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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희 사모의 가정상담칼럼]
도움이 되는 조언, 상처가 되는 비판

<span style=" font: bold 0.8em Nanum Gothic, serif ; color: green;">[심연희 사모의 가정상담칼럼]</span> </br><span style=" font: bold 0.5em Jeju Gothic, Nanum Gothic, serif ; color: fuchsia;">도움이 되는 조언, 상처가 되는 비판</span>

심연희 사모(RTP 지구촌 교회,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상담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대화의 기술은 단연 공감이다. 상대의 아픔과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공감을 통해 드러난다. 상담의 90퍼센트가 공감만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감이 100퍼센트가 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더 나은 방향으로 걸을 수 있도록 도전해야 할 때가 온다. 혹은 허용되는 행동과 허용되지 않는 행동에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법정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편지를 안 써준다고 상담소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펄펄 뛰다 돌아간 내담자는 다시 상담을 받을 기회를 상실한다. 가족과의 관계가 칭찬으로만 일관할 수 없다. 물론 칭찬을 충분히 많이 해야 하지만, 문제가 있는 행동을 지적하고 선을 그어야 할 때도 많다. 아이들에게 늘 잘한다고만 할 수는 없다. 지나친 칭찬과 허용이 아이를 망치기 때문이다. 배우자에게 잔소리를 아예 안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회 안에서도 성도 간의 관계가 위로하는 것에서만 그칠 수는 없다. 늘 편을 들어주면 상대방과 틀어질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제 좀 그만 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언제까지 똑같은 불평을 계속할 것인지, 언제까지 주저앉아 있을 것인지 답답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상대에게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대인관계에서 늘 좋고 재미있는 일만 있으면 바랄 것이 없겠지만 이것은 현실감이 떨어지는 기대이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있다. 문제가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성경말씀처럼 완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서로 가까워지는 동안에는 좋은 점만 보인다. 연애를 시작하는 몇 달은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세상은 온통 아름답고 모든 문제가 사라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도파민이 정상수치로 돌아오면 상대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흔한 말로 콩깍지가 벗겨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친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친해지는 동안에는 연애하는 사람들처럼 자주 보고 싶어 하고 함께 하는 시간이 재미있다. 그러나 서로를 알아가면서 장점과 함께 단점이 드러나면서 갈등이 떠오른다. 새로 들어간 직장의 너무나 좋고 감사한 마음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진다. 싫은 사람이 생기고 조직의 문제를 파악하기 시작하면서이다. 교회에 부임한 목회자도 ‘허니문’의 기간이 있다고 말한다. 교회와 성도님들과 사랑에 빠지는 시간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목회자도 성도들도 서로의 단점을 보기 시작한다. 어떤 관계에나 예외 없이 갈등과 문제가 불거지는 때가 오는 것이다.

문제와 갈등에 반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문제가 있을 때 목소리를 한껏 높여 외치는 스타일이 있다. 사명감을 가지고 들이받는 사람이 있다. “나니까 이런 얘기 해주는 거야”라며 조목조목 잘못을 지적한다. 갈등이 드러날 때면 ‘욱’ 해서 한마디 툭 한다. 이렇게 풀고 나면 자신은 뒤끝 없다고 잊지만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이 경우는 문제에 끊임없이 집중하고, 갈등이 없으면 심심하다. 반대로 문제를 회피하고 외면하는 스타일도 있다. 대인관계에서 존재하는 문제를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묻어두는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다. 겉으로는 평안하고 한없이 좋아 보이지만 회피한다고 문제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곪아가는 것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는다. 너무 늦기 전에 풀어내지 못한 갈등 때문에 관계가 한순간에 멀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화를 회피하고 문제를 건강하게 다룰 줄 모르는 부부는 문제가 곪아 터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가래로 막을 일이 호미로도 감당 안 되도록 번진다. 참다 참다 한꺼번에 한 방에 터지기도 하고, 아예 상대와는 이야기도 안 해보고 관계를 혼자 끝내기도 한다. 문제에만 집중해서 늘 지적하는 것도 주위를 힘들게 하지만, 문제를 가려서 건강하게 풀어내지 못하는 관계도 병든다. 그런 조직도 고인 물과 같아진다. 어찌 보면 문제를 제기해도 탈, 묻어도 탈이다. 갈등을 직면하는 데에도 위험이 따르고, 갈등을 덮어도 위험하다. 그래서 문제 제기에는 특별한 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 됨을 대놓고 말씀하신다. 상처받을까 봐 적당히 둘러대지도 않으신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죄 때문이라고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 말씀은 상처로 남지 않고 회복으로 이어진다. 그 이유는 한 가지이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자녀가 잘못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는 부모의 마음 때문이다. 그 잘못의 값을 대신 다 치르신 희생 때문이다.

대인관계에서 늘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제기하고 풀어낼 것인가 하는 고민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상대에게 문제를 제기할 때 사랑이 깔려있지 않으면 그 말은 그저 비난이다. 상대를 찌르는 칼이다. 지적질이다. “나니까 이런 얘기 해주는 거야”라고 변명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자만이고 교만일 수도 있다. ‘나’니까 더 그런 이야기를 못해야 한다. 나도 상대와 다르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는 사랑으로 먼저 감싸 안을 준비가 되어야 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내가 제기한 문제가 상대에게 상처로 끝나지 않으려면 고심하고 또 고심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가장 실제적인 방법은 칭찬과 격려로 부정적인 말의 앞뒤를 샌드위치처럼 싸주는 것이다. 먼저 칭찬하고, 더 발전해야 할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격려로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수학 성적이 엉망이라고 온갖 구박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아들, 역시 운동도 잘하고 친구도 많네. 수학은 좀 더 노력해야겠다. 조금만 집중하면 잘할 거야. 얼마나 똑똑한데…”라고 말하는 거다. 직장이나 교회에서의 회의도 마찬가지다. 잘하는 일, 좋은 것에 대한 칭찬을 문제 제기의 앞뒤로 감싸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어요!”라는 말은 분위기를 싸하게 가라앉힌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잘하는 사역이 참 많아요. 그런데 새로운 사람들이 오면 어색하지 않도록 더 잘 도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으신 분들이 많으니까 일단 서로 알면 잘 적응할 거예요”라는 말은 결국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을 힘나게 한다. 문제가 있을 때에라도 사람들은 장점을 발판으로 할 때 문제 해결의 힘을 얻는다. 단점은 장점으로 가장 잘 극복된다. 부정적인 말에는 파괴적인 힘이 있다. 그래서 사랑으로 둘러둘러 싸매야 한다. 이런 세심한 배려가 없으면 우리가 내뱉는 조언은 그저 상처를 주는 비난이 된다. 사랑이 전달되지 않으면 그저 짜증 나는 잔소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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