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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인(人)-인터뷰] PK의 아버지 버지니아제일침례교회 김제이 목사

[침례인(人)-인터뷰] PK의 아버지 버지니아제일침례교회 김제이 목사

1989년부터 33년 동안 수많은 PK를 예수님께 인도하고 함께 울고 웃다… 이제 Good Bye

But 제이 킴 목사의 섬김과 사역은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된다

“2세 사역은 투철한 사명감의 사역자와 충분한 지원 필요하다”

“저 목사님, 코미디언보다 더 재밌어” “저 목사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역하는 것 같아” 김제이 목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의 말이다. “김제이 목사가 PK 사역을 마치면, 우리 총회는 자동차라도 한 대 뽑아줘야 할 것이다” “김제이 목사는 우리 목회자들의 가장 아픈 부분을 담당해준 고마운 목회자다” 김제이 목사를 겪어본 사람들의 말이다. 아이들과 사모의 친구 같은 김제이 목사가 총회 사역에서 떠난다.

늘 젊고 활기차게 활동하는 김제이 목사가 한인총회에 참석한 지 37년 됐고, (41차 정기총회를 맞았으니) PK를 섬긴 지 33년 된 우리 총회 초창기 멤버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또한, 그렇게 밝고 활기찬 김 목사가 잠들기 전에 강력한 신경계 약을 한 움큼 먹어야 하는 하루하루 시한부 인생처럼 주님께 자신을 드린 사역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33년이 넘는 PK‧MK 사역을 마치는 김제이 목사와 그동안의 사역에 대한 희로애락과 2세 사역에 대해서도 얘기를 들어봤다. 김제이 목사와의 인터뷰는 지난 40차 정기총회 이전에 지면 질의로 진행됐으나, 일부 내용을 업데이트해서 김제이 목사가 은퇴?하는 총회판에 실리게 됐다. < 편집자 주 >

2020년에는 정기총회가 없었고, 작년에 어렵게 내쉬빌(TN)에서 열렸습니다. 아직도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의 참석하시는 심정과 참석하는 P•MK들에게 환영사처럼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예 (팬데믹이어도) 이번 총회만큼은 꼭 가려고 합니다. 사실 작년에는 팬데믹으로 인하여 총회가 개최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습니다. 버지니아주는 아직도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교회가 있습니다만 감사하게도 저희 교회는 팬데믹이 시작됨과 동시에 주차장과 온라인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성전 내부에서 예배를 드리시는 성도님들의 안전을 위해 방역 쉴드를 설치했습니다. 지금은 점차 대면 예배의 횟수를 늘려가면서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총회가 개최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가 총회가 개최된다는 소식에 당황했었습니다. 처음 총회 개최 소식을 들었을 때는 청소년 프로그램이 없을 거로 생각했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참석하시는 목회자 가정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고 총회 계획이 변경되어 청소년 프로그램도 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연락받았을 때 처음 총회에 참석했을 당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목회자 자녀들을 떠올리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원수에 상관없이 부모님들이 총회 참석하시는 동안 목회자 자녀들을 열심히 섬겨야겠다는 마음에 총회 참석 및 청소년 프로그램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총회 마지막 밤을 장식하는 가족의 밤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올해 아이들과 목사님 그리고 사모님에게 정식으로 마지막으로 감사 인사를 드릴 기회가 주어져서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을 격려하고 반겨주려 합니다. 우리 목회자 자녀들에게 특별한 주님 안에서의 기쁨과 감격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LA라는 메리트인지 김제이 목사님의 영향인지 자녀들의 참석이 사전등록만 213명이었습니다. 작년에는 마지막 날 저녁의 ‘청소년의 밤’이 없었지만, 올해는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 외 계획된 프로그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어느새 청년과 대학생이 된 목회자 자녀들이 동생들을 위해 많은 부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죠. 불과 얼마 전까지 코흘리개들이었는데 벌써 어른이 되어 동생들을 섬기고자 봉사를 자원하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뿌듯할 뿐입니다. 프로그램에 관한 부분은 추후에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기대하고 지켜보셔도 좋겠습니다.

유스프로그램이나 어린이 프로그램은 자체 프로그램인가요?

= 아닙니다. 청소년이나 어린이 프로그램은 어른들을 위한 총회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보조프로그램입니다. 청소년이나 어린이들 프로그램은 총회 스케줄에 맞추어서 조정하고 있고 총회에서 결정하시면 그 일정에 맞추고 있습니다.

❒ 부모와 함께 따라오는 유스 이하의 어린 자녀들을 위해 작년에는 어린이(PK~3학년)를 최수정 사모님(플라워마운드, TX, 부사역)이 수고하셨는데 올해는 어떻게 준비가 되는지 궁금합니다.

= 저도 이메일 상으로 연락받았기 때문에 다른 분들과 같은 상황입니다. 재작년부터 어린이를 담당하였던 크리스틴 전도사님이 아기를 낳아서 참석을 못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올해는 캘리포니아에서 자원하신 분들이 봉사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이번 총회가 목사님이 총회 청소년 사역의 마지막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이번 총회에서 어떤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 사역자가 사역을 그만둔다는 것은 없겠지요. 다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처럼 새로운 운영진이 선출됨과 동시에 새로운 운영진에 맞춰진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에 이제 그만 뒤로 한걸음 물러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총무님이 선출되시고 난 이후 재신임이 되어 안정되실 때까지 사역을 섬기고자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뒤로 물러설 때가 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워싱턴에서 목회자 자녀들을 대상으로 PK 수양회를 개최해서 동부지역 대학탐방 및 타문화를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고 싶은 계획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저의 소망을 이뤄주시리라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 김제이 목사가 이끌었던 정기총회의 꽃, 마지막 날 저녁의 ‘청소년의 밤’

❒ 지금까지 총회 목회자 자녀들을 위해서 많은 희생과 헌신을 해주셨는데 청소년 사역을 시작하게된 계기나 동기가 있으셨는지요?

= 총회를 처음 가 보게 된 것은 신학생 때였습니다. 1985년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교수님과 함께 달라스 총회에 처음 참석하게 되었고, 이후 지속적으로 미국 총회 및 한국 총회에 참석하면서 사역에 대한 정보와 도움을 받고자 했었습니다. 저는 목회자 자녀도 아니고 교회에서 성장하지도 않았기에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총회와 선데이 스쿨 본부 행사 때면 빠짐없이 참석해서 배우고자 노력했으며 이후 교회를 개척하고 담임 목회자의 자격으로 총회에 참석하게 된 것은 1989년 라스베가스 총회였습니다.

담임목회자 자격으로 총회에 참석했지만, 아는 목사님도 없었고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목사님들께서 참석하셨는데 회의장에서 은혜롭지 못한 소리와 함께 이곳저곳에서 고성이 들렸습니다. 차마 계속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잠시 밖으로 나왔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부모님들께서 총회에 참석하시는 동안 총회 집회 장소 근처에서 배회하고 있는 목회자 자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군가의 통제도 없이 총회 장소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기에 그 아이들을 불러 모아 함께 대화하며 즐겁게 지냈습니다.

그다음 해인 1991년 애틀랜타 총회 당시 미국 총회에서는 ‘Afterglow’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는데요, 그 프로그램은 Evangelist를 위한 모임으로 매년 총회가 시작되는 월요일 저녁에 개최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내에서 유명한 복음성가 가수들 및 부흥사들을 포함하여 약 천여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모임인데 그곳에서 초청되어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우리 교회 청소년 찬양팀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렸습니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런 큰 모임에 가서 찬양하겠다는 용기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한인 총회로 다시 와서 아이들과 처음으로 함께 찬양하며 말씀을 나누기 시작하게 된 것이 오늘날 PK 모임의 시작입니다.

= 아니요. 당시 사역은 총회의 지원 없이 저희 교회 사역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게 된 이유는 다음 세대를 위한 청소년 사역을 위해서 개척한 것입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듯이 청소년 사역이 점점 활발해지면서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신앙 교육 때문에 저희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 사역을 하다 보니 재정적인 한계가 있었지만, 자녀교육을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오신 부모님들이 오시기 시작한 거예요. 부모님들이 오시니까 재정적인 한계도 극복이 되고 기도와 헌신에 더 많은 활동을 할 수가 있었지요. 그러면서 청소년 사역의 영역이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매년 청소년들을 위한 단기 선교팀을 결성하여 전국 순회공연 및 동남아시아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으며 초창기에는 교회 밴과 개인 차량 및 유홀 트레일러에 악기를 직접 싣고 다니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동부지역을 포함하여 중서부 지역에서 총회가 있을 때면 몇 날 며칠을 몇 대의 미니 밴으로 나누어 타고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사역의 효율성과 안전을 위해 저희 교회 성도님들께서 힘을 모아 22인승 버스를 구입해 주셔서 그 버스로 20시간 이상 소요되는 거리를 차를 타고 이동하여 총회에 참석한 일도 있었는데 한번은 휴스턴에서 총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인데 버스가 고장 나서 부품이 올 때까지 길에서 밤을 꼬박 지새울 때도 있었습니다.

사역 초창기에는 어린아이들도 담당했었습니다. 특히 저희 교회 목사님이셨던 노영우 목사님의 아내 노정수 사모님께서 아이들을 담당해 주셨고, 이후엔 PK 그룹에서 자란 조이 선생님이 어린이를 담당해 주셨습니다. 1990년에 시작된 선교 찬양팀은 5대째 이어가고 있으며, 그들 중에는 이미 졸업하고 결혼하고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된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새로운 아이들이 그룹을 형성하며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청소년 사역을 많이 해오셨는데, 특별히 총회에서의 PK사역은 어떤 다른 애정이나 철학이 있으실까요?

= 사역 초기에는 목회자 자녀들이 겪는 아픔과 상처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겪는 사춘기, 이성 문제, 문화적 갈등과 정체성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만, 해가 거듭될수록 목회자 자녀들만이 겪고 있는 슬픔과 아픔, 고통을 깊이 알게 되면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도하며 극복해 나가도록 노력했습니다. 저 또한 청소년 시기에 많은 갈등이 있었거든요. 그 아픔이 와닿은 것이지요.

목회자 자녀들의 아픔을 바라보면서 선교를 외부로만 나가는 것이 선교가 아니라 이 아이들도 똑같이 복음으로 돌봐야 하며 말씀으로 양육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고 함께 해 주실 때까지 우리 목회자 자녀들을 돌봐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 PK들은 여느 청소년들이 겪는 정신적, 심리적, 육체적, 문화적 갈등 위에 부모님들로부터 받는 중압감이 다른 아이들보다 상당히 큽니다. 실제로 생활에 많은 규제와 제재가 따릅니다. 목사 아들이기에, 목사 딸이기에, 성도님들에게 예의를 지켜야 하고, 말을 조심해야 하고 떠들어서도 안 되고, 싸워서도 안 되고, 사고 싶은 것을 다 사서도 안 되고, 갖고 싶은 것도 다 가질 수 없습니다.

또한, 항상 교회에서 모범이 되어야 하고, 똑같은 실수를 할지라도 목회자 자녀라서 더 혼나고, 목회가 우선순위인 부모님으로 인하여 심방이 우선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거의 혼자, 혹은 맏아들이나 맏딸이 부모 역할을 하면서 가정생활을 해야 하고, 작은 교회의 목회자 자녀들은 월급 안 받는 풀타임 전도사같이 살아야 합니다.

게다가 교회에서 어른들이 싸우거나, 아빠가 교회에서 쫓겨났다든가, 교인들에게 멱살을 잡혔다든가 하는 일들을 경험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아이들에게 그러한 부모님의 모습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아서 좋지 않은 영향력으로 남은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특히 기억나시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 이제는 다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으니까 얘기해도 될 것 같아요. 어느 날 총회를 갔다 왔는데 성도님들이 목사를 쫓아내려고 교회 자물쇠를 바꿔서, 집에도 못 들어가고 교회도 못 들어가고 자동차에서 몇 주를 보냈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아이는 초등학교 때 17번 이사를 해서 친구가 없는 아이도 있었으며, 아빠에게 험한 말과 욕설을 하고 멱살을 잡았던 교인이 자기에게 미소를 지으며 ‘잘 지내니?’라고 물어봤었다는 아이, 자살을 시도했으나 엄마 아빠는 모른다는 아이, 아빠는 교회에서는 천사인데 집에서는 악마라는 아이, 생리통 때문에 힘든 상황에서 다음날 SAT 보는 날인데도 아빠가 교회에 와서 반주하라고 해서 그다음 날 SAT를 안 봤다는 아이, 엄마 아빠는 매일 심방으로 바쁘다 보니 중학교 다니는 언니와 생활하고 있는데 엄마·아빠보다 언니가 미워서 언니를 죽이고 싶었다는 아이… 너무 많아 일일이 헤아릴 수가 없네요.

그런 이야기들을 아이들이 총회에 와서 하나요?

= 예, 소그룹에서도 나누고 전체 그룹에서도 나누어요. 언니들이나 형들이 먼저 나누니까 나눌 수 있는 것이겠지요. 자기 혼자만 겪는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도 그런 아픔을 겪는다는 것을 알면서 같은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고, 11학년 12학년쯤 되면 가족의 밤에서도 간증할 수 있는 용기도 생기는 것이지요.

청소년 집회에 특히 PK들이 마음을 여는 이유가 있나요?

= 목회자 자녀라는 동질감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 제 의도는 아이들에게 뭔가 대단한 것을 하게 하는 것보다 위로해 주고 얘기를 들어주며 기쁨만을 주고 싶었습니다.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어도 일상적으로 교회나 집에서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주고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마켓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과자나 음식을 나눠주면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도 아이들의 마음은 변함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청소년 집회에 참석한 아이들이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마음을 갖고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사실 처음 몇 년간은 말씀 중심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평안하게 해 주는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회자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부모님에 대한 반항심과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프로그램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교회나 가정에서 듣기 싫어도 듣는 그런 설교가 아닌 그동안 마음속에 억누르고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연극으로 표현하게도 하고 춤과 노래를 통해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에 쉽게 갈 수 없는 놀이동산에 가서 자유와 즐거움과 행복을 마음껏 느낄 수 있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열어요. 그래서 저녁 집회 분위기가 첫날과는 다르게 바뀌죠, 찬양에 힘이 있고 열정이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면서 구원의 확신을 점검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의 결단을 하는 시간도 갖습니다. 새롭게 집회에 참석한 청소년들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의 확신을 결단할 뿐만 아니라 목회자로 선교사로 서원하는 청소년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목회지 자녀로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숫자는 한 해 평균 25명이에요. 거기에 선교사 목회자 되겠다는 결신자 또한 20명에서 25명이 됩니다. 지난 33년 동안을 돌아보면 엄청난 숫자가 결신한 것이지요.

▲ 모두를 놀라게 했던 사모들의 패션쇼

총회 청소년 집회를 하는데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요?

= 글쎄요. 어려움보다는 부모님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총회 청소년 프로그램은 등록 당일까지 어떤 아이들이 참석하는지 파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총회가 개최되는 지역교회에서조차 등록이 안 된 경우도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놀이동산을 가기 직전까지도 인원 파악이 안 됩니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 프로그램은 큰 윤곽은 잡히지만 실제로는 프로그램 직전에서야 상황을 보면서 조정하여 진행하게 됩니다. 아울러 대학생과 청년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다 보니 11살에서부터 영어권 청년들까지 함께 와서 청소년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감사하게도 대학생들이 많이 오는 해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가 수월합니다. 대학생들과 청년들이 함께 참여해서 동생들을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대학생이나 청년이 된 PK들이 등록만 하고 참석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확한 인원 파악이 안 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데요, 이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20여 년을 저희 교회 선교팀과 함께 PK 집회를 인도했었지요. 약 5년 전부터는 PK 대학생들과 미리 연락해서 PK 찬양팀을 만들게 하고, 월요일 도착 즉시 찬양팀이 구성되어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PK들의 재능은 대단합니다. 아이들의 참석 여부만 정확하게 담당자에게 알려주면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어떤 아이들은 일 년 내내 총회 집회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한가지 마음이 아픈 것은 아이들이 모든 청소년 프로그램을 마지막까지 끝내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부모님들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데려갑니다. 그럴 때 아이들이 울어요. 울면서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플 때가 많았어요.

두 번째는 어려웠던 일보다 무거운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놀이동산을 다녀왔는데 부모님께서 저녁을 다 드시고 아이들 음식을 남겨 놓지 않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자녀들인데 즐겁고 재밌게 놀다 와서 배고픈 채로 왔는데 아무런 음식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때로는 늦은 시간에 피자를 주문해서 사 먹인 적도 있었습니다.

사실 청소년 사역이 시작된 후 25년 동안은 총회에 청소년 집회에 대한 예산조차 없었습니다. 물론 저희 교회에서 모든 것을 충당했었지요. 이지춘 목사님과 박태환 목사님께서 총무를 하실 때 관심을 두기 시작하여 엄종오 목사님께서 총무가 되셨을 때 ‘가족의 밤’이 총회를 마무리하는 공식적인 가족 프로그램이 되었고, 이후 청소년 집회에 대한 작은 예산이 총회에서 편성될 수 있었습니다. 충분한 금액은 아니더라도 아이들을 위한 선물도 살 수 있고, 초청 세미나 강사들이나 자원봉사로 수고한 대학생 및 청년들에게 약간의 장학금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총회에 오시면은 목사님 사모님도 결국 교인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내 자식 내 아이를 특별히 신경 써달라 하면서도 아이의 아픔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청소년 사역에 대한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순수한 마음으로 목회자 자녀들을 섬긴 것인데 마치 어떤 명예나 명성을 얻으려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을 생각해 보면 많은 영어권 목사님, 전도사님들께서 오셨었습니다. 그런데 청소년 설교를 한번 하고 나면 지쳐서 그다음 해에는 참석하시지 않거나 프로그램을 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PK 모임은 단지 설교만 하는 것도 아니고, 놀기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 자녀들의 아픔을 만져주고 위로해주며 믿음과 결단, 도전을 주면서 부모님의 사역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인데 설교하고 가르친다는 개념만을 가지고 PK 그룹에 와서 이렇게 저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아울러 오랜 시간 동안 청소년 집회를 내려놓지 않는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화도 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지나온 시간 묵묵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목회자 자녀들의 영혼만을 생각하며 섬겼습니다. 때론 ‘그만 내려놓아야지’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당장 섬기고자 하는 사역자가 없기에 한 해 한 해 은혜 가운데 섬기며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가 다음 세대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미래 세대 사역에 대해 견해, 또 교단적인 차원에서 바라는 바가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 2세에 대한 이슈는 84년에 신학교를 다닐 때부터 들어 왔어요. 다음 세대에 대한 문제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우선 청소년 사역에 대한 뚜렷한 사명자가 없다는 것으로 분석해요.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청소년 사역을 목회자가 되기 위한 징검다리라 생각해요. 나이가 젊으니까 청소년을 맡고 있다가 나이 들면 목사안수 받고 교회를 개척하거나 교회로 부임해가는 거지요. 어린이 사역은 그래도 괜찮아요. 사모님이나 나이 드신 여자 전도사님들이 어린이를 담당하시는 것을 자주 보았는데 청소년들은 그렇지 않아요. 청소년을 위한 투철한 소명과 사명 의식이 있는 분들이 필요해요. 미국 목회자 중에서는 나이가 들었어도 청소년 사역자인 분들이 많아요.

그리고 두 번째는 청소년 사역자에 대한 대우가 너무 빈약한 이유가 또 다른 이유일 거예요. 대학원 졸업하고 다른 친구들은 월급도 잘 받고, 잘 사는데 청소년 사역자는 항상 부사역자인 것 같고 아이들 취급받는 이유에서 청소년 사역에서 떠나는 것 같아요. 청소년 사역자들에 대한 대우가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심리학을 전공하셨는데… 코로나 블루라고도 합니다만, 마음에 특별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 가장 큰 적은 두려움이에요. 두려움이 우리를 작게 만들고 두려움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지요. 목회자님들에게 보다는 일반적으로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으신 분들에게 항상 드리는 말씀인데요. 뉴스 집중을 멈추세요. 현 상황에 맞게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서 적용해보시며 안 된다는 생각보다는 ‘나도 견딜 수 있어’라고 생각의 관점을 바꾸셔야 해요. 보통 일상생활 하듯 규칙적인 시간을 유지하시고 가족들과 함께 취미생활을 만드시는 것 등이 코로나 블루를 이기는 방법입니다. 물론 경건의 시간을 가지시면서 기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터뷰 질문을 통해 나누지 못했지만, 끝으로 하고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 드립니다.

= 목사님 사모님들에게 더 많은 기쁨을 주고 싶었는데 더 많이 못 드려서 아쉽지요. 우리 사모님들과 나누었던 패션쇼가 가장 행복하고 기뻤던 추억이 될 것 같아요. 현장에서 많은 고생을 하시는데 총회에 오시면 목사와 사모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기쁨으로 치유받고, 사역지로 가시기 위해 더 많은 기쁜 프로그램을 제공했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쉽네요.

그리고 이제는 어른이 되어서 한 가정의 엄마 아빠가 되었을 모든 PK들이 본인들의 어렸을 때를 생각해서 PK 모임에 와서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고, PK 그룹이 EM 사역과 달랐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EM 사역이라는 울타리 아래 성인을 위한 EM 사역, 청소년 사역을 위한 YM, 어린이를 위한 CM 사역 등이 있는데 이 구별이 없이 영어권의 모든 사역을 EM 사역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으세요.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도울 수 있거든요. 총회 청소년 사역과 어린이 사역은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어른들 총회를 위한 보조 프로그램입니다. 아이들 프로그램이 어느 일정한 그룹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고 아이들이 위로받고 도전받고 또 비전을 세우며 각자의 교회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시간이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목사님 사모님 그리고 모든 PK들에 감사합니다.

어떤 목회자는 자신의 자녀들이 총회에서 큰 은혜와 선한 영향을 받아 성장했다며 “김제이 목사 (총회사역) 은퇴할 때 우리가 자동차라도 사줘야 할 거다”라며 고마움을 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을 피력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김제이 목사가 없는 총회를 상상해보니 괜히 침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김 목사는 이제는 후진으로 물러서서 후원하지만, 교회의 건축이 끝나면 언젠가 PK 수양회, 사모 위로 모임도 별도로 섬겨보겠다고 하니 새로운 기대감이 생기기도 한다. 이제 총회 PK 사역은 은퇴하지만, 버지니아제일침례교회의 신선한 사역과 총회의 섬김은 계속될 것이기에 김제이 목사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본다.

/ 대담 및 정리 = 채공명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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