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牧會斷想] 나의 성탄절 이야기
지준호 목사(헌츠빌 은퇴, 자유기고가)
나의 성탄절 이야기
내 기억의 첫 성탄절 새벽은 천사들이 찾아온 듯하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양을 부르며…… 몇 년이 지난 후 난 그 천사들의 대열에 자랑스럽게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하얀 눈으로 덮인 산과 들에서 내는 은은하고 성스러운 빛으로 드러난 길을 따라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성도들의 집을 찾아다녔다. 문 밖에서 서로 눈 맞춤으로 하는 지휘에 따라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찬송을 부르며….
이 노래에 참 반가운 성도는 ‘메리 크리스마스’로 화답하며 문을 열고 나와 정겨운 인사를 나누곤 먹거리 예물을 건넨다. 이를 받아 자루에 담아 어깨에 멘 우리는 또 다른 성도의 집 문전에서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서 울린다”를 부르고 예수 탄생의 기쁨을 나눈다. 이러기를 얼마나 했는지, 임무를 마친 일행은 교회로 돌아와 받은 선물들을 풀어 먹고 마시며 예수님 오심의 기쁨을 나누곤 하였다.
이런 아름다운 성탄절을 나이 들면서 생긴 교만과 욕심이 세상 풍조와 어우러지며 분주하고 혼돈스럽게 변질시켜 버렸다. 그 결과로 난 밤새 먹고 마시며 노는 친구들의 모임을 그리워하며 새벽 송을 마지못해 따라다니는 외로운 철새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 풍습을 아련한 추억에 묻어버리고 화려한 추리를 장식하고 어린이들의 연극과 춤과 노래를 즐긴다. 그리고 카드와 선물을 주고받으며 체면치레하기에 바쁜 연말의 한 절기로 성탄절을 보내곤 했다.
이러던 난 어느 해인가 성탄절을 앞두고 다양한 탄생 이야기들로부터 질문이 내면으로부터 떠 오른다. 왜 예수님은 냄새나는 말 구유에서 태어나셔야만 했을까? 천군 천사와 함께 화려하고 위엄스럽게 구름 타고 오시지 않고…. 왜 예루살렘 성전의 거룩한 성직자가 아닌 오물 냄새 풍기는 양치기 목동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셨을까? 왜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을 별이 인도하여 산 넘고 물 건너 아기 예수께 와 절하고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게 했을까?
질문에 대한 이해가 말씀이 되어 어둠에 있는 나를 빛으로 인도해 내는 듯하다. 사랑은 섬김이고 섬김을 위해 낮아져야 한다고…. 낮아진 마음으로 상대의 인격을 존중할 때 영과 영이 소통된다고…. 그리고 실력이 크면 클수록, 능력이 있으면 있을수록,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낮아지는 그곳에 존경과 함께 권위가 주어진다고. 여기서 나온 능력으로 하늘에는 영광을 돌리고 땅에는 평화를 임하게 한다고….
그러나 백성을 사랑하며 섬겨야 할 직분을 가진 사람들은 이 진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높은 신분의 권력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챙기고는 백성들을 자기 원하는 대로 다스리고 있었다. 그리고 높고 힘 있는 자리에 오르기 위하여 남을 깎아내리고 자기를 높이며, 거짓과 불의로 사랑과 신뢰가 모두 깨져버린 세상이 되게 하였다. 그 결과 아기를 낳는 여인에게 방하나 빌려 주지 못하는 각박한 인심으로 되어 버린 세상을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듯하다.
사랑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백성들의 영적인 눈을 어둡게 하여 먹잇감처럼 여기는 이리 같은 이들로부터, 사랑하는 백성들을 지키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어두운 밤 양 떼를 이리 떼들로부터 지키려 잠자지 못하는 목자들에게, 예수의 오심을 알리시는 말씀은 내 영의 눈을 뜨게 하는 듯하다. 그리고 진리를 사모하는 동방박사들이 별에게 인도되어 산 넘고 물 건너 진리이신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장면에 마음이 시원해진다. 진리에 관한 목마름도 진실성과 사랑도 없이 높은 감투만 쓴 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캄캄한 밤중에….
이렇게 낮아져 이 땅에 오신 진리이시며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우리 안에 오셔서 목자가 되어 주시는 섬김을 받은 난 성탄절이 새로워진다.
성스러움과 아름다운 은혜 가운데서 만난 성탄절이 욕심과 교만에 따라 변하는 나를 내 안에 오셔서 사랑이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섬김이 무엇인지, 세상의 모습이 어떤지를 보게 하시려 질문하게 하시고 답을 주시는 섬김에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내 안에서 목자가 되어 주시는 분께 처한 환경을 드러내고 지혜를 구하며 동방박사들을 인도했던 별을 바라보는 성탄절이 더욱 귀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