팬데믹도 그중에 하나일 수도 있죠. 그리고 지금까지의 어떤 목회 패러다임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Q: 리바운드는 침체를 전제하는데, 목사님도 개인적으로 “침체의 늪”, Re-bound를 경험한 적이 있으세요?

A: 정말 이걸 내가 해야 하나? 이런 마음을 가지는 건 누구나 다 마찬가지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이 왔을 때 그냥 그대로 눌러앉든지 주저앉는 게 아니라, 다시 리바운드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약이 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하지요. 저희 교회 같은 경우도 한때 어려움이 많았고 굉장히 마음이 아프기도 하죠. 지난 후에 보니까 하나님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고요. 침체라는 단어 자체는 바람직한 게 아닌데 그러나 침체에서 머물지 않고, 다시 뛰어오를 수 있다는 것은 신앙인만 할 수 있고 믿음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거죠. 일반 세상 사람들은 침체되면 거기서 끝날 수도 있죠.

사실 “Re-bound”에 가장 대표적인 분이 예수님입니다. 무덤까지 내려갔잖아요. 죽으시고 무덤까지 내려간 그 예수님이 Re-bound 하는 사건이 부활이잖아요. 복음인데, 우리는 무덤에 들어가고 다운되는 것은 싫어하면서 부활을 소망하니까 진정한 차원의 부활이 올 수가 없는 거죠. 진짜 부활이 감격이 되고 나의 기쁨의 사건이 되려면 다운됐던 그 순간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도 원치 않지만, 그러나 그것은 필연적으로 오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제가 오래전에 설교 중에 한 번 계곡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높은 산이 생기려면 반드시 그 밑에 계곡이 있어야 한다. 계곡이 없는데 어떻게 높은 산이 만들어지겠어요. 그러니까 계곡 자체만 보면 절망의 상징이지만 계곡이 있기 때문에 높은 산이 세워지는 것을 생각하면 새로운 도전이죠.

Q: 우리도 “Re-bound”가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도 회복되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사회의 반등 과정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A: 교회가 가진 본질적인 것이 살아 있어야지 뭔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도 가능하고, 또 세상 사람들이 볼 때도 교회에서 뭔가를 얻고 싶어 하는 것을 찾게 되죠. 제가 좀 조심스러운 말씀이긴 한데요. 잘못 들으면 비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도 목회자니까 동일한 입장에서 놓고 이야기한다면, 한동안 한국 교회가 너무 세상을 좋아하고 따라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세상의 좋은 것을 다 끌어왔잖아요. 윌로우 크릭(Willow Creek Church) 같은 경우에도 서밋(summit) 들어가 보면 초청된 강사들이 CEO들과 이와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진짜 크리스천인지 아닌지 확인이 안 된 가운데서 강의하는데, 그분들이 하는 강의는 물론 bright 하지요. 진취적인 세상의 성공사례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그것이 마치 성공의 또 하나의 길인 것처럼 소개하고 적용하다 보니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교회가 세속화되는 과정이 됐고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 안에 들어왔지요. 솔직히 이야기해서 교회의 중요한 직분이나 가진 분들이 세상에 뭔가 있는 분들이잖아요. 말은 그렇게 안 하지만 겸손을 이야기하고 poor한 삶을 말하지만, 사실은 많은 세상의 성공은 우리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이고 그런 잣대들이 교회와 같이 가고 있죠.

예를 들어 세상에서는 성공의 잣대가 숫자입니다. 숫자이고 재력인데 교회도 어떤 면에서 그러한 평가를 많이 했잖아요. 신문에 보도하는 대형 교회를 보세요. 보도되는 그 기사를 보면 교회들도 다 재정이 크든지, 성도의 수가 많은 큰 교회지 그렇지 않은 교회는 다루지도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교회가 가지고 있던 본래 기능이 점점 쇠퇴해져 가지요. 그 본래 기능은 한마디로 복음입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 중에 우리가 세상 따라가려고 하지만 세상을 이길 수 없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어요. 세상은 눈부신 발전을 하고 우리도 디지털화해서 영상을 사용하고 색채적인 걸 많이 도입하지만, 물론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으로 절대 승부에서는 못 이기죠. 라스베가스에 가보면 얼마나 찬란합니까? 교회는 수백만 불을 들여도 못 따라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없는데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것, 그것을 가지고 승부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이죠. 세상에는 없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이 진짜 생명이고 소망이기에 복음이 교회의 본질이 될 때,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다시 보기 시작할 것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물량적인 것, 홍보, 프로그램으로 성공하려고 하지 말고,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지금도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이고 제 소신이기도 합니다.

Q: 시대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민 사회의 10년, 20년 후를 생각해 볼 때, 교회와 교단의 지도자로서,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교회가 현대 사회에서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일까요?

A: 우선, 먼저 첫 번째 질문을 말씀드리자면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 이민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이냐? 아무래도 한국인 중심의 교회는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이민자가 거의 없고 또 우리 다음세대들은 자꾸 교회를 떠나는 가운데 있다 보니까 이제 나이 드신 분들, 오래되신 분들은 교회에 남겠지만 그다음 세대가 올라오지 않으니까 갈수록 점점 힘들어지는 건 분명한 일이고, 심지어 국제결혼 하신 분들이 있는 지역에도 새로운 분들이 오지 않는데요. 이러한 지역적인 한계 때문에 교회가 문을 닫을지도 모르는 위기의식까지 든다고 그곳의 목회자들이 이야기해요. 저는 다른 지역의 이민교회도 동일한 상황에 직면할 거라고 봐요.

우리가 문화적인 면에서 Korean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관점을 좀 바꿔서 영적인 면에서는 크리스천이잖아요. Kingdom Citizen, 하나님 나라 백성이요. 그렇다면 Kingdom vision을 위해 나가는 게 맞지 않냐는 거죠. Kingdom vision은 한국을 넘어서, 문화를 넘어서, 글로벌한 차원이고 All Nations, All Ethnic Group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민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단순히 우리 이민사회를 케어 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 이곳에 뿌리를 내린 교회가 복음 전도의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써 선교적 전초기지를 만들고, 모든 지역의 이민교회가 선교에 포커스를 두게 된다면 저는 할 일이 너무 많을 거로 생각해요. 사람이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사역은 얼마든지 많고 주변에 사람들도 많지요. 이제는 타문화권 사람들까지도 reach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죠. 가능하다면 그들도 우리 교회 안에 들어와 (이민교회 10년, 20년 뒤에는 영어권이 더 많아질 수 있기에 그런 차원에서) 함께 교회를 이룬다면, 미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냥 지금 상태 그대로 머물면 노령화되고 숫자는 줄어가고 역동성은 없어질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제 현대사회 가운데서 교회가 가진 가장 큰 도전은 여러 가지가 있겠죠. 문제가 너무 많으니까요. 그렇지만 다시 초대교회를 생각해 본다면, 초대교회가 더 상황과 분위기가 험악했지요. 지금 시대보다 좋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잡아 죽이는 분위기였으니까요. 그런데도 초대교회가 살아났고 뜨거웠잖아요.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이 사람들을 불붙게 한 원인이 무엇인가? 그 핍박과 환난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위축되지 않고 강하게 일어났던 원인이 무엇이냐는 거죠. 그것이 저는 “복음”이고 “성령”이고, “기도와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바로 기독교의 본질이죠. 거기에 충실해서 정말 크리스천이 크리스천다운 삶을 살아내고 “복음이 이것이다.”라고 삶을 통해서 보여줄 수만 있다면, 저는 세상이 어느 시점에 가서는 다시 교회를 교회로 인정하고 또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다시 교회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지 않고 세상과 같이 가려고 하고, 세상의 방법으로 승부를 걸려고 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약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Q: 현대 기술(AI 포함)과 소셜 미디어가 교회의 선교나 세상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그것은 우리가 중요한 툴로 써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목적은 아니지만 세상과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통로이기 때문에 그것을 막아버린다면 세상이 우리를 접할 기회가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소셜 미디어나 유튜브나 새로운 미디어 시스템을 통해서 복음을 소통하고 전하는 것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AI가 설교까지 만든다고 하는데, AI까지는 제가 지금 모르겠지만 우리가 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충분히 활용하고, 본질은 복음이니까 복음을 떠나지 않고 복음의 핵심을 가지고 한다면 가능한 일이라 생각해요.

Q: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급변하고 있는데, 교회가 말하는 복음은 고리타분하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목사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A: 복음이 고리타분하다는 표현 자체가 진짜 복음 자체가 그래서 그럴까? 저는 그렇지 않을 거로 생각해요. 복음은 고리타분할 수가 없지요. 복음은 생명인데, 그리고 누구나 필요로 하는 가장 중요한 생명의 생명인데 이 복음 자체가 고리타분할 수는 없는 거죠.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우리와 교회가 너무 소통을 막아버리고 옛날 방식으로 그 패턴을 벗어나지 못할 때, 실제 복음 자체는 고리타분한 게 아닌데 그런 인상을 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래전에 릭 워렌이 많이 했던 말인데, “The message is eternal.” 메시지는 변할 수 없죠. 복음이라는 메시지는 영원하지만, 방법은 쉽게 변한다(Method should be changed). 그것은 환경, 문화, 문명에 따라서 바뀌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method”에는 소통도, 미디어도 포함되고 또, 필요하다면 현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활의 어떤 면들도 bring up 할 수가 있죠. 제가 좀 더 설교학으로 말씀드리면, 사람들이 설교를 들을 때 고리타분하게 들을 수도 있잖아요. 가장 듣기 싫어하는 게 설교입니다. “나에게 설교하지 마” 그러니까요. 설교라는 컨셉 자체가 일반적인 인식은 지루하다, 고리타분하다. 그렇게 느끼는 면이 있지요. 그런데 설교가 만약 들어야 할 사람의 폐부를 파고 들어가 그들의 felt need를 건드린다면, 그들이 정말 듣고 싶어 하는 어떤 면들을 bring up 해 준다면 그래도 설교가 지루하다고 생각할까? 아닐 거로 생각합니다. 설교 속에서 적절하게 사람들의 felt need를 채워주면 그게 굉장한 파워를 가지는 것처럼 복음도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해요.

Q: 끝으로 인터뷰에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나 총회에서 만나거나, 현장에 올 수 없는 목회자들에게 인사말 부탁드립니다.

A: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모든 목회자의 마음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표현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서 그렇지 누구나 다 힘들어하는 부분들이 있죠. 그러니까 큰 교회이든, 작은 교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들은 큰 교회를 목회하는 분들은 편할 줄 알지만 실상 그렇지 않고 똑같아요. 우리가 목회자가 된 이유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기에 내가 나의 일생을 드린 그 근본을 잊지 않았으면 참 좋겠어요. 내가 세상의 영화를 보거나 생활의 수단으로, 혹은 혜택을 누리려고 목회자가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달려왔습니다. 좀 힘들더라도 주님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사역한다면, 아직도 할 일과 우리를 통해 이룰 하나님의 역사가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힘 내시기를 바라고 사실 Re-bound라는 말 속에 교회적인 차원의 Re-bound도 필요하지만, Personally 목회자 한 분, 한 분의 삶에도 “Re-bound”가 필요해요. 침체되고 다운되고 그야말로 절망의 수렁에 빠진 것 같아 어떻게 해야 되나? 어디로 가야 하나? 그런 가운데 있는 목사님들이 계신다면, 이 절망이 전부가 아니라 여기서 다시 “Re-bound” 했을 때 그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하나님의 비전을 다시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Re-bound” 하면 분명히 하나님이 다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크신 분이니까 또,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부분을 알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분명히 적절한 길과 적절한 능력을 주시리라고 생각해요. 힘내시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함께 달려가면 참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대담 및 정리=취재팀 bpnews@bpnew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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