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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통령의 사과

[시론] 대통령의 사과

 

시론을 써달라는 부탁을 신문사의 채 기자에게 부탁을 받았을 때 나는 내가 감당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잠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고 오직 교회에 틀어박혀 목회만 해오던 나에게 시론이란 전혀 생소한 부분이었으나 내 멋대로 글을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후 대답은 짧고 명확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에 따라 일단 하겠다고 했지만 그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글 한편을 작성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말을 한대로 약속을 지키고 실천을 하는 것인데 그러려면 적절한 말을 하여야 한다. 적절한 말이라 함은 자신의 한계와 역할을 명확히 하는데서 출발한다. 이는 평범한 소시민이요, 목사인 나뿐 아니라 정치인이나 경제인 등 모든 사람들이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어느 마을에 이장선거가 있었다, 그 마을의 철공소 주인은 이장 후보를 추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런데 자신이 추천한 이장 후보가 그만 당선되지 못하였다. 마을 어른들은 마을에 이장이 없으면 안 되니 임시로라도 그 탈락한 자가 이장 대행으로 일을 하라고 하면서 철공소 주인에게 새로운 이장 후보를 선정하라고 요구하였다. 철공소 주인은 자신이 추천한 후보가 탈락되자 화가 났지만 화를 표출할 수는 없는 법! 따라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이장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추천권을 행사하지 않고 그가 임시대행을 하는 것을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대행이면 어떠랴? 그냥 오랫동안 하세요.’ 이런 심정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철공소 주인에게 어서 이장 후보를 추천하라고 재차 요구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데서 생긴다고 바로 앞의 포목점이 개업을 하면서 이장 대행은 축하하는 의미로 큼지막하게 자신의 이름 뒤에 ‘이장 대행’이라고 쓴 난을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평소 그 이장 대행을 좋지 않게 생각하던 포목점 주인은 그 난을 받지 않고 이장에서 낙선했으면 대행이라는 것도 내려놓아야지 무슨 이장 행세를 하느냐고 따지면서 인사도 받지 않았다.

철공소 주인은 그 소식을 듣고 즉시 이장 대행에게 봉변을 당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마을 어른들이 그 사람을 이장 대행으로 세웠으면 존중을 해야지 무시를 한다고, 감정이 있으면 나한테 말을 하지 왜 아무 죄가 없는 이장 대행에게 하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이장 후보를 추천할 막중한 책임에 대한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이 철공소 주인의 행동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조를 할지 난 모르겠다.

대한민국 국회의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에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문제 때문에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결국 국정감사가 파행된 것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수모를 당한 김이수 권한대행께 대통령으로서 정중하게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과(謝過)는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빈다.’라는 뜻이다. 대통령의 사과는 그 대상자가 김이수 대행인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 자신이 김대행에게 무슨 잘못을 해서 용서를 비는 것이라면 헌법재판소장 후보를 빨리 정하지 못해 그 결과로 김 대행이 국회에서 봉변을 당한 것에 대한 사과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국회의 행동을 꾸짖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과를 하려면 국민에게 자신의 직무유기를 사과해야지 국회와 헌법재판소간에 생긴 일을 제삼자인 대통령이 뭐라고 사과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사과의 대상과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거나 파악을 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뭐라고 나무라지 말자. 대통령이 적절하지 못한 말을 하니 그 말에 대한 책임을 물을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마음이 편하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목사들도 적절한 말을 하지 못해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잊지 말자.

A교회는 그 교회를 개척했던 목사가 원로목사로 물러나고 후임 목사가 부임했다. 그런데 원로목사는 화장실의 휴지 사용하는 것부터 잔디밭에 물을 주는 것까지 후임 목사에게 잔소리를 하였다. 성실한 후임 목사는 처음에는 원로목사의 말을 잘 들었으나 시간이 지나도 계속되는 잔소리에 질려서 그만 교회를 사임하고 말았다. 후임 목사를 믿고 잔소리를 하지 않았으면 그 후임 목사는 일을 더 잘했을 것이다. 두세 번 그런 일을 겪고 나니 그 교회는 교세가 줄어서 이제는 그 원로목사가 다시 담임이 되었지만 아직도 교세가 준 원인을 후임들 탓으로 돌리고 있다. 적절하지 못한 말을 하는 자들은 책임을 질 줄도 모르는 법이다.

말에 대한 책임을 지려면 적절한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적절한 말은 자신의 역할과 한계를 알고 노력을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 노력의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되는 한에서 말을 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자는 생각 없이 말을 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약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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