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스턴 칼럼-안지영] 소그룹 성경공부를 통해 교회가 시작되다 (1)
소그룹 성경공부를 통해 교회가 시작되다 (1)
나는 성경번역 선교사였습니다. 23년을 위클리프(Wycliffe) 성경번역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경번역을 하려면 신학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나는 성경번역 선교사로 있는 동안에 정식 신학 훈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아, 한 학기 동안 한국에 있는 신학교에 다닌 적이 있었는데, 내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두었습니다. 한 마디로, 신학 훈련을 받지 않은 평신도가 파푸아뉴기니의 과하티케 부족 언어로 신약을 번역하여 2000년 6월 10일에 봉헌한 거지요. 80년 대의 한국 교회의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었지요.
나는 1980년에 성경번역에 헌신하고 그 이듬해부터 2년 동안 선교사 훈련을 받고서 1982년에 성경번역 훈련을 위해 달라스 근처에 있는 위클리프(Wycliffe) 성경번역 선교사 훈련 기관인 SIL(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에서 언어학 과정을 밟았습니다. 이렇게 선교사로 살기 시작했지만, 당시 한국 교회는 ‘선교사는 곧 목사’여야 한다고 믿었기에 교회 후원을 받는 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게 하도 어려우니, 내가 속한 한국 선교 기관의 대표 목사님께서는 우선 신학교를 다니면서 동기를 만들어, 후원받도록 하면 좋겠다는 제안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평신도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한국 교회가 평신도도 선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내 나름의 신념(?)이었지요. 이런 면에서 내 아내가 대학 시절 다녔던 내수동교회 박희천 목사님이 참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당시에 성경을 깊이 풀이해 주시는 목사로 잘 알려진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이면 당연히 신학을 한 선교사를 후원하실 텐데, 평신도인 아내와 나를 신뢰해 주시고 후원하셨으니 말입니다. 처음에는 목사님 개인 호주머니를 털어서 후원해 주셨다고 합니다. 교회가 아직 평신도 선교사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렇지만 다른 선교는 몰라도 성경번역이라면 성경을 잘 알아야 하기에 성경에 관한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필요를 만족시키려면 신학교에 가는 것이 어쩌면 마땅한 것일 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나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내가 길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사실, 나는 성경번역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기 전부터 개인 차원에서 성경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IVF라는 학생선교 단체에서 개인 성경 연구 방법을 훈련받았습니다. 수년에 걸쳐 성경 본문을 이해하는 길을 찾던 나로서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거였습니다. 그 훈련을 받는 중에 매주 여덟 시간 정도를 성경 연구에 투자해 보면, 나중에 놀라운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조언이 내게 깊게 다가왔었지요. 그래서 그대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주석은 수학 문제 해답지와 같은 거니, 성경 연구에 주석을 사용하지 말라. 사용하려거든 모든 연구를 마치고 난 다음에 확인하는 용도로 써라. 대신에 성경 지도, 성경 사전, 성경 시대의 배경, 등등 성경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활용하라. 성경은 다양한 영어 번역본과 한글 번역본을 사용하여 본문을 비교하여 보라.” 이런 지침은 성경 연구 훈련 기간 내내 들었고, 실제로 그런 자료들을 사용하여 성경 연구를 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배운 대로 나 혼자 해보니, 쉬운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초기에는 훈련 때 배운 것을 겨우 흉내 내는 데 그쳤으니,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아 중도에 그만둘 뻔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것만 같아서 계속 밀고 나갔는데, 어느 시점에 이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 이때부터 성경 연구에 관성이 붙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보니, 헬라어로 본문을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당시 일주일 동안 헬라어를 가르치는 강습소에 가서 기초과정을 수료하고서, 연구할 본문을 헬라어로 읽는 시도를 꾸준히 했었지요. 이런 방식으로 성경 연구를 하면서 기록한 대학 노트가 꽤 많이 쌓이더군요. 아직도 몇 권은 남아있는 것 같네요.
그런데 이렇게 성경 연구를 하면서도 내가 성경번역 선교사가 되리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습니다. 나는 그저 그동안 알고 싶었던 말씀을 좀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말씀의 의미를 찾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버린 거지요. 전에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봐야 했는데, 이제는 나 스스로 그 답을 찾아가는 재미가 정말 쏠쏠했습니다.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것들은 나중에 언젠가는 알아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말입니다.
그러다가 아직도 자기 말을 표기할 수 없는 언어가 많다는 것과 그들의 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쉽게 대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부족이 많이 존재한다는 게 온당치 못하다고 여겼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성경번역 선교사가 되기로 결단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동안 개인 차원에서 성경을 연구해 온 경험이 성경번역을 위한 훈련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성경 본문 해석의 틀을 큰 문맥이라는 틀에서 접근하는 법을 배워 내 개인 성경 연구에 접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니 나의 성경 연구에 깊이가 느껴지더군요.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