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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

[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br></br>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

 

 

작가 나다니엘 호손의 생애와 그의 작품 세계

나다니엘 호손은 에드거 앨런 포, 허먼 멜빌과 함께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힌다. 나다니엘 호손은 우리나라 교과서에 실려 대부분의 국민들이 잘 아는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의 작가로 우리에게는 친숙하다. 나다니엘은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서 출생한다. 4살 때에 선장이던 아버지가 객사하자, 어머니와 누이 엘리자베스와 루이자와 함께 외가로 이사해서 외가에서 양육된다. 외가인 매닝가에는 외할머니를 비롯하여 많은 이모들이 있었다. 따라서 호손은 어린 시절 많은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성장했다. 이런 사실은 호손이 당대의 어떤 남성 작가보다도 여성인물을 많이 창조하였으며 여성 문제에 진지한 관심을 보여준 것을 설명해준다.

호손은 자신과 청교주의 조상과의 연관성을 부정하려 한 것으로 오히려 유명하다. 호손은 1828년경 원래는 Hathorne이었던 성에 w를 첨가해 Hawthorne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는데, 이 사실은 호손이 자신과 청교도 조상들을 분리하려고 한 행동으로 생각된다. 자신의 조상을 부끄러워한 것이다. 호손의 조상 중에 존 호손은 세일럼 마녀재판의 재판관이었고, 그 전대의 윌리엄 호손은 퀘이커교도들을 이단으로 몰아 박해한 것으로 유명했다. 호손은 ‘주홍글씨’ 등에서 교조적이며 독단적인 청교도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나다니엘 호손은 1825년 보든 대학을 졸업한 후 12년간 칩거 생활을 하며 독서와 습작으로 시간을 보낸다. 1828년 첫 소설 “팬쇼”를 출판했지만 스스로 작품에 불만을 느껴 모두 수거해 파기한다. 한동안 주로 단편을 집필했고, 여러 잡지에 발표했던 작품 중 18편을 추려 “트와이스 톨드 테일스”라는 단편집을 출간해 호평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는 탁월한 다수의 단편들을 남긴다. 자신의 집과 아내 곁을 떠나 20여 년을 숨어 산 사내의 이야기를 그린 “웨이크필드”, 한 청년이 낮잠을 자는 동안 그에게 벌어질 수도 있었던 갖가지 사건들을 기록한 “데이비드 스완”, 아내의 얼굴에 있는 반점을 없애기 위해 파멸로 치닫는 과학자의 그릇된 욕망을 그린 “모반”, 이 세상의 모든 악을 불태워 없애려는 인간들의 시도를 그린 “대지의 번제”, 갑자기 베일을 쓰고 등장해 죄악과 어둠에 감싸인 죄인들의 삶을 고발하는 “목사의 베일” 등등의 작품들은 당시 문화와 청교도적인 배경을 가진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30세 무렵 “로저 맬빈의 매장”, “젊은 굿맨 브라운” 등의 소설들이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하지만, 작품의 문학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수입은 얻지 못해 경제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스턴 세관에 취직하기도 했고 협동 농장에 들어가 살기도 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1850년 청교도주의가 지배하던 17세기 미국의 어두운 사회상을 그린 소설 [주홍글씨]를 발표했다. 1864년 여행 중 60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주홍글씨의 줄거리

17세기 초 청교도에 대한 영국 국교회의 탄압을 피해 남편과 함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건너온 헤스터라는 여인이 있었다. 이후 그녀는 남편보다 먼저 암스테르담을 떠나 뉴잉글랜드(미국) 보스턴에 도착한다. 그러나 2년 넘도록 남편에게서 소식이 끊기자 그녀는 교회의 젊은 목사 딤스데일과 사랑에 빠지고 사생아 펄을 낳는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헤스터는 공개적으로 치욕당하는 형벌을 받다. 그 형벌은 헤스터의 웃옷에는 간통(Adultery)을 상징하는 ‘A’ 자를 새긴다. 화려한 주홍빛 헝겊에 금실로 꼼꼼하게 A라는 글자를 수놓은 것이다. 때마침 어느 노학자가 우연히 처형대에 서 있는 그녀를 목격한다. 남편인 프린 영감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돌아오며 인디언에게 납치가 되었다가 늦게 돌아온 것이다.

프린은 칠링워스라는 가명으로 의사 행세를 하며 아내 헤스터에게 자기 정체를 못 알리게 한다. 또한, 펄의 아버지를 밝히지 않겠다고 하지만 복수를 다짐한다. 한편 죄의식으로 점점 쇠약해지는 딤스데일 목사를 마을 사람들은 목회와 학문에 열중하기 때문이라면서 더욱 존경한다. 이런 딤스데일에게 접근하여 주치의가 된 칠링워스는 가까운 곳에서 딤스데일 목사를 괴롭힌다. 그는 즉시 복수하지 않고 딤스데일에게 양심의 고뇌를 느끼게 하며 고통을 즐긴다.

주홍글자 A를 평생 달고 다녀야 하는 헤스터는 공개적 ‘왕따’로 변두리 오두막에서 삯바느질로 연명을 하여 이웃을 위해 살아간다. 그녀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속죄하는 삶을 산다. 그래서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딤스데일의 무덤 곁에 묻힌 그녀를 ‘청교도적 파우스트’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종교적 계율과 사회적 규범의 쇠사슬을 박차고 인간으로서의 본능에 충실하며 개인의 참다운 자유를 구하려 한, 다시 말해 사회법보다는 자연법(인간의 본성)을 따른 자유주의자 헤스터야말로 구대륙 유럽을 등지고 신대륙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던 아메리카 그 자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작품 해설과 메시지 정리

이 소설은 ‘미국 소설 가운데 가장 강렬한 감동을 주며 가장 아름답게 써진 작품’이라고 한 로이 R. 메일의 평가대로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다. 호손은 ‘주홍글씨’를 통하여 청교도주의가 지배하는 미국 사회의 잔인함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청교도적 경전주의가 자신의 삶에 대한 기준이 아니라 이웃을 정죄하는 기준이 되었을 때의 잔인성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학식과 도덕적 완전함을 자랑하는 칠링워스는 오히려 인간 이하로 떨어져 타락한다. 칠링워스는 복수심에 불타는 추악한 인간 이하의 모습을 보여준다. 범죄한 헤스터나 딤즈데일은 자성과 참회의 시간을 통해서 건강한 성숙을 이루어 감을 보여 준다. 나다니엘 호손은 소설 ‘주홍글씨’를 통해서 참된 경건은 도덕적 완벽주의가 아니라 참회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아울러 헤스터가 평생 달고 다닌 A라는 글자가 다양하게 변환될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헤스터의 인격과 삶의 천사처럼 변화될 때 A는 Angel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헤스터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며 이웃을 도우며 살아가는 삶이 진정한 미국인의 삶이라는 차원에서 A는 American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인생은 누구나 각자의 “A”를 가슴에 달고 있는 죄인이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아파하고 회개하는 한 아름다운 삶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A”를 위선으로 덮으려 하면 칠링워스와 같은 냉혈한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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