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관 목사의 목회의 길에서] “가장 큰 죄”
“가장 큰 죄”
C. S. 루이스는 그의 대표작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를 ‘교만’이라고 정의합니다. 아마도 가장 크다는 표현보다는 가장 근본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는 교만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도 글 중에 교만이 인간의 가장 핵심적이고 궁극적인 악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요? 물론 죄 가운데 어떤 것을 가장 크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가 잘 느끼지는 못하지만 의외로 큰 두 가지 죄는 염려와 불평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외라고 느끼시지요? 살인, 강간 등의 수많은 악한 죄가 있는데 왜 그것이 그리 큰 죄인가? 왜 그런지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염려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불신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신다고 얘기하셨고, 우리를 지키시고, 필요를 채워 주시겠다고 수없이 약속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염려는 그 약속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염려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를 무시하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현재를 무시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무슨 말인가? 만약 나에게 큰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일 때문에 잠이 안 오고, 그 일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고, 그 일에 온 신경이 빼앗겨 있는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고 합시다. 그럴 때, 그 일을 빼고 내 인생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것만 빼면 꽤 괜찮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즉, 그 한 가지만 제외하면, 가족들도 건강하고, 자녀들도 잘 자라고, 삶도 안정되었고, 등등. 즉 나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좋은 상태입니다.
그러니 결국 나는 한 가지 염려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채워 주신 이 모든 것을 잊고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염려는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현재를 송두리째 낭비하는 행위입니다.
염려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현재와 미래를 망가뜨리는 것이라면, 거기에 비해서 불평은 하나님이 허락한 과거를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불평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과분하게 채워 주셨는지를 잊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호수아기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살고 있는 곳은 너희가 세운 성읍이 아니고, 너희가 먹는 포도와 올리브 역시 너희가 심은 나무에서 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구절이 있습니다(수 24:13).
이 구절은 우리의 흔한 오해의 핵심을 찌르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인생은 내가 노력해서 이만큼 이룬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누구도 자신의 노력만으로 인생을 이룬 사람은 없습니다. 내 노력으로 이룬 인생은 이보다 훨씬 더 나빴을 것입니다. 하지만 때마다 굽이마다 도우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지요. 즉, 우리는 모두 내가 세우지 않고, 내가 뿌리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불평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제까지 그 모든 것을 허락하신 그 분의 은혜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듯 염려와 불평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무시하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토록 싫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염려 대신에 중심을 굳게 잡고, 불평 대신에 만족함을 누리며 감사를 돌리는 오늘 하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