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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시안아메리칸센터 AARC 지수예 대표

[인터뷰] 아시안아메리칸센터 AARC 지수예 대표

 

 

“밤낮없이 새벽에도 불려가, 너무 힘들어 남편한테 헤어지자고도 했어요”

“미래를 내다본 남편에게 투정 많이 했으나 교육이 가장 귀하다는 것 깨닫고 회개 많이 했죠”

 

애틀랜타에는 아시안 커뮤니티의 어려움을 돌아보고 상처를 치유하며, ‘교육’을 통해 미래를 꿈꾸게 해주는 고마운 단체가 있다. 바로 아시안아메리칸센터(대표 지수예 사모, AARC)이다. 지수예 사모는 지금은 고인이 된 지형석 목사(Dr. Henry Jee)의 아내다. 지형석 목사는 우리 교단의 목회자였을뿐 아니라 특별한 혜안을 갖고 교단의 총무로서 섬기기도 한 준재였다. 그는 1997년 AARC를 설립했는데 지금은 지수예 사모가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승계 발전시켜가고 있다. AARC에서 지수예 대표를 만나 그녀의 사역과 삶, 신앙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날은 특별히 지수예 대표뿐만 아니라 고(故) 지형석 목사와도 오랜 친분을 쌓아온 본보의 이사장 임경철 목사 부부도 함께 동행하므로 따듯한 우정을 나누고,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호칭은 ‘지수예 대표’가 맞으나 그들의 신앙 안에서의 교분을 감안해 ‘사모’라고 부른 호칭을 그대로 게재했다.< 편집자 주 >

 

▲ 미주침례신문사와 AARC 스태프 기념사진, AARC 스태프는 전체가 모이지는 못했다.

 

 

▲ 고 지형석 목사

◇ 임경철 목사(임): 아시안아메리칸센터(AARC)라는 단체가 왜 우리에게 특별히 의미가 있냐하면 지형석 목사님이 시작하신 단체이시고, 지 목사님은 우리 교단 총무로서 대표이시기도 했는데 사모님께서 이어서 하시면서 유지‧발전해왔기 때문입니다.

 

◇ 심윤수 목사(심): 그러면 대표님께서 교단 목사님 사모님들이 이해할 수 있게 개인소개를 포함해서 가정과 배경 등을 소개해주시겠습니까?

= 남편은 고려대에서 사회학(Sociology)을 공부하고, 공군에 있으면서 미국에 오려고 늘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 돈도 없는데 고생시키려고 하냐며 반대했어요. (그래도 미국으로 오게 됐고) 미국 와서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남편은 40살이 넘어서 신학교를 갔습니다. SBC산하 사우스이스턴을 졸업하고 목회를 하게 됐습니다. (임): 덧붙인다면, 지 목사님은 여기 조지아주지방회 창설자이고, 우리 한인침례교총회 총무님을 역임하셨습니다.

 

◇ 심: 네, 총무님으로 얼마나 오래 섬기셨죠?

= 그때도 저는 총무하는 것 반대를 했습니다. 교회가 180명 200명으로 자라고 있었을 때였기 때문에 반대를 했습니다. 교인들도 반대를 했는데, 결국은 하시더라고요.(웃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총무의 사역은 그렇게 오래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AARC는 저희가 미국에 왔을 그때 영어도 잘 못했는데 90년대 초부터 한인 이민자들이 저희한테 도움을 요청해와서 통역을 많이 해줬고, 교회에서도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시작을 했습니다. 1997년에 비영리단체(Non Profit) 인가를 정식으로 받았습니다. 2018년 3월 1일이면 21년이 됩니다. 그러고 나서는 정부에서 지원도 받고, 특별한 프로그램도 개설하고 그렇게 진행해 왔습니다.

 

▲ 홈리스 싱글엄마들을 위한 하우징 프로그램: 1년에 5가정씩 15년 동안 살도록 도왔다. 사진은 그들이 보내온 감사편지와 카드들

 

▲ ESL 클래스

 

◇ 심: 이 단체를 생전에 지형석 목사님께서 시작하셨고, 사모님께서 지금까지 해오셨습니다. AARC의 주된 일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 주된 일은 첫째는 영어 가르치는 ESL 프로그램입니다. 영어클래스는 1990년대부터 영어교육을 교회에서부터 5~10명씩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학생이 500명이 있습니다. ESL 프로그램 상도 받았습니다. <AARC는 지난 2017년에 열린 조지아테크니컬칼리지 시스템 추계 학술대회에서 ‘최우수 성취상’과 ‘최다 시민권 취득상’을 수상한 바 있다. ‘최우수 성취상’(Overall Achievement of Measurable Skill Gains)은 한 해 동안 성인교육을 맡고 있는 모든 학교들 중에서 가장 많은 성과를 거둔 단체들에게만 주는 상이며, ‘최다 시민권 취득상’(Greatest Number of Students Award Citizenship)은 가장 많은 학생들이 시민권을 받게 되어서 받은 상이다. 편집자 주> 둘째는 홈리스 싱글엄마들을 위한 하우징 프로그램입니다. 홈리스 싱글엄마들을 1년에 5가정씩 15년 동안 살도록 도왔습니다. (계약연장으로) 중복된 가정도 있겠지만 꽤 많은 가정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 심: 이 일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 정부에서 이민자들에 대한 혜택을 다 깎았어요. 안되겠다 싶어서 비영리단체를 만들어서 고생하는 이민자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심) 주로 한국인들을 도왔죠? = 네, 그러다가 아시안으로 확장되고 지금은 흑인들에게로 확장됐습니다. 홈리스 싱글엄마들은 대부분 흑인 분들입니다.

 

◇ 심: 이 일을 하시면서 보람됐던 일은 무엇일까요?

= 남편은 항상 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도 미국 와서 공부하고 교수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인사회에) 고립되지 않고 주류사회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대화를 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사실 이거(AARC) 연다고 할 때 반대했던 사람입니다. 저는 원래 집에서 살림하고 음식하는 걸 좋아했어요. 남편한테 좀 편하게 살자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남편 때문에 병원, 법원 같은데 통역으로 쫓아다닐 때 너무 힘들었어요. 밤낮이 없고 새벽에도 불려나가니까요. 그래서 심지어는 너무 힘들어서 제가 헤어지자고도 했어요.(웃음) 그때는 또 이민사회가 자살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때는 손을 못 대고, 그래서 남편이 소셜 웍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 카운슬링이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학교에 들어가 카운슬링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역시 교육이 앞날을 내다보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힘들다고 투정을 많이 했는데 되돌아보니 교육이 가장 귀하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20년이 되다보니 그때 도왔던 아이들이 지금은 직장을 갖고, 또 엄마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보면 가장 보람된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식당을 갔는데 어떤 남자분이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누군지 몰랐어요. 맹장이 터져서 죽어가다가 병원비가 12만 불이 그 당시에 나왔는데 남편이 다 해결을 해줬다고 하더군요.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자기가 찾아뵙지 못해서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한테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영어 좀 한다고 잘난 척 한다고 그러는 사람들도 있었죠. (임) 지 목사는 오히려 자기 돈을 쓰고 섬기는 사람이지 그런 사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뭘 잘 몰라서 그런 거죠.

 

◇ 심: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 아직까지 부족한 부분, 다 이루지 못한 부분을 잘 훈련시켜서 좋은 후계자가 나오면 넘겨주고 뒤에서 기도하면서 후원하고, 이 단체가 원래 남편이 가졌던 정신과 그런 유산을 잘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돈에 욕심이 있는 사람은 이런 일 못합니다. 항상 사람들에게 섬기는 자세로 하고, 웃으며 대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모토의 테마(Theme)를 “항상 기뻐하라”로 잡은 것입니다.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원래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요리할 시간이 없어요. 편안하기를 원했고, 사모 되는 것 자체를 반대했었던 사람입니다. (임) 에이 너무 낮추네, 원래 지수예 사모님은 리더십도 있고, 실력도 있고 예뻐서 칭찬이 많았습니다.

 

◇ 심: 쉽지 않은 일을 하셨는데 재원마련은 어떻게 하시나요?

= 연방정부에서 저희가 지원을 받습니다. 또 교육을 하는데도 연방정부에서 지원을 받습니다. 열 곳에서 선생님이 10명 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커뮤니티센터 등 10곳에서 하고 있습니다. 열군데서 500명에 대해 지원이 나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처음에는 우리한테 지원을 안 줬습니다. 연방정부 돈 타는 게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남편이 원하는 것은 다른 주에도 이것을 잘 알려줘서, 애틀랜타와 같이 이런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모든 행정절차를 저희가 다 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울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 심: 타 주에서도 이런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엄청난 일인데 말이죠.

= 소셜 미니스트리가 살아있으면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오게 됩니다. 대화만 되면 됩니다. 저는 욕심도 없고, 연방정부 지원 받는 것도 알려줄 수가 있습니다. 여기 애틀랜타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오는 데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사실 이 애틀랜타가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곳 중에 하나잖아요? KKK가 시작된 곳인 것을 잘 아실텐데, 여기서 소수민족의 인권을 위해 뛴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주에서 시작한다면 잘 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심: 도네이션은 없나요?

= 75%는 정부지원을 받지만 25%는 모금을 해야 합니다. 회사나 단체에 제가 편지를 써서 매칭펀드를 해서 도움을 받고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 심: 이민자들을 위해 교육을 하시는 것은 참 좋네요.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인에 비해 영어를 잘하는 것 같아서 물어보니, 일하는 것보다 어학을 배우는 것을 우선시하더라고요. 그런 결과 일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영어를 하는 것 같습니다.

= 사실 한국인은 30년 40년 살아도 영어를 잘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특히 엄마들은 가정을 돌봐야하고 일만하다보니 영어를 못합니다. 엄두를 못 내죠. 남편이 저한테는 여기서 절대로 그러지 말라면서 병원, 학교, 경찰서, 법정 등 무료로 통역을 하라고 해서 다녔습니다. (심) 영어배우기 캠페인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런 프로그램도 제가 만든 겁니다. AARC에서 교육을 하자고 했습니다. 더 나은 삶(Better Life)을 위해서 계속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곳곳에 남편의 철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 심: 오늘 나눈 말씀 외에도 침례교 가족과 이민자들을 위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 하나님 은혜 가운데 아이들이 주류사회로 들어가서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40대, 50대 엄마들 한국 비디오를 보면서 영어 배울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러고서는 무슨 일이 있으면 여기를 찾아옵니다. Stop 사인 때문에 걸려서 몇 백 불 나온 거 도와달라는 것부터 해서 등등… 영어를 배우는 것이 가장 우선 같습니다.

 

◇ 임: 인터뷰 중에 그냥 좌담식으로 말씀을 좀 드린다면, 심윤수 목사님이나 채공명 목사님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지 목사님을 친구로 오래 알았습니다. 지 목사님은 훌륭한 분입니다. 그때도 보니까 다른 분들이 생각 못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국인과 흑인들 사이에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로드니 킹 사건(LA폭동 사건의 기폭제가 된 사건)이 발발했을 당시, 지역 기자들이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형석 목사를 찾아왔다. 이것을 계기로 지 목사는 다운타운에 위치한 아프리칸커뮤니티연합회(조지아주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 및 목사들의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아프리칸과 아시안들 사이의 대화창구를 연 최초의 인물이 됐다. 편집자 주> 그것 때문에 활동이 활발했죠. 지금은 흑인으로서 오바마 대통령도 나오고 했지만 그때는 흑인이 대접을 못 받았지요. 그런데 흑인대표가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면서, 인권을 위해서 많이 힘을 썼습니다. 우리 침례교 총무도 했지만 벌써 20년 전인데 그때 지방회를 비영리단체로 해서 다른 미국 지방회처럼 만들어서 대접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지 사모와 한참 동역을 했는데 지 사모님이 아틀란타제일침례교회를 가지고 혼자 애썼는데 우리가 이 AARC조직도 침례교 사람들이 특별히 협력을 해야 하는데 침례교 사람들이 협력을 많이 못한 게 안타깝습니다. 나하고 김재정 목사가 처음에 좀 참석을 했었습니다. 애틀랜타연합장로교회 정인수 목사님이 많이 도왔는데 돌아가셨고, 그 후에 베다니장로교회 최병호 목사님이 협력을 하는 등 타 교단에서는 협력했으나 침례교단의 협력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침례교도 자원도 있고 힘이 있기에 앞으로는 많은 협력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 채공명 목사(채): 주지사 자문위원으로도 계시죠?

= 네, 제가 조지아주 주지사실 부속기관인 평등기회위원회 자문위원(Board of Commissioners of the Commission on Equal Opportunity)이에요. 한인여성으로서 최초로 자문위원이 됐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한인사회를 만들자”라고 남편이 늘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임) 여성으로서 참 애쓰고 있어요. = 너무 너무 힘든데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채) 어떤 점이 특히 힘드세요? =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이죠. 스무 명 스태프와 함께 했는데 지금은 18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매월 돌아오는 임금인데 정말 빨리 돌아와서 힘듭니다. 그리고 비영리단체라서 월급이 많지 않으니 교육이 돼서 일을 잘 할 만하면 다른 곳으로 가게 되니, 사람이 자꾸 바뀌게 돼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식사를 하면서 지수예 대표는 남편이 떠난 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는 마음 깊은 얘기를 꺼내 놓았다. 그렇지만 주변의 위로와 격려를 통해 힘을 얻기도 했고, 특별히 하나님 앞에 하염없이 울면서 매달 매일을 눈물로 지금까지 견뎌왔다는 마음 깊은 얘기를 전했다. 음식하는 것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평범한 주부가 되기를 원했던 그녀였으나 하나님은 지수예 사모를 택하셔서 수많은 사람을 먹이고 입히며 집을 주고 교육을 시키는 애틀랜타의 많은 아시안을 위한 어머니로 세우셨다.

빌리 그래함 목사의 소천 소식에 자신이 애틀랜타 집회에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통역을 이틀 맡아서 했다는 일화 등의 소회를 나누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모든 게 힘들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강력한 리더십과 여성 특유의 섬세한 리더십의 조화 속에서 누구에게도 힘든 일을 감당해가고 있다. 지수예 대표는 이제 은퇴를 마음에 준비하고 있으나 미국 전역에 이러한 AARC와 같은 단체가 속속 나타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전국에 후계자를 세울 수 있기를 또한 기도하고 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잊을 수 없는 고(故) 지형석 목사의 유산을 쫓아 오늘도 걷고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행보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 대담=임경철 이사장·심윤수 사장

■ 정리·사진=채공명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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