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스턴 컬럼: 리더십 시리즈] 심민수 교수 세상에서 배운 리더십 ⓵
심민수 교수 – 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세상에서 배운 리더십 ⓵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마 23:10)
우리의 목회 현실을 직시해 볼 때 오늘날 과연 신앙공동체가 지녀야 할 성경적 본질을 온전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자신할만한 목회리더십 사례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든다. 이런 고민은 우리의 목회 현실이 성경적 원리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솔직히 자인하는 격이다. 현대의 모든 조직과 기관은 탁월한 리더에 의해 좌우된다. 사회 조직체는 한 지도자의 리더십 영향이 관련 조직의 산출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회의 공적 기관 운영에 익숙한 현대의 교인들은 교회의 사역자에게도 동일한 지도자로서의 잣대를 들이댄다. 이제 교회 구성원들조차도 세상의 문제를 다루듯 교회의 문제를 대하는 것을 전혀 이상히 여기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세상의 지도자를 이해하는 방식이 그대로 목회 현장에 있는 사역자들에게도 적용된 셈이다.
기업에서는 실력 있는 CEO를 모셔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작업으로 여긴다. 헤드헌팅이란 말이 있다. 헤드헌팅이란 기업의 최고 경영자. 임원, 전문기술인 등 고급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체에 그런 인물을 소개해 주는 일을 말한다. 이런 작업을 주업무로 처리하는 회사도 있다. 이를 서치펌(seach firm)이라고 한다. 이런 서치펌의 최고 순위 리스트에 올랐던 사람들 중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 인사들이 많다. 잭 웰치(Jack Welch, 1935-2020)도 그런 인물들 중에 한 사람이다. 잭 웰치는 20세기 미국 기업세계에서 대표적인 CEO 중의 한 사람으로 ‘전설적인 경영자’란 칭호를 받았던 인물이다. 1999년 <포춘>지는 그를 ‘20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선정하였다. 그는 계속되는 수입 적자로 인해 기업의 미래가 암울했던 제너럴 일렉트릭의 CEO로 부임하여 2년 만에 기업을 흑자로 돌린 특출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세상의 기업 관계자들은 그의 능력을 세기적인 것으로 칭송한다. 어떻게 잭 웰치는 그런 업적을 남겼을까? 사실 웰치는 8-90년대 미국 산업계에 해고 열풍을 불러 온 인물로도 유명하다. 기업을 살린 영웅적 이미지 뒤에는 또 다른 그의 과격한 정리 해고자로서의 면모가 감추어져 있다. 기업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는 회생 시나리오의 각본을 실행에 옮긴 웰치의 결단력을 용단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많은 구조 조정 희생자들의 눈물이 있었다. 기업에서 리더에게 기대하는 바는 오직 물질적 성과에 있다. 어떤 기업 성과를 낳았는지에만 초점 맞춰진 것이 기업 리더십의 생리이다.
군대에는 군인들을 통솔할 지휘관이 필요하다. 전쟁 중에 아군의 사상자를 최소화하고 적군을 무력화함으로써 승전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지휘관에 달린 문제일 경우가 많다. 전쟁의 역사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적 인물의 출현에 초점 맞춰지기 마련이다. 전쟁의 동기가 무엇이며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무명의 군인들이 희생되었는지는 영웅적 인물의 화려한 커튼 뒤에 가려지곤 한다. 아마도 근세 유럽의 역사 속에서 나폴레옹만큼 화려하게 그려진 인물도 없을 것이다. 그를 묘사하는 수많은 영웅적 에피소드는 전쟁사를 넘어 인물사에서도 뛰어난 필체로 그려진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1769-1821)는 코르시카 하급 귀족 출신으로 프랑스 대혁명의 배경 속에서 영웅으로 등장하였으나 프랑스 대혁명의 공화 정신과는 모순된 황제의 자리에 등극한 인물이다. 이렇듯 그의 모순적 삶의 스토리들이 그를 영웅적 존재로 더욱 부각시킨다. 타고난 야망가인 나폴레옹은 19세기 유럽의 역사를 전쟁사로 뒤덮은 대표적인 중심인물이기도 하다. 수사적 언변과 대중적 선동, 그리고 기회 포착에 특별한 재능을 지녔던 나폴레옹은 수많은 전쟁에 승리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상 실패한 전쟁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무수한 희생자들이 쌓아 올린 탑 위에 자리한다. 사람들은 그 탑 위에 세워진 영웅의 동상만을 바라보고 있다. 대개 영웅의 이야기는 그의 생애의 특출하고 비범한 특징에 초점 맞춰진 나머지, 간과해서는 안 될 배후의 진실의 세계를 백안시하는 위험성이 따른다. 이렇듯 전쟁 영웅의 이야기는 리더십 연구자들로 하여금 자칫 특출한 것에만 몰입하게 만드는 소재가 되곤 한다.
지난 세기 후반에 영국의 정치적 인물로 두각을 나타냈던 인물 중에 대처 수상이 있다. 대처(Margaret Thatcher, 1925-2013)는 1979년 집권 이전, 노동당 정부가 고수했던 각종 국유화와 복지정책을 포기하고 기업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통한 경제개혁을 추진하여 영국 경제의 재생을 꾀한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였다. 그녀는 당시 영국 노동자들의 잦은 파업과 과도한 복지로 인한 재정 악화, 근로의욕 저하 등 소위 영국병이라 불리던 고비용 저효율의 낙후된 경제구조를 개혁한 인물이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정치적 결단과 집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흔히 ‘철의 여인’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대처는 집권기(1979-1990)인 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에 승리했고 이후 지속적인 국민적 지지 속에서 3선에 성공하여 영국 총리 중 가장 긴 11년 7개월의 최장수 총리가 되었다. 그녀는 유럽 통합에 반대했고 줄곧 참여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이 사유로 인해 보수당 당수 경선에 실패하여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입장의 경제체제를 도입하여 영국병을 치료한 대처는 카리스마 리더십을 지닌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로서 영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인물이지만 과도할만큼 강력한 통치로 민영화 남발, 각종 정책 실패, 아들의 범죄행각, 칠레 독재자 옹호 등으로 한편으로는 많은 비판과 반대자를 남겼다. 그로인해 사망했을 당시 반대자들이 축배를 드는 등 양극단의 평가를 받았다. 이렇듯 세상에 유명한 지도자로 알려진 인물들 대부분은 그들의 통치력의 결과로 유익을 얻은 편과 손해를 입은 편, 양단으로부터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이것이 세상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세상의 리더십 연구는 한 인물의 전생애 전기적 연구보다는 대개 장점이 되는 몇 가지 특징만을 주목하는 경향이 짙다.
잭 웰치의 사례에서 보듯 경영학에서 말하는 최고 경영자에 대한 평가는 오직 기업의 수익 구조와 관련된 경제적 성과에 초점 맞춘다. 문자 그대로 경영자의 경영 능력이 기업의 수입을 늘리는 결과로 이어졌느냐 하는 것을 평가할 뿐이다. 그의 전략적 선택이 구성원 개개인의 미래를 어떻게 결정지었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책임이 없는 듯이 말이다. 최고 경영자의 인격이나 사생활, 도덕성과 인테그리티 따위에는 굳이 시선을 모으지 않는다. 오로지 그의 업무 능력과 전문성, 기술력과 의사소통능력 등 경영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개인적 재능에 집중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경영학적 리더십의 초점은 기독교 신앙공동체의 리더십의 초점과 근본적인 차이를 지닌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서 살폈듯 정치학이나 군사학에서 말하는 최고 통수권자에 대한 평가는 국제 관계 속에서 국가의 위상과 전쟁에서의 승전에 따른 국가적 영웅의 면모를 얼마나 펼쳐 보이느냐에 달려 있다. 실제로 군대에서 명성을 얻은 나폴레옹이 당시 프랑스의 통치령에 불과했던 이탈리아 인근 코르시카 섬의 하급 귀족 가문 출신이란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의 무공을 통해 화려한 진급을 계속하였고 그의 정치적 수완을 통해 최고 통수권자(결국은 황제)의 위치 올랐다고 하는 것은 그의 개인적 삶의 속내 보다는 대중적 인기와 호감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정치학이나 군사학에서 말하는 리더십의 중심은 기독교 신앙공동체의 리더십의 문제와는 다른 길을 간다고 할 수 있다.
대처 수상에게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정치행정학에서 말하는 정부의 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혼란스런 국가의 경제적 상황에서 행정적 결단력과 판단력에 주목한다. 통계 수치와 경제 자료 분석으로 판단되는 행정 지도자의 면모는 그 지도력이 가져온 결과 이면에 급변 사태로 발생한 희생 잔해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환호와 박장대소가 있는 한, 일부의 한숨과 비분강개는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총체적으로 무엇이 더 이득이고 누구에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 왔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오늘날의 사회 현실에서 모두를 위한 정치행정 리더십이란 존재하기 어려우며 사람들은 그런 것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행정학적 리더십에서 나타나는 이런 모습이 기독교 신앙공동체의 리더십과 동일하게 다루어질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요컨대, 경영학에서 최고 경영자들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의 요체가 성과라면, 정치학에서 통치자에게 요청되는 리더십의 핵심은 국가발전이다. 군사학에서 군지휘관에게서 찾는 리더십의 요건이 승전전략실천이라면, 행정학에서 관료지도자에게서 구하는 리더십의 중심은 국정안정이다. 이렇듯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리더들에게 요구되는 바는 뚜렷하다. 그 분야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요건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 분야의 리더로 선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공동체의 리더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최고경영자나 정치권력자, 최상위관료나 군최고지휘관 이들과 동일한 조건과 자질을 가진 사람이면 가능한가? 이런 물음에 긍정한다면 교회의 목회자는 경영지도 경험, 정치지도 경험, 군대지도 경험, 행정지도 경험에 출중한 사람 중에 뽑아 세우면 된다. 굳이 신학교 나오고 교회 생활이나 선교단체 경험 등을 들먹일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직 필자가 말하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세상의 지도자들의 모습에서 배운 리더십의 잔영을 지닌 채 교회적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지도자들로부터 배운 리더십에 대한 인식이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도 등장했던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무엘상 8장에는 사사시대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 즉 이방 나라 같은 왕정시대의 출현을 알리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각 지파의 원로들이 사무엘에게 나와 “우리에게도 이방 나라처럼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무엘이 늙어 사사(판관) 일을 감당하기에 어렵게 되니 그 아들들에게 그 역할을 세습하였는데 이들이 뇌물을 받고 판결을 그르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일이 이쯤 되자, 각 지파의 원로들이 나서서 왕을 세워 제대로 된 나라를 세우자는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입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점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파 연합체로서 오로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광야에서 하나님을 직접 경험했던 세대가 사라지고 그 믿음의 유산이 이어지지 못하게 되자 지파 연합체의 원래 모습은 소실되고 하나님을 향한 야훼 신앙도 변질 되어 우상숭배의 범죄 가운데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일이 반복되었다. 사사시대의 구체적 사례를 보면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 그로 인한 이방의 침입, 돌이켜 하나님께 부르짖음, 이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이 사사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역사가 이어졌다. 이런 회복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이스라엘 백성은 반복된 범죄 행각을 벌이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불순종의 길을 반복하였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통치 구조를 포기하고 이방 나라의 왕정구조를 모방하기에 이른다. 이 시작은 사이비 사사에 대한 불만에 기인하여 그 자구책을 마련한다는 것이 그만 이방 나라의 왕정을 끌어들이는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원로들의 왕정 요구에 대해 사무엘은 두 차례나 여호와께서 주신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였으나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원성이 더 커지자, 하나님은 어리석은 무리의 선택을 허용하시게 되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을 정리하면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백성들이 세상 군주들의 허울 좋은 통치를 모방하고자 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이방 나라처럼 왕을 세우게 되면 신분계급과 무거운 세금과 부역 등의 권력에 의한 억압 상태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강하게 경고하셨지만 인간 권력이 보여주는 외형적 화려함에 매돌 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설계 하셨던 원형의 삶을 상실하고 이방인들과 동일한 삶의 굴레를 따라 가기에 이른 것이다. 왕정체제로의 전환 결과로 왕이 모든 백성의 주인이 되고 왕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권력에 의한 체제가 구축되자 하나님 백성들의 삶은 이방 나라와 동일한 모습으로 세속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게 되었다.
왕정체제로의 역사적 진행과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아는 바다. 사울과 다윗 이후 솔로몬 시대에 중앙집권체제의 강화는 결국 백성들 가운데 불만이 쌓이게 되었고 급기야 그의 아들 시대에 불만 폭발로 발화하게 되었다. 솔로몬의 아들로 태어나 궁중의 모든 기득권을 누리며 자랐던 르호보암은 군주로서의 자격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왕위에 오르고 가장 먼저 결정한 정책이 바로 철권통치를 이어받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통치 행위는 주변 친구들의 부추김 속에서 어리석은 판단으로 이어져 국가분열이라는 뼈아픈 결말을 가져왔다. 그 이후, 분리되어 나간 북쪽의 10개 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하여 북이스라엘을 열었으나 기원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250여년간 단 한 명의 선한 통치자도 보유하지 못하였고 기원전 586년 신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남유다 왕조 역시 야훼신앙 아래 왕국을 회복한 왕이라고는 소수에 불과하였다. 이는 세상 왕조 방식의 권력 체제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진정한 정체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현대의 교회들이 이런 왜곡된 리더십에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을 수는 없을까?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