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수다(6) – 집사는 언제 따요?
김영하 목사(샬롬선교교회, 미주)
집사는 언제 따요?
목회하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남의 교인은 절대 빼앗아 오지 않으리라…
내가 개척을 했던 1989년은 한국에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세워지던 시기인지라 한 건물 안에 서너 개의 교회가 들어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교인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층층마다 방어하는가 하면 입구에도 나가서 신경전을 벌인다는 소식도 들렸다.
다행히 나는 외진 곳에 개척해서 중랑구에는 침례교회가 아예 없었고 대각선 맞은편에 장로교회가 있었지만, 그 교회 목사님과 왕래하며 친하게 지냈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당연히 기존신자보다는 새신자를 전도하는 것에 목회의 초점을 맞추다 보니 부흥은 더뎠지만, 변화되는 영혼들을 보며 만족하였다.
한 자매가 소개받고 등록했다. 늘 그랬듯이 처음부터 주일과 수요예배는 물론 금요 철야까지 참석해야 한다고 군기를 잡았다. 몇 개월을 열심히 모든 예배에 출석하며 분위기를 파악하던 그 자매가 어느 날 목양실에 들어와서 물었다. “목사님! 집사는 언제 딸 수 있나요?”
아마 그 자매는 집사를 메달을 따듯이 열심히 하면 따는 줄로 알았던 모양이다. 교회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집사에 관해서 묻는가 싶어서 되물었다. “왜 집사가 되고 싶으세요?”
주일 오전 예배는 모든 집사님과 성도들이 나오는데 수요예배는 집사님들이 거의 나오지 않아서 자신도 집사를 따면 수요예배는 나오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그러는 것이라고 순진한 눈동자로 말하는 그 자매를 보며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의 실수였다. 새신자를 전도해서 열심히 신앙교육을 시켜 성장시킨 후 집사가 되면 스스로 잘하려니 생각하고 관심을 덜 쏟은 것이 수요예배에 슬금슬금 빠지는 현상으로 나타났지만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었지만, 악은 쉽게 전염되는 것처럼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일반적인 교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그 사람들은 잠시 방학이었으나 다시 잘 나올 것이며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성실하게 참석하라고 격려한 후 다음 주일 오후에 집사들을 모이게 해서 다시 해이해진 기강을 잡았다.
모두 늦게까지 성경을 읽고 토론한 후 기도를 시켰다. 새신자보다 못한 신앙생활을 한 죄에 대해 회개하도록 했다. 목사의 단호함에 순진했던 당시의 집사들은 목청을 높여 회개의 기도를 했다. 집사는 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집사가 되면 직분을 잘 유지하여 모본이 되도록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준 그 자매의 한마디가 지금도 귀에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