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단상 牧會斷想] 은퇴 후에 폭 익히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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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에 폭 익히는 사랑”
사랑보다 더 달콤한 것이 세상에 있을까? 사랑만큼 생명력을 품은 것이 또 있을까? 사랑에 비길만한 폭 익은 율법도 있을까? 사랑에 견줄만한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사랑 위에 둘 수 있는 지혜가 또 있을까? 사랑처럼 눈과 귀를 열고 닫는 마술을 부리는 것도 있을까? 사랑의 신비한 능력과 경이를 헤아리면 헤아릴수록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말씀에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나는 ‘얼마나 사랑의 능력과 기쁨을 누리고 있을까?’ 질문하며 고개를 떨군다.
은퇴 후 광야처럼 펼쳐진 널널한 시공간의 자유함 속에서 사랑을 잃어버린 원인이 보였다. 성직은 가족 사랑을 후 순위로 두어야 한다는 어리석음에 갇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이 겪은 소외감과 상처의 이야기를 듣고는 외로움에 떨었다. 이때 내 안에서 비웃는 것을 느꼈다. ‘성직이라는 탈을 쓰고 생존을 위한 열정, 명예를 위한 욕망을 채우려고 한 것 아니야?’ 하면서… 가족 사랑을 위해 게을렀던 것도 보이고, 사랑을 위해 소통할 줄 몰랐던 것도 보였다.
난 장유유서와 성직에서 오는 권위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렇다고 질서의 아름다운 전통까지 버린 것은 아니다. 인간의 평등함 가운데 최소한 내 일은 스스로 하기로 했다는 뜻이다. 난 장보기, 이부자리 정리, 방과 화장실 베스탑 청소, 설거지, 요리, 잔디 깎기 등의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했다.
마켓에서, 은행에서, 나를 구석기시대 사람을 쳐다보듯 하는 눈총을 느꼈다. 한국에서 보다 더. 얼어붙은 듯 멍하니 서서 빠르게 발전한 세상에 뒤쳐진 나를 보았다. 즐겁게 시작한 요리와 설거지도 나를 외롭고 서럽게 했다. “물을 너무 많이 흘려 싱크 케비넷이 썩어요, 식기 세척기에 그릇이 너무 포개지면 안 돼요, 가스레인지에 기름이 너무 많이 튀어요”라는 잔소리가 아내와, 딸과, 며느리의 입에서 나왔다.
마음이 우중충하고 우울했던 어느 날, 아들 집의 싱크대 앞에서 며느리의 잔소리에 갈비뼈 밑에서부터 가슴으로 치밀어 오른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갔다 내려와 입으로 터져 나오고 말았다.
“네가 해라.”
며느리가 놀라 자기 방으로 들어가 숨었다. 아차 싶었다. 미안하고 황당한 외로움을 느꼈다. 은퇴 전에는 내가 싱크대 앞에 서기만 해도 존경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행복해하던 이들이었는데…
열정적인 Air Supply의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의 노래가 Youtube에서 흘러나왔다. 그 음악에 맞춰 나비처럼 두 남녀가 투명한 얼음 위에서 하늘하늘한 몸짓으로 Ice Pair dancing을 하고 있었다. 아름다움에 감격하고 있을 때 “사랑은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질서에 따른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두 남녀가 빙판 위에서 연출하는 Dancing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열매가 맺히기까지 흘린 피눈물이 보였다. Air Supply가 말하는 듯했다. “이들이 아름다움을 연출하기 위하여 어떤 방법, 별의별 연습을 다 했는지 알아? 수많은 실패와 반복을 통해 속삭일 때를 알았고, 울어야 할 때도 알았고, 해답을 찾을 줄도 알았고, 거짓말해야 할 때도 알았고, 꿈꾸어야 할 때도 알았고, 당겨야 할 때도 알고, 진실을 이야기할 때도, 만져야 할 때도, 져 줘야 할 때도 알았어.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사랑을 싹틔워 신비하고 경이로운 능력이 나타나게 할 수는 없었어. 빛을 따르지 않고는…”
수돗물을 언제나 세게 트는 나, 가장 센 불로 계란 프라이와 요리를 하는 내가 보였다. 아직도 언제나 ‘빨리빨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였다. 꼼꼼하게 글씨를 쓰지만 “ㄹ”만큼은 흘려 써 버리는 나, 느긋하고 천천히, 꼼꼼히 질서를 따르는 것을 힘겨워하는 것도 보였다. 잔소리를 피해 혼자 요리하고 설거지할 때면 센 물과 센 불을 틀고 익숙한 습관에 따르며 즐기는 어린아이 같은 내가 보였다.
은퇴 후에야 나의 겉과 내면을 보고 또 보고, 상대의 속마음을 듣고 보고 만지고 또 듣고 보고 만지고, 상황을 보고 또 보고, 진리에 상황을 대입해 듣고 고치고, 습관이 될 때까지 거듭하고 또 하고, 부끄러운 것과 미안한 것을 눈 찔끔 감고 고백하면서 사랑을 익힌다.
며느리에게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나의 허점을 정직하게 지적해 준 것, 고맙다. 하지만 밴댕이 속처럼 좁은 마음에서 자란 내 모자람이 비수가 되어 입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그래도 나의 며느리가 되어 줘 고맙다.” 며느리가 화답했다. “아니에요. 진심으로 존경하는 분이 제 아버님이셔서 제가 감사하지요.” Air supply가 맑고 청명한 목소리로 심장에 용기를 솟게 하는 힘찬 드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은퇴 후 사랑을 폭 익히며 사랑이신 하나님을 듣고 보고 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