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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牧會斷想] 상상의 성탄이 내 안에서 생명이 되기까지

[목회단상 牧會斷想] 상상의 성탄이 내 안에서 생명이 되기까지

지준호 목사(헌츠빌 은퇴, 자유기고가)

“상상의 성탄이 내 안에서 생명이 되기까지”

영혼의 전령들이 하얀 꼬리를 만들며 쏜살같이 달려가는 별빛 찬란한 밤하늘, 그 아래서 양을 돌보는 목동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들의 음성, 신비로운 빛을 발하며 인도하는 별을 따라 산 넘고 물 건너온 동방 박사들, 말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께 황금과 몰약과 향유로 경배드리는 풍경이 어린 나의 상상 속에 아름다움과 평화, 거룩함과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어느 날, 내 안에서 촉촉이 젖은, 연둣빛의 파릇한 생각이 떠올라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왜? 하필, 오물 냄새나는 목동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 것일까? 거룩하고 위엄 있고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에 성직자들이 널려있는데. 왜? 하필, 아기 예수는 오물로 더럽혀진 말 구유에서 태어난 것일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여관방 하나도 마련하지 못한 것일까? 왜? 하필,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을 별까지 동원하여 아기 예수께 인도한 것일까? 그리고 왜? 그들은 황금과 몰약과 유향의 예물을 아기 예수께 드리며 경배한 것일까? 메시아에 관해 박식한 수많은 학자는 뭘 하고 있었고….

불신이 싹트려는데 전령과 함께 온 듯한 생각이 따뜻하게 물었다.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 봤어? 생존 본능에서 온 의심, 질투, 미움, 욕심 등 온갖 감정을 가지고 모르는 것과 두려운 것 투성이인 세상을 살아가는 게 너희들 아니야? 사회는 선과 악이 뒤섞여 혼돈스럽고, 너희는 캄캄한 밤에 사는 양들처럼 된 것 아니야? 못된 계모 밑에서 구박당하고, 무시당하고, 차별당하고, 이용당하는 고아처럼.”

하나님의 마음이 보였다. 우리들이 많은 사랑을 받으며, 왕자나 공주처럼 특권을 누리고 살기를 바라고, 멋지고 신비한 세상에서 창의력과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생존에 목매지 않고 존귀한 존재 가치를 만끽하며 이웃과 어우러지기를 바라는.

그래서 자신의 감정, 생각과 말의 근원을 보게 하기 위해 어두운 마음에 빛을 비추고,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실재를 보며 진리를 찾게 하고, 그에서 나온 지혜로 주어진 환경을 복되게 만들도록 성직자들을 세운 것인데. 오히려 이들이 웅장하고 위엄 있는 성전을 지어 놓고, 신비한 능력이 있는 척, 진리를 꿰뚫고 있는 거룩한 하나님의 대리자인 척, 사랑의 화신인 척 탈을 쓰고 양처럼 순진하고 어리석은 우리들을 무시하고 몸과 마음과 물질을 갈취하며 호위호식하는 이리떼가 된 것이 보였다.

그사이 짙은 녹색으로 단단하게 성장한 생각이 아픔과 분노를 느끼며 따졌다.

“왜, 이리 같은 자들을 쓸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왜, 난들 이들에게 벼락을 때리고 싶지 않았겠어. 천둥처럼 크고 권위 있는 소리로 ‘그렇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싶지 않았겠어. 하지만 아름다운 언어로 설득하기로 했어. 사랑은 권력으로 정죄하고, 벌하고, 강제로 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론 네 말대로 하면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 그러나 인간과 나의 관계가 인격적인 생명의 관계가 되길 바래. 잡초를 뽑으려다 곡식까지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까. 온전치 못한 인간을 다 쓸어버릴 수도 없는 것이고. 낮아지고 희생하고 섬기는 방법으로,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고 죗값을 탕감해 준 다음, 너희를 거룩한 존재로 여기고 빛과 진리로 사랑하는 너희 안에 들어가 친구처럼 함께 살기로 한 거야.”

생기발랄해진 초록빛 생각이 또 따졌다.

“그렇다면 왜? 겨우 죄만 탕감해 주고 다시 죄지을 수 있는 성품은 그대로 뒀어요?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먹고 살 염려 없도록 해주면 죄를 짓지 않을 텐데…”

“먹고 살 염려가 없으면 죄를 짓지 않는다고 생각해? 끝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어. 모든 감정에는 선과 악이 뒤섞여 있어. 그래서 감정으로 죄를 짓기도, 스스로 망하기도 하지만 불의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며 존재 가치를 높이기도 하는 것이야. 그런 감정을 아름답게 다스리면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책임과 임무를 감당하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거 아니야? 이렇게 되기 위해 먼저 감정의 뿌리가 무엇인지, 상황 속의 진리와 실체를 바르게 봐야 하는 것이야. 그런데 너희들이 이것을 못 보네. 그래서 너희들이 볼 것을 보고, 알 것을 알게 하려 성직자들을 세웠어. 그런데 그놈들이 너희들 위에 군림하며 오히려 노예와 거지 근성 있는 종으로 만드는 거야. 천국과 축복의 욕망을 부추겨 충성하고 봉사하라고 강요하면서. 그리고 그곳에서 얻는 이익으로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배를 채우는 거야.”

나는 비로소 아린 사랑으로 태어난 성탄의 언어가 내 안에서 이미 생명이 되어 나와 소통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깊고 어둡고 추운 밤 이리들로부터 양들을 지키는 목동들과 아기 예수의 마음이 하나인 것이 보였다. 진리를 사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베푸는 차별 없는 공평함도 보았다. 낮아질 때 귀가 열리고, 진실과 다름이 보여 마음의 그릇이 커지는 신비도 알았다. 밝은 이해득실에 따른 간사함과 교만과 욕심이 가득한 이들에게는 꼭꼭 숨기고, 순진하고 바보들에게만 드러내는 얄미운 지혜에 몸에 짜릿한 전기가 흘렀다.

상상의 성탄이 이미 내 안의 생명이 돼 있는 것에 화들짝 놀랐다. 연한 물기 먹은 연두색 생각을 갸우뚱하게 하고는 그에 답하며 생각을 자라게 하는 아리디아린 사랑을 담은 성탄 이야기를 예쁜 카드에 그리며 새로이 떠오를 해오름의 날에 그 생명과 함께 할 미래에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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