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수 목사의 설교예화] 한 여인의 운명을 바꾼 복음과 선교사
실명을 밝힐 수 없는 어떤 네팔 여인은 남편을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보내면서 사는 것 자체가 저주처럼 되었답니다. 힌두교의 가르침을 따라 네팔인들은 전생의 죄로 인해 현생에서 과부가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네팔의 장례문화는 시신을 장작더미 위에다 놓고 화장을 한답니다. 장작에 한 참 화염이 타오를 때 살아 있는 아내가 남편과 함께 나도 가겠다고 소리 지르며 화염 속으로 뛰어들어가 함께 타 죽는 것이 힌두교 권의 장례 관습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가족들이 뒤에서 사자의 아내를 불구덩이로 밀쳐 넣는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 죽은 과부가 오히려 행복하답니다. 이렇게 죽지 않고 남편 뒤에 살아남은 과부는 지역 사회와 친지들로부터 남편을 잡아먹은 죄인 취급을 받으면서 저주스러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부로 그 사회에서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요 저주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도 예외 없이 살기가 너무 어려워서 자살을 생각하고 갈등하던 중 동네 사람이 저기 보이는 산 아래 마을에 가면 한국 사람들이 와 있는데 가서 만나 보면 행여 당신의 고통에 조금이나마 답을 찾을 줄 모르겠다고 하더랍니다. 몇 시간을 걸어서 산 아랫마을에 도착해서 만났던 이분들은 한국에서 온 선교사였습니다. 이 여인이 방문을 했을 때는 선교사님은 출타 중이고 선교사님의 사모님이 계셨는데 이 여인은 선교사님의 사모님에게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사모님께서 언어가 짧으셨던지 성경구절 이곳저곳을 찾아 읽게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 여자분이 처음 읽은 말씀이 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였습니다. 그런데 과부인 이 여자분이 이 말씀을 읽더니 이것은 예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하면서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직감적으로 예수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믿음이 가슴속에 밀려들었고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힌두교의 신학으로는 고통의 한 복판에 있었던 이 여성에게 아무런 희망도 제시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저주와 절망을 전생에 결정된 현생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힌두교 세계관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카르마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이분은 자기 주변에 있는 과부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이 자매가 Rise and Shine이라는 크리스천 과부 모임을 만들어 이끌고 있는데 47명의 과부들이 회원이 되어 죽지 못해서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임 회원 중에는 아직도 힌두교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도 있답니다.
네팔에서는 과부들은 직장을 다닐 수 없고 오직 자영업만 가능합니다. 나라가 가난하여 직장이 없고 행여 일할 자리가 있어서 전생의 죄로 현생에 부정한 운명을 타고난 여성을 모두가 꺼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부가 할 수 있는 자영업이라고 해야 고작 좌판상을 하는 정도입니다. 이 자매는 이 모임을 통해서 좌판상도 밑천이 없어서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적은 돈을 융자(microfinancing) 해 주는 것입니다. 그 자금이 불어나서 그들에게는 거금인 2,000불이 되었답니다.
이 여인의 이야기는 이 세상에 왜 교회가 아직도 필요한지 교회가 왜 선교사를 보내야 하는가를 밝혀주는 미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