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牧會斷想] 울 밑에 선 봉숭아
지준호 목사(헌츠빌 은퇴, 자유기고가)
울 밑에 선 봉숭아
울 밑에 봉숭아 씨앗을 심고 정성스레 물을 주었다. 두어 달이나 지났을까? 은혜에 답이라도 하는 듯 새싹을 틔우고 자라 고운 핑크 꽃을 피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온 가족이 리빙룸에 둘러앉아 꽃잎을 따다 접시에 담아 콕콕 찧어 반죽을 만든다. 그리고 손녀의 작고 여린 손톱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하얀 헝겊으로 싸맸다. 이렇게 고깔모자가 씌워진 열 손가락을 소중하게 받들고 손녀는 몸을 굴려 침대 위로 올라가 가슴 위에 단아하게 올려놓고 잠을 청한다. 온 잠자리를 휘저으며 꿈나라로 가더니 행여 손톱 위의 봉숭아를 다칠까 얌전해진 모습이 애처롭고 귀엽다.
이튿날 아침 물들여진 손톱을 상상하느라 설친 잠에서 깬 손녀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다소곳이 엄마 앞에 앉아 고깔모자 하나하나를 벗긴다. 오렌지색으로 곱게 물든 손톱이 드러나는 대로 가족 모두가 이를 만지고 보며 감탄을 한다. 손녀는 사랑받는 기쁨과 아름다움에 겨워 몸 둘 바를 모르며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이를 보는 가족이 사랑의 눈길을 서로 주고받으며 행복에 겹다.
행복은 이처럼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온다. 인간은 어머니 몸을 빌린 하나님 품 안에 있다가 이별의 아픔을 맛보며 세상에 태어난다. 그래서 가지게 되는 하나 됨을 사모하는 본성을 하나님은 사용하시어 가정을 이루게 하시는가 보다. 하나 되고 싶은 욕망으로 부부의 연을 맺게 하고 하나 되어 생명을 태어나게 하면서 ….
이렇게 오묘한 지혜에 의해 이루어진 가정에서 다른 문화와 사고를 갖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와 부부 아들과 딸 손자 손녀가 서로 어울려 사회생활을 한다. 사랑하고 태어나고 성숙하고 늙으며 서로 약한 부분을 채워주고 채움을 받으며, 놀이를 함께 하는 벗이, 스승과 제자와 상담자가 서로에게 되면서…, 그리고 삶 가운데서 받는 상처가 치료되는 곳, 지혜와 용기를 얻는 하나님 품을 닮은 보금자리가 된다.
이렇게 행복의 근원이 되는 가정을 인간들은 욕심과 이기심에 노예 되어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문명의 이기를 따르며 변질시켜 버렸다. 서로 다른 사고와 생활 방식으로 함께 살기 힘들다는 핑계와 개인의 고유한 자유를 주장하며 핵가족을 선택하면서…. 이러곤 고속으로 변화하는 문명사회를 쫓아가기 버거워 결혼과 아이 낳아 양육하는 것까지 포기하는 시대에 우리는 산다. 가면을 쓴 사회생활에서의 성공과 문명이 행복을 주는 것이라 착각하고서….
이러한 어리석음을 하나님은 처량하게 여기시는가 보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니 어여쁜 아가씨들이 찾지 않아 외로워진 울 밑에 선 봉숭아를 보며 네 모양이 처량하다 노래한 시인처럼…. 이를 보다 못한 하나님은 강제로 사회 격리를 해야 하는 환경을 만들어 욕심에 찬 이기심, 교만, 자존심, 돈과 남의 눈, 진리에 무지함과 빠르게 발전하는 문명에 노예 되어 있음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흙으로 지어진 존재라 자연으로부터 오는 양식과 공기를 몸속에 공급하고 배출하며 행복을 맛보고, 하나님이 불어넣어 주신 사고력과 감정으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감상하며 행복을 더하고, 각기 다르게 주신 창의력과 은사로 성취감과 존재 가치를 높이며 복된 사람이 된다. 그리고 다르게 주어진 재능을 협력하고 진리를 공감하는 데서 오는 능력과 하나 됨으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살아서 경험을 한다.
이러한 진리를 무시한 인간들에게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고 만나는 현실이 소리치는 듯하다. 네 안에서 네가 추구하는 열정과 말과 행동을 주관하는 주인이 누구냐? 그가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라! 그리고 지금은 힘들고 어렵다고 아우성치기보다 잠잠히 귀 있는 자 되어 행복이 오는 진리에 귀 기울일 때라고…. 말하기보다 귀 기울여 옆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할 때라고….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인간과 인간이 진리 안에서 진실을 나누며 사랑하고 하나 되는 데서 오는 행복을 회복해야 할 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