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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스턴 칼럼-안지영] 왜 달라스에서 목회를? (2)

[미드웨스턴 칼럼-안지영]  왜 달라스에서 목회를? (2)

안지영 목사 (나눔교회 은퇴목사/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부교수)

왜 달라스에서 목회를 (2) 

(지난 회에 이어)

“너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느냐?”

“아무래도 ‘말씀과 삶’인 것 같은데요.”

“그러면 네가 그대로 하면 되지 않니?”

“그러면 내게 필요한 선교비는요?”

“네가 내가 원하는 걸 하는데, 네가 필요한 것을 내가 채우지 않겠니?”

이 기도 속에서 나는 내가 앞으로 선교사로서 무엇을 교회와 나눠야 할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선교사역의 보고는 설교 시간이 아닌 선교보고회를 따로 마련했을 때 하고, 예배 중 설교에는 내가 깨달은 말씀과 적용에 관하여 나누었지요. 나의 조그마한 말씀 나눔이라도 주님께서 사용하시길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한민족의 미래는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책임을 주셨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래서 한민족의 잘 됨은 한국 교회의 건강성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건강성은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에 따른 순종에 달려있고요. 그래야 한민족의 잘 됨이 다른 이웃에게도 행복이 되기 때문이지요. 이 길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하는 길이라 봅니다. 그 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된다고 하신 말씀도 이것과 연계해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귀결되지만, 주님이 오시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이방 나라들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의 복을 사모하는 일도 염두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마음에 두었기 때문에 선교 사역을 마치고 목회 현장으로 이동하는 나는 당연히 한국에서 목회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후배의 권유로 미국에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미국 이민 목회를 선뜻 결정할 수가 없었지요. 더욱이 이민 교회가 가진 특수성 때문에 더 머뭇거리게 되었습니다.

이민 교회는 한국에 있는 교회와 달리, 좀 더 특수한 처지에 있더군요. 한인 이민 교회는 백인이 주도하는 주류 사회에 적응하려는 한인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기에 주류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욕구가 남다르다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냉혹한 현실 앞에서 대부분의 이민자는 여유 있는 생활이 아니라 생존 경쟁에 내몰리게 되거든요. 그래도 한국에 있을 때는 나름의 사회적 지위를 가졌던 사람들도 이민자의 자리에 있게 되면 과거의 영광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 영광은 그냥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게 되지요. 그래서 이민자들에게는 ‘서운함’이 가슴에 묻어납니다. 주류 사회에 대한 ‘열등감’도 빼놓을 수 없고요. 이러한 현상을 나는 1980년대에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이민 교회의 목회는 ‘다독이고 위로하는 목회’라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리고 20년 후에 목회 현장으로 이동하는 나에게 미국에서 그런 목회를 한다는 게 답답하게만 여겨졌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약 15년의 목회 기간에 교인들의 응석(?)을 받아주다가 끝나는 목회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이런 미국 이민 교회 목회는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민 목회에 선뜻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머뭇거리는 중에 문득 파푸아뉴기니 사역이 생각나더군요. 파푸아뉴기니 선교사들 간에 이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파푸아뉴기니 현지인 제자훈련은 불가능하다.” 선교 역사가 한국과 비슷한 파푸아뉴니기에서 제자양육을 시도했던 선교단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바로 제자훈련의 불가능성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진 형제 여섯 명이 있었습니다. 그 모두가 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자신들을 주님의 제자로 부르신 것을 알고 그 책임을 다하려는 마음은 분명했지요. 그리고 자기들의 일상생활과 사역 속에서 제자로 사는 것을 시도했던 형제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사역과 삶을 지켜본 다른 선교사들이 꽤 관심 있어 하고, 나중에는 이 형제들을 신뢰하고 친분을 맺는 경우도 생기더군요. 이 형제들이 내가 그곳을 떠난 지 2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제자양육이 저와 함께했던 형제들에게는 가능했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던 자였습니다. 이것이 기억난 나는 일본 선교를 떠올려 보았더니, 일본에 있는 선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일본 선교는 어렵다”였습니다. 태국 선교도, 인도네시아 선교도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중동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요. 중남미 선교도 다른 곳과 다를 바 없이 어렵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든 지역이 선교하기에 쉬운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쉬운 거면 굳이 선교사가 갈 필요가 없었겠지요. 나는 이런 생각에 이민교회가 어렵다고 하여도 주님이 제자양육을 가능하게 하시면, 나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르고 달래는 이민 목회를 넘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뛰어들 수 있는 주님의 제자를 세우는 것에 마음을 두고 이민 목회로 결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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