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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아래서](24-1) ‘우주 중심 증후군’을 아시는가? 

[무화과나무 아래서](24-1)  ‘우주 중심 증후군’을 아시는가?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우주 중심 증후군’을 아시는가? 

“남의 신발을 신고 십리를 가보지 않으면,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다른 입장에 서 보지 않고서 맘대로 생각하고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나 정도 되면,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보지 않아도 알아’라고 하면서 내 맘대로 판단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관계가 깨지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내 맘대로 오해하고 해석하면서부터다. 그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내 방식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 이런 태도는 반드시 어려움을 만든다. 

얼마 전 ‘우주 중심 증후군’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우주 중심 증후군’, 아주 대단해 보이는 이름 아닌가? 내가 우주 중심에 있는 듯 한 말로 내가 왕이라도 된 것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우주 중심 증후군’이라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해석을 자기중심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항상 자신 기준과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친구에게 전화해서 쇼핑하러 같이 가자고 했더니, 친구가 낮은 목소리로 ‘오늘은 안 되겠는데’라고 거절했을 때, 우주 중심 증후군에 빠지면, ‘뭐야 내가 돈이 없다고 쇼핑도 같이 못가’, 아니면 ‘뭐 내가 싫다는 거야’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친구에게 안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몸이 아플 수도 있는데, 절대로 그렇게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뭐든지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한다. 

하다못해 누군가 자신에게 사과를 먹으라고 주어도, ‘먹기 싫어서 준건가?’ ‘벌레 먹었나?’ ‘나보고 사과하라는 건가? 내가 뭘 잘못했나?’로 생각한다. 오로지 자신을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자기 멋대로 판단한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대화에서도 이럴 때가 많다. 왜 나에게만 고난을 주세요? 왜 저죠? 왜 우리 아이죠? 왜 제가 해야 하나요? 김 집사도 있고, 최 권사도 있는데요, 왜 저죠? 하면서 나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물론 인생 살다보면, 어쩌다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지만, 매사에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큰 문제다. 불평과 오해 속에서 살게 되고, 항상 억울한 마음이 들 것이다. 자신의 상황만 바라보고 판단하고, 자신은 잘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 결국 억울해지는 것이다. 

이런 억울함의 힘들어했던 사람이 성경에도 있다. 바로 엘리야이다. 최고의 능력자이지만, 그에게도 예외 없이 우주 중심 증후군이 임했다. 여러분은 엘리야를 잘 알 것이다. 엘리야는 자신의 말이 없으면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고 선언하고, 기도로 3년 반의 가뭄을 끝낸 사람이다. 엘리야는 죽었던 살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렸던 죽음도 이긴 사람이다. 게다가 바알 선자와의 850대 1의 싸움을 이기고,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세벨이 죽이겠다고 협박했을 때,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인정받지 못한 억울함으로 하나님께 죽기를 청했다. 850대 1의 싸움이 너무 감격적이었던 것일까! 그는 이세벨의 말을 우주 중심적으로 해석했다. 매우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했다. 

하나님의 능력의 사람이요. 죽은 자마저도 살린 그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할 때 망가지기 시작했다. 이세벨의 부정적 말 한마디에 목표를 잃어버리고, ‘내가 지금까지 뭘 한 거지?’ 하며 억울해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어’ 하는 억울함이 생기면서, 한계에 걸렸고 목표를 상실하게 되었다. 오로지 자신의 상처와 외로움에 집중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스위치가 눌려진다. 열등감이다.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다(왕상 19:4)’라고 비교하면서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최고의 능력자가 하나님의 보지 못하고 자신에게 너무 집중하다 보니, 부정적 말 한마디에 억울함이 생기고 열등감에 무너져 내렸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절대자 앞에서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기를 청하는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서 그를 어루만지셨다. 인정받지 못해 억울한 마음이 들고, 절망하며 죽기를 원하는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절망한 엘리야를 혼내지 않으셨다. 오히려 두 번이나 먹을 것을 권하였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 미리 구운 떡과 물 한 병을 준비해 놓으셨다. 

그렇다. 우리가 말 한마디에 억울해하고, 열등감에 무너져 헐떡거리며 한계를 맞을 때, 주님은 새로운 힘을 주시고자 천사를 보내고 우릴 먹이신다. 열심히 살다가 억울함에 엎어지더라도 포기하지는 말자. 주님이 플랜B를 준비하고 있다. 그분은 우릴 어루만지시고 먹인다. 엘리야도 일어나 먹고 마신 후에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해서 사십 주야를 걸어갔다. 사람이 혼자서 어떻게 사십 주야를 걷겠는가, 주님이 먹이시고 힘주시니 가능한 일 아닌가. 주님의 플랜B를 신뢰하고 의지하라. 인간의 한계와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게 된다. 

제발 나 혼자서 해결하지 말고, 나를 먹이시고 도우시는 주님을 보라. ‘내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아직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그 우상에게 입을 맞추지 않은 사람 7,000명을 남겨 두었다.’ 이 말씀을 기억하라. 나는 혼자서 견디는 사람이 아니다. 주님이 주신 동역자가 있다. 최소한 주님이 옆예 계신다. 이제는 우주중심 증후군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 그가 먹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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