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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호프 커뮤니티 난민 선교(8)

시티호프 어린이 교회 시작

시티호프 커뮤니티 난민 선교(8) </BR></BR> 시티호프 어린이 교회 시작

 

/ 대표: 김지선, 영어명 Lori Kim

 

버마(미얀마) 무슬림 가정집에서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며 위험한 아파트 단지에서 방과후학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옆집의 소말리 남자아이들도 와서 함께 공부하고 싶어 했는데 버마 가정의 아빠가 그들을 못 오게 하였습니다. 자기 딸들을 때린 나쁜 아이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소말리 부모는 자기 아이들의 숙제도 도와달라고 제게 애원을 했는데 버마 아빠의 반대가 너무 완강하여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나라와 언어가 다른 모든 아이를 다 도와주고 싶은데 버마 아빠가 너무 까다로워 장소를 옮겨야 할 때가 왔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아파트 단지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저희가 섬긴 가정이 없어 내키지 않았지만, 그 가정의 응접실에서 동네 아이들의 숙제를 계속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봉사자가 사역에 필요한 곳에 사용하라며 만 불을 헌금해 주셔서 기도 끝에 바로 그 아파트 단지에 방 두 칸짜리를 일 년 렌트하는데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아파트 리징오피스에 가서 일 년 렌트를 계약하였습니다. 매니저가 제게 아파트 사용 용도에 대하여 들은 후, 그 아파트 단지의 불량배 네팔 청소년들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대낮에 학교도 안 가고 도둑질하고 대마초를 피우고 갱 활동을 하며 말썽을 피운다며 너무나 골칫거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매니저의 말을 듣는 순간 일 년 계약서에 이미 사인한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방과후학교에서 봉사할 여대생들의 안전이 걱정되었습니다. ‘이래서 이 위험한 아파트단지에 방과후학교를 절대 하지 않기로 했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매니저가 제게 방과후학교에서 아이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면 그 불량배들도 도와줄 수 없겠냐고 물었습니다. 완전히 상반되는 두 가지 일을 같은 종류의 일처럼 연관시키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받았지만, 순간적으로 그 불량배들을 네팔 목사님에게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니저에게 네팔 목사님과 의논하여 그 불량배들을 돕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였더니 매니저의 표정이 너무나 밝아졌습니다. 그 아파트 단지에서 우리의 안전을 위하여, 한편으로 그 불량배들을 위하여 누군가는 그 사역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며칠 후 네팔 목사님을 만나 네팔 불량배들을 위한 사역자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목사님께서 그렇지 않아도 계속 늘어나는 새신자들로 인하여 교회 일꾼이 턱없이 부족하여 고민이라고 하였습니다. 답답한 심정으로 그 불량배들을 사역할 네팔 사역자를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렸는데 기도 응답을 빨리 주지 않으셨습니다.

저희가 렌트한 방 두 칸짜리 아파트를 오피스 겸 방과후학교로 사용하며 시티호프 오피스로 명칭 하였습니다. 초라한 응접실이지만 테이블 몇 개와 의자들을 배치하니 멋있는 방과후학교로 단장되었습니다. 바퀴벌레약도 치고 옆집에서 벌레가 건너오지 못하게 구석구석 약을 뿌렸습니다. 다른 방과후학교 장소는 난민가정 응접실을 사용하니 제한받는 것이 많은데 이곳은 부엌도 마음대로 쓰고 자유로워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습니다. 한 버마 가정의 아이들을 돕다가 예상치 않게 시작된 방과후학교라 학기 도중 대학생 봉사자들을 더 모집하기 어려워 당분간 제가 그 장소를 맡기로 하였습니다.

새 아파트에서 첫날 방과후학교를 마치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가려고 주차장에 있는 제 차에 탔는데 갑자기 회의감이 몰려왔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괜한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다. 저 애들을 돕는 게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나.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라는 생각이 엄습하였습니다. 그 회의감이 프리웨이를 타기 직전까지 약 5분간 계속되었습니다. 다음 날도 방과후학교를 마치고 같은 시간에 주차장에서 차에 타자마자, 전날과 같은 회의감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약 5분간 계속되다가 없어졌습니다. 그 5분이 정말 길었고 힘들었습니다. 사역하면서 가장 힘들 때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삼 일째도 방과후학교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같은 시간에 집에 가려고 차를 타자마자 그 회의감이 또 들었습니다. 그때야 저는 그것이 사탄의 공격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 동역자들께 기도를 요청하였습니다.

그 후 바로 그 회의감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왜 그런 회의감이 들었는지 몰랐는데, 세월이 지나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방과후학교의 아이들이 모두 다른 종교의 불신자들이었는데 나중에 두 명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과후학교는 지금까지도 불신자 아이들을 사역하는 귀한 장소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사탄이 많은 어린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 올 것을 알고 저로 하여금 그곳의 사역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그런 회의감을 준 것 같습니다.

그 아파트 단지에는 다른 아파트보다 무슬림들이 더 많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소셜 서비스, 병원 등 여러 가지로 그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희를 신뢰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저희 오피스를 찾아왔습니다. 방과후학교의 아이들 열 명을 데리고 다른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시작하다가 저희 오피스로 장소를 옮겼는데 그 아파트 단지의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60명이 되었습니다. 좁은 응접실에서 60여 명의 아이들이 찬양하고 소그룹으로 성경 공부하고 태권도 레슨도 하였습니다. 더운 여름에 60명 아이들의 땀 냄새로 인하여 숨쉬기 힘들 정도로 괴로웠던 것을 제외하고 교사들도 아이들도 정말 즐거워하였습니다.

세 시간의 모임이 끝나고 아이들이 집에 갈 때 너무나 아쉬워하였습니다. 근처 큰 미국교회에 교실을 빌려 장소를 옮기기 전까지 9개월간 시티호프 오피스의 좁은 응접실에서 어린이 주일학교를 하였습니다.

9개월 후 미국교회에서 어린이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그중에 청소년들도 몇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범상치 않은 모습의 청소년들이 한 명씩 주일학교에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지는 엉덩이에 반쯤 걸치고, 목과 팔에 문신이 있고, 예배 중 건물 밖에 나가 대마초를 피우고, 죽자고 말 안 듣는 청소년들이 한두 명씩 늘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청소년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청소년 예배를 따로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서야 그 청소년들이 아파트 매니저가 말하던 그 네팔 불량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불량배들을 위하여 네팔 사역자를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네팔 사역자를 보내주시지 않고 그 불량배들을 저희에게 보내주신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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