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화과나무 아래서](50) “포장을 벗고 진짜가 되자”
 “포장을 벗고 진짜가 되자”](https://i0.wp.com/bpnews.us/wp-content/uploads/2020/08/%EA%B6%81%EC%9D%B8-%EB%AA%A9%EC%82%AC%EB%8B%98-web.png?resize=1200%2C640&ssl=1)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포장을 벗고 진짜가 되자
예쁜 포장지로 멋들어지게 포장된 내가 아닌, 그럴싸한 몇 마디 말로 소개되는 내가 아닌, 명함에 박혀 있는 직함이 내가 아닌 진정한 나를 발견하라. 그래야만 올바른 믿음의 반응이 나온다. 아내와 함께한 할인 마트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한 적이 있다. 구매 물품 중 버터가 있었다. 그래서 버터가 있을 법한 코너에서, 버터라고 큼직하게 쓰여 있는 것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런데 아내가 그건 버터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Better than Butter’라고 쓰여 있었다. ’Better than’은 아주 작게, ‘butter’는 엄청 크게. 대충 크게 쓰인 butter만 보고 버터인 줄 알고 장바구니에 넣은 것이다. 결국 ‘자주 시장을 안보니까 그렇지’라는 아내의 핀잔을 들으며 옆 코너로 갔다. 이번에는 버터라고 더 크게 써진 상품을 집었다. 그러나 아내의 핀잔을 또 들을까 봐 살짝 숨어서 자세히 읽어 보았다. ‘I can’t believe it’s not Butter(버터가 아니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 ‘butter’라고 엄청 크게 쓰여 있었지만, 믿을 수 없게도 이 녀석도 버터가 아니었다. 분명 뚜껑에는 버터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데 버터가 아닌 이상한 녀석들이 마트에 많이 있었다.
쇼핑에서 겪은 일이지만 나의 신앙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 믿음도 이렇지 않을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크게 쓰여 있지만, 자세히 보면, ‘나이론’ 혹은 ‘짝퉁’이라는 글자가 숨어 있는 그리스도인 말이다. 멋져 보이지만, 짝퉁인 나의 모습, 이제는 진짜로 살자. 예쁜 포장에 의지해서 팔리는 짝퉁 상품이 아니라, 진짜 같은 명품 짝퉁이 아니라 그냥 진짜가 되자. 예수 그리스도를 품은 진짜, 그리고 당당히 살자.
예일 대학 심리학과의 석좌 교수 스타인버그(Steinberg)가 쓴 ‘성공적 두뇌(successful intelligence)’는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에는 호랑이를 만난 두 친구 이야기가 나온다.
똑똑이와 똘똘이가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똑똑이는 학교에서 이름난 우등생이고 똘똘이는 동네에서 소문난 개구쟁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두 친구는 산속에서 호랑이를 만난다. 똑똑이가 척 보니까, 호랑이는 250미터 떨어져 있고, 달려오는 속도는 시속 50킬로미터 정도로 파악되었다. 정확한 계산을 통해 똑똑이는 “우린 17.88초 후면 죽는구나!”라고 결론지으며 마지막으로 똘똘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똘똘이는 태연스럽게 운동화 끈을 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본 우등생 똑똑이는 열등생 똘똘이에게 소리쳤다.
“멍청하긴, 네가 뛰어 봤자지, 호랑이보다 빨리 뛸 것 같아?”
그러자 똘똘이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야, 나는 너보다 빨리 뛰기만 하면 돼.”
참 지혜로워 보이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해답일까? 남보다 조금 잘 한다고, 만족하는 것이 좋은 선택일까? 진짜 믿음일까? 아니다. 남보다 조금 편한 길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 몫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과 당당히 맞서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제자인 우리의 선택이다. 호랑이를 만나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표현처럼, 힘들어도 호랑이와 같은 세상을 당당히 맞서는 것 이것이 진짜 선택이다.
좁은 길을 선택하라. 마태복음 7장 13-14절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로 걸어가라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구절이지만 원어를 보면, 한글 성경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좁은 문은 한 번만 들어가면 되지만, 좁은 길은 지속적으로 걸어야 한다는 의미가 원어에는 있다. 즉 구원에 이르는 좁은 문은 한번 통과하면 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회복과 축복을 경험하는 삶은 좁은 길을 계속 걸어갈 때 주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시작이다. 당신이 걷는 좁은 길은 실패의 길이 아니다. 절망의 길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내 믿음을 보이는 길이며, 주님이 인도하시는 빛나는 길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길이다. 만약 세상의 넓은 길이 멋져 보인다면, 다시 마음먹고 다시 선택하라. 그리고 이전에 걸어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주님과 다시 걸어라. 이 길을 걷기 전에는 이 길이 얼마나 축복의 길인지 알 수 없다. 진리는 복잡한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단지 진리 되시는 주님과 함께 길을 걷고자 하는 노력만 필요할 뿐이다. 그때 우리는 빛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