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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유종 목사의 방북구호선교이야기]

우리네 인민들 살기가 어렵습네다 (암 5:14)

[윤유종 목사의 방북구호선교이야기] </br></br> 우리네 인민들 살기가 어렵습네다 (암 5:14)

 

얼마 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의 도로 사정이 형편없어 문재인 대통령을 모시고 백두산에 가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북한은 그리 쉽게 자신의 어려운 형편을 말하지 않습니다. 학교나 유치원 그리고 고아원에 가보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네”하는 구호가 정문 앞 그리고 교실과 방마다 붙어있습니다.

한 번은 어느 곳에 갔는데 한 농부가 쉬고 있기에 안내원에게 농번기에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봐도 되냐고 공손히 요청하니 마지못해 허락해 주어 그에게 닦아가 물어보니 벌떡 일어나 “우리 장군님이 모든 것 다 주셔서 일없습니다”하는 것입니다. 저와 안내원은 오랫동안 말없이 평양으로 돌아왔습니다. 평양에는 그리고 북한 땅에는 거지가 없습니다. 거지가 없는 나라는 유일하게 북한뿐입니다. 꽃제비는 불량자들입니다. 잡히면 혼줄이 납니다. 한 번은 아침에 대동강 다리를 다니는데 한 어머님이 눈치를 보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안내원이 보더니 그녀에게 다가가 무엇인가 말하더니 놀란 기색과 힘없는 발걸음으로 줄행랑을 치며 사라졌습니다.

예, 북한은 경제가 무척이나 힘듭니다. 같은 민족으로 또한 우리 크리스천들은 동족을 위해 기도하며 필요한 생필품을 공궤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며 굶주릴 때 먹이고 헐벗을 때 입히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는 말로 “잘 먹으시요!”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손수 먹을 것을 굶주린 자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한 간부가 저에게 “목사 선생, 우리 인민들이 사는 것 상상도 못 하십니다. 살기가 힘듭니다”라고 힘들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모스를 읽고 “아, 굶주린 자보다 우리 크리스천이 더 문제가 있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살기 위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암 5:14).”

아모스는 유다 드고야 지방의 목동이었습니다. 양도 키우고 농사도 지었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선지자로 세우십니다. 아모스의 뜻은 ‘짐진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스라엘(북왕국)에 가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는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주위 대국들이 내전과 전쟁으로 어려움이 많았고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영토를 넓히면서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반면 유다보다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벧엘을 성지로 세워 예루살렘을 대처했으며, 우상을 세우고, 가난한 자들을 멸시했고, 저들을 노예로 팔고 사는 시장을 세우고, 제사장들은 예물을 뇌물로 받았고, 의인을 은으로 사고팔았으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까지 탐을 내고, 가난한 자의 것을 전당 잡으며, 젊은 여자들을 더럽게 하며, 겸손한 자를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모스에게 저들이 회개치 않으면 불로 멸망시키겠다는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십니다. 유대 사람이 이스라엘에 가서 특권층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겠습니까! 아모스는 이름대로 큰 짐(무거운 사명)을 진 선지자였습니다.

아마, 우리의 사회가 이스라엘이 아닌가를 생각해 봅니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있고, 기독교인이라는 선민 특권 사상이 만연되어있고, 윤리 도덕적으로 타락되어가고 있으며, 약육강식의 경쟁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아모스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해,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라고 경고합니다. 선을 구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바로 삶에 이르는 길입니다. 가난한 자를 배려하고 병든 자를 치료하며 소외된 자들에게 소망을 주는 것이 선을 구하는 것이요,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네게 한 것이니라(마 25:40)”라고 주님이 선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오병이어를 기다리고 계시고. 북녘 동포는 주님의 축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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