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牧會斷想] 발저 ‘시인’의 주인공이 되다
발저 ‘시인’의 주인공이 되다
어릴 적 내 신앙은 유아스럽게 순수하지만 미성숙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를 지으신 초 능력을 가지신 분이 나를 온전히 사랑해 주시는 것을 믿었다. 조금 더 자란 후엔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신비를 품고 살았다. 이때 나는 “예수께서 오실 때에 그 귀중한 보배 하나라도 남김없이 다 찾으시리라”를 흥얼거리며 다녔다. 이러던 난 학교에 다니며 예수님과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 버렸다. ‘왜 꼭 믿어야만 구원해 주실까? 사랑의 하나님이시면 믿지 않아도 구원해 주셔야지, 왜 에덴동산 중앙에 먹음직도 보암직도 한 선악과를 만들어 놓았을까? 아담과 하와가 따 먹을 줄 뻔히 아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 그래 놓고 인간이 죄를 지어 죽어야 한다고? 병 주고 약 준 것이 아닐까?’ 알량한 지식이 왜, 왜, 왜, 왜, 수많은 질문을 일게 하며 나를 목마르게 했다.
갈증을 해결하려 책을 사 보아도, 이해시킬 수 있을 듯한 사람들에게 물어도, 산으로 가 뜨겁게 소나무 뿌리를 뽑을 듯 부르짖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불신하면서도 힘겨운 일을 만날 때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이렇게 해 주시면 저렇게 하겠다고 하나님을 속이는 딜까지 하면서…. 하지만 응답해 주어도 약속을 지키지 않을 나 자신임을 안 난 기가 죽었다. 그래서 속마음을 감추고 정의로운 척, 씩씩한 척 연극을 하며 사는 동안 신앙은 혼돈으로 빠져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결국, 지식과 꾀를 총동원해서 살던 나를 어느 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삶의 본을 보이시고, 가르치시고, 훈련하시며, 다양한 사람들과 환경을 만날 때 지혜로운 처신을 하도록 나의 안과 밖에서 인도하시는 은혜를 알았다. 사모하여 닮고 싶은 표상으로, 오만가지 내면과 처한 환경과 사실관계를 밝혀주는 빛으로, 진리를 깨닫게 해 지혜로운 삶을 살도록 내면에서 말씀하시는 음성으로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시는 사랑을 알았다. 그리고 예언자로, 꿈꾸는 자로, 환상을 보는 자가 되어 주신 사명을 감당케 하시는 것을 알았다.
이런 내게 누군가 질문을 한다. 예언하세요? 나는 빙그레 웃으며 “네” 하고 대답했다. 깜짝 놀라며 신비스러운 은사를 어떻게 가지게 되었냐는 듯 반신반의하며 바라다본다. 반문했다. 예언은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것 아니에요? 이 질문에 “네?” 하고 바라보는 눈초리가 의심으로 가득하다. 난 요엘서 2장 28절을 읽었다. “그 후에 내가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며 너희 노인들은 꿈을 꾸고 너희 청년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신앙은 성숙할수록 예언하고, 꿈꾸고, 환상을 보는 열매를 맺는다. 맑은 영혼이 진리를 알고, 상황과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보면 예언하는 실력이 향상되는 것인데, 예언을 앞으로 일어나는 일을 아는 신비한 능력으로만 오해했다. 점쟁이가 점을 치는 것처럼…. 그리고 생명력 있는 신앙을 모르고 착하고, 순종하고, 낮아지고, 봉사하고, 사랑하며 거룩한 열매를 스스로 맺으려 했다. 결국 난 나를 위해 사회를 위해 가치 있는 삶을 살려 수고를 하지만 오히려 해 되는 말과 행동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이러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이중인격자가 되고, 신앙의 갈등을 하며 관계의 분열을 조장하며 어리석은 삶을 살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질서에 따라 과거에서 현재로 왔다 미래로, 원인과 결과에 따라 진행이 된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듯이, 씨앗이 땅속에서 썩어져 싹이 나고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이. 하나님과 호흡하는 생명 있는 신앙을 가지면 점점 자라 자신의 내면세계와 진리를 보는 실력이 향상되고,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진다. 그리고 그 능력에 따라 예언하고 꿈을 꾸고 환상을 본다. 그래서 때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다. 처음은 희미하나 점점 눈이 밝아져 분명하게 보듯이.
신앙은 생명 있는 자가 되고, 빛에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보고 겸손해지지만, 진리를 알게 되어 예언하는 능력이 향상돼 어둠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담할 수 있고, 빛으로 인도하며 생명을 불어넣으며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때로는 문제를 꾸짖고, 때로는 용서하고, 때로는 깨우치고, 때로는 멀리 떼어 놓아 외롭게 하고,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용기 주면서. 비록 눈뜬 자가 겪어야 하는 고달픈 삶을 살지만, 그리고 이렇게 사는 이들과 시대의 공백을 뛰어넘어 공감의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진리는 모든 다른 시대에도 같은 원리와 모습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이런 가운데 맺히는 열매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난 로베르트 발저 ‘시인’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님이 주신 내 정원을 즐긴다. “자연은 나의 정원이며 내 열정 내 사랑이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나에게 속하게 되니, 숲과 들판 나무와 길들, 하늘을 올려다볼 때 나는 왕자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저녁이었다. 나에게 저녁은 동화였고, 천상의 암흑을 소유한 밤은 달콤하면서도 불투명한 비밀에 감싸인 마법의 성이었다. 종종 어느 가난한 남자가 뜯는 하프의 현이 영혼을 울리는 소리가 되어 밤을 관통하곤 했다. 나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또 귀 기울였다. 모든 것이 좋았고, 옳고, 아름다웠다. 세계는 온통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장엄하고 유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