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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牧會斷想] 감사절 장식하다 꾼 꿈

[목회단상 牧會斷想] 감사절 장식하다 꾼 꿈

지준호 목사(헌츠빌 은퇴, 자유기고가)

“감사절 장식하다 꾼 꿈라”

가구들을 이리저리 옮기며 사다리를 타고 벽을 오르내렸다. 갈색 호박, 울긋불긋한 단풍잎, 싱싱한 초록색의 삐죽 머리 무와 곱슬머리의 배추, 땅콩, 사과, 들국화 등으로 추수감사절 장식을 하고 있었다. 한낮이 되었다. 피곤이 몰려와 잠시 앉아 쉬다가 고개를 끄떡이며 졸았다. 나와 아내,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가 풍성한 추수감사절 분위기가 무르익은 리빙 룸에 둘러앉아 있었다.

“우리 감사 경연 대회 할까?” 내가 말했다. “어떻게 하는 건데요?” 손녀가 물었다. “돌아가며 감사한 것들을 말하는 거야. 무릎 치고, 손뼉 치고, 양손 엄지를 척척 한 다음 감사한 것을 말하는 것이지. 했던 감사를 또 하거나 밑천 떨어져 박자를 맞추지 못하면 술래가 되는 것이야.” 나는 설명해 주고 “모두 알았지?” 했다. ‘세상에, 그렇게 쉬운 놀이에서 술래 될 다른 사람이 있을까? 할아버지 말고는….’ 하는 표정으로 싱거운 미소를 지으며 모두 엉덩이를 바짝 당겨 둥글게 둘러앉았다.

“할아버지가 기준이고 왼쪽으로 돌아가는 거야.” 나는 놀이의 시작을 선언하였다. 박자에 맞춰 온 가족이 함께 손바닥으로 무릎 치고, 손뼉 치고, 엄지 척척했다. “엄마 주신 것 감사.” 영희가 엄마 얼굴을 보며 박자에 맞춰 말했다. 무릎 치고, 손뼉 치고, 엄지 척척 한 다음, “아빠 주신 것 감사” 철수가 이어 갔다. 엄마가 사랑스러운 눈으로 딸을 바라보며 “영희 주신 것 감사”했다. “철수 주신 것 감사” 아빠가 따라 하듯 했다. “할머니 주신 것 감사” 내가 말했다. “할아버지 주신 것 감사”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가 맞장구쳤다. 배추 주신 것 감사, 쌀 주신 것 감사, 사과 주신 것 감사, 포도 주신 것 감사…. 무궁무진한 감사 거리를 말하며 모두가 행복에 겨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감사 거리를 찾느라 저마다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행복 누릴 겨를도 사라져 버렸다. 아슬아슬하게 박자에 맞춰 답하는 가족들의 입을 조마조마한 눈으로 바라보다 내가 “아픔 주신 것 감사”라고 했다. 영희가 박자 맞추던 짓을 멈추고 손을 번쩍 들었다. “아픈데 어떻게 감사를 해요?” 조롱하듯 따졌다. “할아버지가 술래야.” 철수가 신나서 두 손을 들고 소리쳤다. “설명할까?” 내가 응수했다. 영희가 “해 보세요” 했다. “할아버지 젊었을 때 허리가 많이 아팠어. 그때부터 난 매일 걷기 운동과 요가를 했지. 그 덕에 지금 이렇게 나이가 들었어도 허리가 안 아파. 허리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오히려 젊어졌잖아. 그래서 아픔이 감사 거리가 된 거야. 이때부터 난 아픈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능력도 생겼어. 어떻게 위로할지 지혜도 생겼고. 아파봤거든.” 영희가 넋 나간 듯 고개를 끄떡였다. 우리는 다시 박자를 맞추고 감사 놀이를 했다. 영희가 “비 오는 날 주신 것 감사”했다. 할머니가 손을 들고 “왜 비 오는 날 주신 것 감사를 하지?” 물었다. “곡식에 물을 주는 비잖아요. 그리고 난 우산 쓰고 걸으며 물장난하는 것이 즐거워요” 했다.

다시 두 손으로 무릎치고 손뼉 치고 엄지 척척하고는 며느리가 “범죄 주신 것 감사”했다. 철수가 눈이 동그래져 “엄마가 술래야” 소리쳤다. 며느리가 말했다. “엄마가 감사하는 이유를 말해야겠네.” 철수가 “당근이지” 했다. “범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떻게 하면 범죄 없는 세상을 만들지 고민하게 되었어. 그러니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는 거야. 세상에서 내가 할 의미 있는 일이 보이고.” 철수가 할 말을 잃고 입을 딱 벌렸다. 나는 “대답에 이의가 없으면 다시 시작” 했다. 달 주신 것 감사, 해 주신 것 감사, 별 주신 것 감사, 공기 주신 것 감사, 나무 주신 것 감사, 순조롭게 감사 거리를 댔다.

집안에서 감사 거리가 동이 나 밖에서 찾는데도 밑천이 드러나 우물쭈물하던 철수가 “얌체 친구인 동수 주신 것 감사”했다. 모두 깜짝 놀란 눈으로 “이건 이유를 듣고 넘어가야 해” 했다. “동수가 얌체 짓해서 미웠는데 내 마음을 넓게 만들고 더 절친한 친구가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잖아요.” 철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이야기했다.

한낮에 꾼 꿈이었다. 누군가가 “세상은 왜 이리 고통스러운가? 그러나 이토록 아름다운가?”라고 고백했다. 불평거리가 있을 때, 미운 사람을 만날 때,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불의와 슬픈 일이 닥칠 때, 감사의 조건을 먼저 찾기로 했다. 그리고 내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찾기로 했다. 세상에 감사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다. 주신 것에서부터 시작한 어리고 작은 감사를, 불평거리와 힘들고 어려운 것까지 잘 익은 감사로 성숙시키기는 맛이 이리도 큰지 미처 몰랐다. 내 존재의 가치가 점점 커져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죽음이 보이는 듯한 힘겨움, 늑대 울음소리만 들리는 메마른 사막 같은 세상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감사로 이기고 모든 삶에서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빛나는 내 눈동자를 그려 보았다. 만나는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감사하며 사랑의 음성을 먼저 들어야지. 그리고 내면을 치료해야지. 그다음 진리를 깨닫고, 마음을 강하고 크게 하는 훈련을 해야지. 그래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가치 있는 행복한 존재가 돼야지. 잘 익은 감사를 할수록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온 온몸으로 느꼈다. 한낮의 꿈이 내 영혼에 은총을 입히고 평화를 누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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