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호프 커뮤니티 난민 선교(7) 재정을 공급하여 주신 하나님
대표: 김지선 (Lori Kim)
비영리단체로써 그랜트나 펀드를 얼마나 받는지 어떻게 신청했는지 질문을 하신 분들이 간혹 있었습니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학교는 정부 그랜트를 쉽게 받을 수 있지만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저희는 영혼구원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랜트를 포기하고 재정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사역을 하나씩 보여주셨고, 그를 담당할 사역자를 보내주셨고, 또 필요한 물질을 때에 따라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시티호프 사역은 온전히 개인 후원자들과 몇 지역 교회들의 재정후원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역 초기에 만나는 학생들마다 학교 숙제와 영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결같이 절실하게 호소하였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방과 후 학교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현실적으로 방과 후 학교는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그 당시 봉사자라고는 고등학생 열두 명과 어른 몇 명이 전부였는데 고등학생들은 주중에 와서 봉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방과 후 학교를 위한 장소도 없었습니다. 방과 후 학교에 대한 마음의 부담감이 점점 커져 나중에는 잠도 편하게 잘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방과 후 학교를 위하여 기도하는데 머릿속에 제 큰딸 주영이가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 주영이는 뉴욕에서 소셜워크 석사 공부를 마치고 애틀랜타에 와서 큰 비영리단체에서 직장을 잡아 그랜트 신청 및 청소년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게 기도 중에 주영이가 떠올라 며칠을 고민을 하다가, 주영에게 직장을 관두고 난민 사역에 합류하여 풀타임으로 방과 후 학교 사역을 하면 파트타임 월급을 주겠다고 제의하였습니다. 주영이가 자기에게 줄 월급이 어디 있냐고 물었습니다. 지금은 돈이 없지만 네가 방과 후 학교를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주실 거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주영이는 자신도 난민 청소년 사역에 관심이 있어 엄마를 돕고 싶지만 학비융자도 갚아야 하고 아파트 비용과 자동차 할부금 등 생활비가 필요하니 생각해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두 주 후에 주영이가 제게 직장을 관두고 방과 후 학교를 시작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비를 줄이기 위하여 집에 들어와 살겠다고 하였습니다. 직장상사에게 이미 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좋아했고 또 엄마가 자신에게 줄 월급이 없다는 것을 알고 주영이가 당연히 ‘노’라고 결정할 줄 알았는데 하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반가움과 동시에 마음이 착잡하였습니다.
절실히 필요한 방과 후 학교를 이제 시작할 수 있어 너무나 기뻤고 동시에 약속했던 월급을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천만금이나 무거워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정기적인 재정 후원자가 없었고, 매달 하나님께서 난민 목사님의 생활비를 꼭 그 액수만큼 채워주시던 때였습니다.
목사님의 생활비를 돕기 위하여 성인 봉사자들이 거라지 세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그 액수 외에 주영이에게 약속한 월급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로 또 매달렸습니다. 주영이는 대학생 봉사자들을 모집하며 방과 후 학교를 순조롭게 시작하였습니다. 장소는 전혀 문제가 안 되었습니다. 각 아파트 단지에 저희가 섬긴 난민가정들이 자신들의 아파트 응접실을 매일 방과 후 학교로 사용하도록 기쁘게 내어주었습니다. 여러 아파트 단지에도 방과 후 학교를 계속 오픈하여 일 년 반 안에 다섯 장소에서 방과 후 학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에모리대학과 조지아텍 등 주변 대학에서 60여 명의 대학생들이 교사로 헌신하여 열심히 섬겨 주었습니다.
난민 목사님의 생활비 외에 기대치 않은 곳에서 후원금들이 들어와 첫 달 주영이의 월급이 채워졌습니다. 뉴스레터를 통하여 방과 후 학교를 알렸고 후원자들이 물질로 동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달 월급을 주고 나면 그다음 달 월급이 걱정되었는데 계속적으로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함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게 되었습니다. 수년간 한 달도 빠지지 않고 주영이에게 월급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참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 토요영어학습, 어린이 교회와 청소년 교회에도 사역자들이 필요할 때 같은 방법으로 채용하였습니다. 필요한 사역자를 위하여 기도하다가 적합한 사람이 나타나면 재정이 없는 상태에서 채용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 월급을 매달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후원자들과 후원 교회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재정을 염두에 두고 사역자를 채용했다면 아마 여태껏 한 명도 얻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사역을 시작한 후 몇 년 동안 저희는 센터나 사무실이 없었습니다. 효과적인 사역을 위하여 센터나 사무실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토요영어학습, 방과 후 학교, 난민 여성들을 위한 재봉틀 사역 등 모든 사역이 난민가정 응접실들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저희에게 사역 장소는 난민 인구만큼이나 무한하여 센터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스태프 미팅은 근처 커피숍에서 했고, 클락스튼에 있을 동안 제 컴퓨터로 업무를 봐야 할 때는 인터넷이 되는 근처 도서관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사역 도중 잠시 휴식이 필요할 때는 차 안에서 쉬었고, 외부에서 손님이 방문하면 난민 응접실에서 만났고, 봉사자들과 접선장소는 난민 아파트 주차장이었습니다.
재정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한 명이라도 더 사역자를 채용하고 싶었습니다. 한 명의 사역자가 늘면 그만큼 더 많은 난민들을 사역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때가 되었는지 하나님께서 오피스를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한 봉사자가 오피스 혹은 사역의 필요에 따라 사용하라며 만 불을 후원하셔서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오피스 겸 사역 장소로 일 년간 렌트하였습니다. 그 후원금으로 아파트를 렌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파트 단지는 저희가 방과 후 학교를 여러 곳에 시작할 때 그곳에서는 하지 말자고 한 장소였습니다. 그곳은 범죄율이 높아 대낮에도 난민들이 권총강도를 당하는 아파트 단지였습니다. 저희가 절대 가지 않으려는 그 아파트 단지에 하나님께서는 오피스를 렌트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셨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곳이 황금어장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난민 사역을 시작할 때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시작했던 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던 축복의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역에 필요한 기금을 가지고 사역을 시작했다면 하나님께 그만큼 절실하게 기도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도우심을 이렇게 많이 경험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 지면을 통하여 시티호프 후원자들과 후원 교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또 모든 것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