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사모의 ‘교회 장애교육’(22)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다시 일어서기 – 정서·행동 장애/ 품행장애/ ADHD에 관하여
홍경아 사모(미주)
아리조나한인교회, 현 공립초등학교 특수교사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다시 일어서기 – 정서·행동 장애/ 품행장애/ ADHD에 관하여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셨다. 이것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을까? 그동안 코비드가 몰고 온 어두움 속에 갇히고 짓눌려서 예수님의 부활과 승리에 대해 잠시 잊고 있었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꼭 모르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길 일쑤이다. 이런 내가 바로 ‘정서·행동 장애’, ‘학습장애’, ‘ADHD’ 그리고 ‘언어장애’가 아닌가 한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작년 여름, 새로 근무하게 된 학교는 이전 학교와 같은 교육구에 있었지만 내가 맡게 된 학생들의 장애나 성향은 지난번 학교와 무척 달랐다. 대부분 ‘발달장애’라는 장애 진단하에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정서·행동장애’ 또는 ‘품행장애’가 더 적합한 진단명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말로만 듣던 ‘정서장애’, ‘품행장애’ 학생들을 맞닥뜨리니 비로소 화끈하게 제대로 경험을 하고 그만 몸도 마음도 지치고 탈탈 털려 도저히 글을 쓰거나 여타 다른 활동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집에 오면 지쳐 쓰러져 잠들기 일쑤이고, 학교에 가서는 아침을 “주님, 살려주세요!”라는 기도로 시작하기가 다반사였다. 겉에서 보면, “아니, 1학년짜리 꼬마 하나 못 다루어서 쩔쩔매냐?” 하고 비웃을 수도 있겠으나 한번 와서 경험해 보라. 뇌가 반은 달아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지어다!
그런데 성탄절을 정점으로 고통의 실마리가 점차 풀릴 기미를 보이더니 봄과 함께 서서히 나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있다. 이번에 참석한 ‘목회자 사모 수련회’도 나의 마음에 예수님의 부활 기쁨을 다시 일깨우는데 큰 몫을 하였다. 어둠의 터널 막바지 출구 쪽에서 지나온 길들을 돌이켜 살펴보니 비록 어둡고 힘들었고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예수님의 위로와 격려가 있었기에 출구를 향해 간신히 기어 나왔음을 깨닫는 중이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당분간 “정서장애”, “품행장애”, 그리고 “ADHD”에 대해 그동안 배우고 느낀 바를 나누려고 한다. 혹시 필자처럼 어둠의 터널을 기거나 헤매고 있는 엄마들이나 가족들이 있다면 이 글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길 바라는 마음이다.
일단 “정서장애(Emotional and Behavioral Disorder)”란 무엇일까? 정서행동장애란 다음 중 한 가지 이상의 특징들을 일정 기간 이상, 지속적으로 심하게 나타내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에 진단을 내린다.
(1) 또래 친구들이나 교사들과 만족스럽고 지속적인 상호관계를 맺지 못하는 특성을 보이는 경우
(2) 지능, 감각 능력, 또는 건강상의 이유가 없이 학습에 지장을 받는 경우
(3) 일상적이고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인데도 만성적으로 비정상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경우
(4) 전반적인 불행감이나 우울증을 나타내는 경우
(5) 개인적인 또는 학교와 관련된 문제 상황에서 비이성적으로 신체적인 통증, 공포를 드러내는 경우
다시 말해, 지능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신체적인 질병도 없는데, 별것도 아닌 일에 심한 공포나 분노, 우울감을 나타내며 이러한 감정 때문에 친구도 못 사귀고, 선생님 말도 안 듣고, 심지어 학교도 안 가겠다고 버티는 경우 등이 이에 속한다. 불안장애, 공황장애도 특수교육의 관점으로 보면 정서·행동 장애에 속한다. 이렇게 학구적이고 상투적인 어휘들만 듣다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아무렴 자폐 스펙트럼 장애나 시각, 청각 장애보다 더 힘들고 괴로울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마저 들 수도 있겠다. 필자도 예전에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가족 중에 불안장애나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깊이 공감할 것이다. 이러한 장애나 증상이 얼마나 넓고 깊게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을 초래하는지 말이다.
이런 정서·행동 장애를 지닌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이나 갈등은 바로 약물을 복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특수교육, 상담 또는 정신과 진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갈등부터 시작된다. 정서 및 정신적인 어려움을 기도로 해결하지 않고 세상의 수단을 이용하는 믿음 없는 사람들처럼 여겨지고, 믿음이 부족하거나 영적인 싸움에서 실패한 사람으로 교회 안에서 비칠 것 같아 숨기고 감추는 경향을 보게 된다. 특수교육에 발을 디뎌 놓기 전까지는 필자도 막연하게 정신과를 방문하거나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기도로 영적 전쟁에 임하는 것과 대치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상담이나 약물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이런저런 사례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교육, 상담, 약물 등으로 증상을 완화시키고 사회생활의 적응력을 높이는 것을 할 수 있겠지만 인간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참 평안과 자유를 주시는 것은 오직 예수님뿐이라는 것이다. 공립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정체 모를 불안감에 온몸을 떨며 울부짖는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싶은 충동이 얼마나 많은 순간 일었는지 모른다. 예수님을 아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사실을 마음의 고통을 겪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고통과 불안 중에도 늘 함께하시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특히 마음의 장애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에게 전달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