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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牧會斷想] 귀 없는 목사 부부 

[목회단상 牧會斷想] 귀 없는 목사 부부 

지준호 목사(헌츠빌 은퇴, 자유기고가)

귀 없는 목사 부부 

“목사 부부관계가 심각하다며? 그것이 말이 돼? 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 

누군가 한심스럽다는 듯 비난을 한다. 속으로 “말이 되지. 이유를 알면 한숨 쉬고는 측은지심이 일걸”하며 쓸쓸한 미소를 짓는다. 우리 부부도 “새대가리와 양의 탈을 쓴 염소 대가리”라 서로 여기고 피 터지게 싸웠으니까. 

인간은 다양한 관계 가운데서 존재한다. 첫째는 숨 쉬고, 먹고 마시고 배출하며 자연과 관계 속에서 생존한다.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진리를 찾으며 삶을 편리하게 만들며 행복을 누린다. 둘째는 사랑 가운데서 태어나고 태어나게 하는 가족의 관계 가운데서 존재하고, 인간으로 형성된 사회 가운데서 어우러짐과 존재 가치를 높이며 행복을 누린다. 셋째는 인간들이 만든 문명의 산물과 모든 감정과 깨달은 진리를 표현하고 공감하는 예술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누린다. 이렇듯 다양한 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누리려면 듣고 보고 만지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귀와 눈과 몸과 머리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지혜다. 

하지만 눈과 몸과 감정에서 온 정보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들을 수 있는 귀를 소홀히 하기 일쑤다. 그리고 깊은 들음이 없는 허술한 정보를 토대로 판단한 말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듣고 또 들으며 이해하고 진리와 사랑을 대입해서 말해야 하는데…. 그래서 다투다 완전치 못한 인간임을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다 안 되면 술의 힘까지 빌어 화해의 삶을 보통 사람들은 산다. 

입장이 조금 다르다면 변명이 될까? 목사는 가족을 잘 먹이고 입혀야 하는 삶에 거룩한 성직자라는 짐을 지고 산다. 그리고 부인은 남편이 영적으로 훌륭한 목사로 능력 있게 설교와 리더십을 행하며 성도들이 만족하는 교회로 부흥시키고 자신들의 삶이 여유 있어 지길 기대한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에서 남편의 먹고 싸고 거짓되고 화내는 못난 모습을 본다. 그러면서 거룩하라 사랑하라 설교를 할 때, 부인은 남편이 양의 탈을 쓴 염소 대가리라 여겨지지 않을까? 신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라면 몰라도 …. 

그래도 돈 걱정이라도 하지 않게 한다면 눈 찔끔 감고 넘어갈 수 있지만, 생존의 문제로 걱정이 태산이면 상황이 다르다. 성스럽지도 않고 능력도 없는 남편을 존경 대신 무시하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무시하면 목사는 부인이 미워질 테고 자신의 진심도 인간의 실체도 모르는 듯한 부인을 생각이 짧은 새대가리라 여기지 않을까?  

둘은 사랑하고 거룩하게 상대를 고치려 선한 싸움을 싸우지만, 서로의 진심을 알고 해결하기는커녕 불신만 증폭시킨다. 염소 대가리는 위협하고 공갈쳐 새대가리를 깨우치려 하지만 어림도 없다. 새대가리는 양의 탈을 벗기려 하지만 점점 사나워질 뿐이다. 결국 몸싸움까지 하다 서로를 분명한 새대가리고 양의 탈을 쓴 염소라 확신하게 되지 않을까? 부부는 피 터지게 싸우고 거룩과 사랑을 설교하며 입술이 마르고 혀가 뒤틀림이 계속되는데 목회가 편하게 될까? 

인간관계 중에서 부부관계가 행복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다음이 가족이고 친구고 이웃이고 사회고 나라고 세계다. 그런데 세계와 나라의 평화를 위하여는 기도하면서 부부관계나 가족의 소통을 위해 기도와 대화는 별로다. 귀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가장 소중한 비밀을 나누어야 할 부부가 서로의 진실은커녕 가슴속으로 들리는 진리의 음성까지 듣기가 힘겹다. 결국 부인에게서 인정 못 받는 목사가 교인들에게서도 무시당하다 잘해 주는 여인이 있으면 선을 넘기 일쑤다. 

충분히 이해될 때까지 듣고 목회의 현실에 관한 이해와 인간에 관한 이해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며 공감에서 오는 행복을 누릴 줄 알아야 하는데, 약점을 공격해 서로가 티 케이오(TKO)시키려 한다. 상대의 말을 먼저 듣고, 내 감정을 보고, 진리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는 훈련이 되었어야 하는데…. 

진리의 음성과 상대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감정을 보며 진리 안에 거하는 기도와 신앙 훈련이 어릴 적부터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또 해도 모자람이 없지 않을까? 신앙의 실과 허를 직시하고 상대와 진리의 음성들을 사라진 귀를 찾아야 할 때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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