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사모의 ‘교회 장애교육’(15) 적대적 반항장애(Oppositional Defiant Disorder) ②
홍경아 사모(미주)
아리조나한인교회, 현 공립초등학교 특수교사
적대적 반항장애(Oppositional Defiant Disorder) ②
5살짜리 꼬마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 아이는 ‘가벼운 적대적 반항장애(Mild Oppositional Defiant Disorder)’라는 꼬리표를 달고 전학을 왔다. 물론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적에는 이러한 장애 진단명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책에서만 읽었던 이 ‘적대적 반항장애’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던 차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꼬마를 가르치게 되었다. 언뜻 보기에 꼬마는 전혀 장애가 없는 것 같았다. 또래보다 고급 단어들을 사용하며 청산유수로 여러 주제에 관해 수다도 잘 떨었다. 전학 왔는데도 전혀 주눅 들거나 꿀리는 기색이 없이 금세 또래 사이에서 대장이 되었다. 꼬마와 함께 보낸 며칠은 아무 일 없이 잘 지나갔다. 꼬마의 IEP에 쓰여 있던 무시무시한 내용들-5살임에도 불구하고 수업 중에 학교에서 집으로 수없이 보내졌고, 심지어 정학을 당한 적도 있었다는-이 긴가민가 싶었다.
그런데, 며칠 후, 꼬마의 본색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굉장히 놀랍게도 그 꼬마는 악필이었다. 말은 청산유수로 잘하면서도 아주 간단한 알파벳 따라 쓰기를 잘하지 못했다. 꼬마가 잘하지 못하는 과제를 주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엄청난 “폭언”과 “개똥철학”이 쏟아졌다. 꼬마의 폭언을 듣고 있노라면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핑 돌거나 주먹이 날아가는 상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예를 들면 “e”자를 줄에 맞추어 옮겨 적으라고 하면, 내가 생각하는 “e”는 이렇게 생겼고 이런 식으로 쓴다며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떼를 쓰는 것이다. 계속 제대로 쓰라고 하면 예전 학교에서는 이런 식으로 배웠다며 뻥을 치기도 하고, 갑자기 편찮으신 할머니가 그립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에 간다고 한다. 계속 꼬마의 괴변을 듣고 있다 보면, 이 아이가 하는 말이 맞고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서서히 갈등의 중심이 되었다. 간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데, 새치기하는 것을 친구가 제지하면 “이 망할 놈의 XX야!” 하는 5살 어린이들이 거의 쓰지 않는 욕설을 퍼부었다. 듣고 있는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두 눈만 껌뻑껌뻑할 따름이었다. 가끔 선생님에게 “F”로 시작하는 말을 날리기도 했다. 친구들과 함께 놀이할 때에도 자신이 정한 규칙을 따르지 않거나 잘못을 지적하는 친구가 있으면 선생님이라도 된 듯 큰소리로 야단을 치거나 폭언을 날려서 묵사발을 만들어 놓는다. 한 번은 친구에게 소리를 질렀기에 선생님이 친구에게 사과하라고 하자, 대뜸 “미안하다는 말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라는 알쏭달쏭한 멘트를 날리며 사과하기를 거부하였다. 결국 꼬마는 타임아웃을 당하여 교실 구석에 앉아 있게 되었다. 꼬마에게 다가가 방금 한 소리가 무슨 뜻이냐 물어보니 “미안하다는 말만으로는 소용이 없어요. 진정한 액션이 필요한 것이죠.”라는 훌륭한 말을 내뿜는 것이 아닌가!
그 꼬마를 만나기 전까지는 과연 “적대적 반항장애”라는 것이 진짜 존재하는 장애인지 반신반의하였다. 왜냐하면 성격이 불같거나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들을 괜히 장애인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 보았다. 그런데 앞서 말한 그 꼬마를 비롯하여 그 후로도 적대적 반항장애 친구들을 몇 명 만난 후에는 “적대적 반항장애”라는 장애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적대적 반항장애”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적대적 반항장애란 빈번한 분노, 거부, 적대감, 시비조의 논쟁, 복수심, 반항의 행동 양상을 권위를 지닌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행동장애의 한 유형이라고 한다. ADHD, 학습장애, 불안증과 함께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고집스럽거나 불같은 성격과 적대적 반항장애의 차이는 반항이나 분노가 주로 어른이나 권위를 지닌 사람들을 향한다는 것, 그리고 6개월 이상 지속되어 가족, 친구, 학교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이런 분노의 경향이 사춘기 이전 대부분 유치원 이전의 어린 나이 때부터 보인다는 것이다. 반항의 양상이 한 군데 예를 들면 학교나 가정에서만 보인다면 약한 수준의 적대적 반항장애라고 진단하며, 최소 두 군데 이상에서 동시에 보인다면 중간 수준의 적대적 반항장애, 학교, 집, 공공장소 등등 세 군데 이상에서 보인다면 심한 수준의 적대적 반항장애로 진단한다. 적대적 반항장애를 지닌 어린이 중 소수는 ‘품행장애’로 악화되기도 한다.
적대적 반항장애를 지닌 학생들은 일반적인 학생들에게 효과적인 훈육 방법이 잘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윽박지르거나 양심에 호소하거나 동정심을 유발하는 등의 일반적인 방법을 들이밀었다가는 백전백패, 더 나아가서는 묵사발이 될 수도 있다. 예전 글에서 밝혔다시피, 한번 이들과 논쟁으로 얽히게 되면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 말로는 이길 수가 없다. 그렇다고 ‘사랑의 매’도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복수심에 불타서 이글거리는 눈빛에 주눅이 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적대적 반항장애’로 고생하고 있는 학생들과 그 가족들에게 실제로 적용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을 다루어 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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