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 목사의 청년을 품은 교회이야기]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나는 지난 글(121호)에서 이렇게 고백했던 적이 있다. “지난 10년 동안 단기 선교를 통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사실이다. 매년 단기 선교에 필요한 계획과 준비를 하고 떠나지만, 모든 일정이 우리의 계획대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잘 배웠나 싶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조금 다르셨던 것 같다. 나를 포함한 11명의 온두라스 선교 대원은 8월 12일(주일) 새벽 3시에 빙햄톤을 떠나 뉴욕의 라과디아 공항으로 향했다. 뉴욕의 교통체증을 고려해서 조금 일찍 떠났고 우리는 오전 9시 36분 이륙 시간에 넉넉히 맞춰서 도착할 수 있었다. 몇 개의 짐을 부치고 탑승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기상 악화로 온두라스행 일정이 다 취소된 것이다. 다음 비행기 편은 화요일 밤 10시라는 황당한 소식에 정말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예정대로라면 온두라스에 월요일에 도착해서 금요일까지 사역을 마치고 토요일에 돌아오는 짧은 일정이기에 밤 비행기를 타고 수요일 아침에 도착하면 준비한 사역의 절반을 놓치는 셈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지 않은가? 캄보디아 선교의 경험을 되살리며 ‘감사의 조건을 찾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자!’라며 감사의 조건을 묵상하는 중에 정말 감사한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온두라스 선교를 위해서 해마다 함께 동역하고 있는 뉴욕의 한 교회가 우리 팀의 곤란한 상황을 듣고 교회 문을 열어주며 숙식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덕분에 우리 선교팀은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미흡한 선교 준비를 보강하며 쉴 수 있었다. 오히려 결속을 다지는 시간이 되어서 감사했다. 비록 조금 늦게 현지에 도착하겠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할 각오로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번 믿기 어려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계속되는 기상 악화 때문에 화요일 밤 비행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는데 가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미처 몰랐다.
11년째 온두라스를 매년 오가면서 선교의 현장은 우리 계획대로만 사역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이미 배워서 잘 알고 있었지만, 가는 것조차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는 처음 알았다. 계획해서 날짜를 정하고 선교팀을 모집하여 항공권을 단체로 사면 떠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이조차도 우리 계획대로만 되는 것이 아님을 배워야 했다. 아울러 그동안 해오던 가락(?)이 있어서 긴장감을 잃었던 내 마음 자세를 돌아보며 회개하는 계기도 되었다. 그날 오전의 큐티 본문은 바울이 로마로 가는 과정에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맞아 어려움을 겪는 대목이었고(행 27장)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셨다.
주님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물론 상황은 쉽지 않았다. 고객 관리를 맡은 항공사 직원과 오랜 전화 끝에 결국 뉴욕에서 약 3시간 30분 떨어져 있는 펜실베이니아의 해리스버그 공항에서 수요일 새벽 비행기로 떠나는 것이 차선책임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남은 자리가 10개밖에 없어서 나머지 1명은 다음날인 목요일에 오전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실망의 한숨보다는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이럴 때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으면 참 좋으련만, 하필이면 오래전 군대에서 봤던 표어가 떠올랐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성경 구절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쓸만한 말이다. 어차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단기 선교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방법을 모색해도 이것이 최선인데 어쩌랴… 그래서 나는 십자가를 홀로 지고 다음 날 외롭게 혼자 가는 대신 홀가분하게 나만의 시간을 즐기며 가기로 마음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를 제외한 선교팀 10명은 수요일 오후에 도착해서 사역을 시작했고 나는 다음 날 오후에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해마다 때가 되면 밟는 땅, 온두라스의 땅을 정말 오랜만에 감격스럽게 밟았던 것 같다. 집을 떠나 4일 만에 선교지에 도착한 셈이다. 짧은 기간 사역을 하고 돌아왔지만, 잊을 수 없는 선교 여행이다. 특별히 금요일 오전에 있었던 공립학교 방문은 더더욱 그렇다. 약 300~400여 명의 중고등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었는데 처음부터 얼마나 산만하고 집중을 못 하던지 나중에 너무 화가 나서 마이크를 내려놓고 그 학생들에게 최대한 가까이 가서 목청이 터져라 복음을 외쳤다. 4일이나 걸려서 생명의 소식 전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떠드는 녀석들 때문에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며 그 어느 때보다 복음을 간절하고 열정적으로 전했다. 그리고 초청의 시간을 맞아 많은 아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겠다며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급기야 전교생이 다 일어났다! 물론 분위기에 휩쓸려서 일어난 친구들도 적지 않으리라. 하지만, 억지로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처럼 친구들 따라 주님을 영접하겠다고 일어난 학생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기도하며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