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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아래서 (10)]
내 몸이 성하다?

<span style=" font: bold 0.8em Nanum Gothic, serif ; color: green;">[무화과나무 아래서 (10)]</span> </br><span style=" font: bold 0.5em Nanum Gothic, serif ; color: fuchsia;">내 몸이 성하다?</span>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내 몸이 성하다?

얼마 전 읽는 순간 단번에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 시가 있었습니다. 매우 짧은 시지만 그 시가 던져준 의미는 결코 작거나 짧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입니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성하다.’

너무 짧아서 몇 번 보면, 외어질 정도입니다.

이 시는 이정록 시인의 ‘서시’입니다.

우리는 윤동주 선생님의 ‘서시’만 기억하지만, 이정록 시인의 ‘서시’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강렬한 단어들의 조합을 생각해 보면 이정록 시인의 서시가 파괴력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는 읽을수록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집니다. 여러분도 한번 시를 다시 읽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 보십시오. 고향이 시골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나무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시골 출신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가본 시골 마을을 상상해 본다면 더욱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어린 시절 찾아갔던 시골 할머니 댁, 중고등부 여름 수련회로 갔던 시골 동네, 그것도 아니면 대학교 시절에 농활로 갔던 깡촌 마을을 말입니다.

어느 시골 동네가 동네 입구에는 그 동네를 대표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보통은 평상이 나무 주위로 놓여있거나, 슈퍼들이 나무 근처에 있습니다. 어떤 시골에서는 나무 구멍에 시멘트를 발라 놓은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무에는 어김없이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부러지 흔적, 리어커나 트럭들이 한번 받은 흔적 등등 수없이 많은 상처들이 있습니다.

반면 산속 깊은 곳에 있는 나무들은 멀쩡합니다. 멋지고 아름답게 자라기도 합니다. 미국 산에 있는 나무들을 보면 너무 잘생겼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다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아마 그냥 멋진 나무 정도로 생각하지 그 나무들을 보면서 아련한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동네에서 아이들이 올라가고, ‘누구누구랑 좋아한대요’ 이런 낙서가 파여 있는 동네 어귀의 나무들이 상처도 많지만, 추억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랜만에 동창들이 만나서 이야기하더라도, 그때 그 나무 옆에서 싸운 이야기, 이 나무 앞에서 연인과 헤어진 이야기, 그 나무 앞에서 엄마에게 매 맞은 이야기가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를 읽으면서 이상하게도 신앙생활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깨지고 부서지고, 상처 입고, 수치를 당했는데, 우리는 너무도 멋지게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회에서도 상처받지 않고, 안전하게 신앙생활하려고 적당한 거리를 두는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신앙생활마저도 취미나 동호회 정도로 여겨서, 희생과 헌신은 없고, ‘너무도 성하게’ 주님을 믿는 모습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은 그렇게 사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상처의 삶이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은 망가지면서도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온전한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면 어쩌면, 상처받고, 부러지고, 깨지고, 때로는 밟히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주님은 성한 곳이 하나도 없는데…

오늘 우리가 너무도 성하다면 우리 삶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성하다.’

주여 내가 아직까지 성해서 죄송합니다.

이제는 내가 성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님의 교회가 성하도록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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