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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관 목사의 목회의 길에서] 삼위일체의 하나님

[이수관 목사의 목회의 길에서] 삼위일체의 하나님

 

제가 기독교를 처음 접했을 때 삼위일체라는 말은 얼핏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세분이신데, 그 세분이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말은 믿음이 가는 말이라기보다는 기독교는 정교하게 짜인 이론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었고, 다른 얘기들도 그런 식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믿음에 방해가 되는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신앙을 가진 이후에 세월이 지날수록 삼위일체는 제 신앙을 굳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물론 지금도 ‘셋이 하나’라는 그 명제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그것은 우리와 차원이 다른 분을 우리의 이해 범위 내의 표현 방법으로 설명한 것이므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어떤 분일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우리가 천국에서 하나님을 직접 만나 볼 때만 가능할 것입니다. 다만 저는 하나님이 여러 모습으로 우리에게 와 계신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신앙을 가지기 전에 하나님은 저에게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은 늘 저의 행동을 지켜보고 계시고 내가 실패할 때마다 못마땅해하시고 벌 줄 기회를 찾으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이렇게 교회를 다니지는 않아도 기본적인 신심(神心)이 있는 사람이나 종교적인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늘 두려운 존재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세상을 창조한 그분이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계시니 두렵지 않을 수가 없고, 결국은 사람을 숙명론에 빠지게 만듭니다. 중동의 ‘인샬라(알라의 뜻대로)’가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이 있기에 이 모든 염려가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모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 슬픔, 좌절, 오래 참으심, 오랜 계획, 용서, 약속 등 우리를 향한 작은 숨결 하나하나가 예수님 안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예수님의 영접을 우리의 구원에 유일한 조건으로 거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앎으로 비로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 역시도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고통을 안다고 해도 아마 피상적으로 아실 것입니다. (물론 전지전능에 어긋나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인간의 상황을 우리의 방식대로 느껴보신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는 슬픔도 겪어보고, 유혹도 당해보고, 배신의 고통 같은 모든 감정적인 고통을 겪으시고, 무엇보다도 십자가를 통해 육체의 고통을 가장 처절하게 맛보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몸소 체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을 속속들이 아신다는 알 때 비로소 왜 성령님이 오셨는지가 이해가 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혼자 두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삶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 때 우리에게 들어오셔서 ‘이제는 네 걱정이 나의 걱정이 되고, 네 소망과 꿈이 나의 소망과 꿈이 되어서 너와 함께 살아가겠다.’라고 하는 하나님의 가장 섬세한 배려입니다. 성령님에 대한 이해는 어릴 때 나를 두렵게 하고 멀리만 계시던 하나님이 아주 가깝게 나에게 다가온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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