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희 사모의 가정상담칼럼] 압박감
상담소를 찾아와서 털어놓는 고민 중에 하나로, 너무 많은 일에 압도되어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을 나눌 때가 있다. 집에 손님이 온다거나 학기말 고사가 다가올 때, 직장에서 쫓기는 프로젝트가 있을 때, 마감이 다가올 때, 할 일이 겹겹이 쌓이고 밀릴 때, 이 모든 해야 할 일에 깔려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든다. 걱정해야 할 일이 많고, 할 일이 끊이질 않는 듯한 상황을 보면서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도록 압도된다(overwhelmed). 예를 들어 손님이 집에 온다면 음식을 할 계획을 세워야 하고, 청소를 해야 하고, 계획대로 장을 봐야 한다. 장도 미국에서는 한 군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국소형마켓, 대형마켓, 한국마켓 등 세 군데를 돌아야 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실제로 몇 가지 요리를 해야 하고 손님이 오기 전 부엌을 말끔히 정리해야 한다. 이렇게 손님 맞을 준비를 하면서도 당장 먹을 끼니를 준비해야 하고 평소에 해오던 일들을 해야 한다. 아이들을 씻기고 숙제를 봐줘야 한다든지, 여기저기 레슨에 데리고 다녀야 한다. 이 모든 일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이미 압도되어 온갖 짜증을 다 부리고 집안 분위기는 살얼음판이 된다.
대학생들이 상담을 하러 올 때, 듣는 과목들이 줄줄이 F를 맞을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경우도 비슷하다. 실제로 학교에서 경고를 여러 번 받고 오는 학생도 있고, 아예 다음 학기 등록이 금지된 상태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목회자들이 몸이 열개라도 소화해 내기 힘든 일정을 감당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매일 새벽, 철야, 심방, 수요일, 주일 등 계속되는 설교의 압박에 시달린다. 거기에 가족, 교회, 개인적 성장과 관련되어 해야 할 일들이 줄을 잇는다. 교인들의 인생사에 연관된 일들이 목회자의 일이 된다. 팽팽한 고무줄처럼 자신을 늘릴 데로 늘려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감당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 고무줄이 끊어질 것 같은 위기감에 봉착한다. 이미 끊어진 경우, 모든 일을 한꺼번에 놓아버리는 수도 있다. 몸이 더 이상 일하기를 거부하든지, 정신적으로 공황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실제로는 일이 극단적으로 많고 힘들어서 문제가 되는 일은 드물다. 이 일들을 바라보며 드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훨씬 더 큰 문제가 된다.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멈추는 이유는 실제로 일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일이 감당이 안 되게 많아 보여서이다.
그렇다면 이 압박감과 부담감을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다룰 수 있을까? 성격장애를 대상으로 하는 DBT(Dialectical Behavioral Therapy)에서는 성격장애가 이 심적 부담감과 압박감에 특히나 취약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내가 보는 것들을 더 크게, 더 극단적으로, 더 예민하게 해석하고 느끼는 특성 때문에 몇 가지 일이나 걱정들이 겹치면, 이미 마음속의 하늘이 무너지는 중이다. 세상의 종말을 경험한다. 그 감정에 너무나 압도되어 깔려버린다. 꼼짝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압박감과 부담감을 다루는 방법 중의 하나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훈련을 한다. 참 간단한 일 같지만, 우리는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느라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밥을 먹을 때는 밥만 먹는 거다. 일을 하면서 밥을 먹든지, 애를 보면서 또는 TV를 보면서 밥을 먹으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반찬이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 못 한다. 물론 식사를 즐길 수도 없다. 한꺼번에 몇 가지 일을 하면 효율적일 것 같지만 모든 일의 효율성이 동시에 떨어진다. 그룹상담에서 걸레를 주고 벽을 문지르도록 시키기도 한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벽만 문지르도록 시키는 것이다. 마음을 집중하는 훈련이다. 한 번에 한 가지씩 하는 훈련이다.
때로는 걱정이 너무 많아 걱정에 압도당한다. 걱정하느라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아예 작정하고 걱정하는 시간을 하루에 30분 정도씩 잡도록 한다. 그 시간에는 집중적으로 걱정만 하는 것이다.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는 경우, 잠들기 전 걱정하는 모든 일을 종이에 쓰도록 한다. 내일 정해진 시간에 걱정을 몰아서 하기로 하고 잠잘 때는 잠만 자자는 것이다.
‘한 번에 한 가지씩, One at a time’라는 마음가짐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효과적으로 빨리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 가지는 지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 집안 청소는 너무 부담스러워 손을 못 대지만, 내 책상 한 군데를 치우는 일은 가능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섯 과목의 숙제를 한꺼번에 다하려면 포기하고 싶지만, 한 가지 숙제는 만만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가지씩만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가 많은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많은 일을 한꺼번에 몽땅 다 해내려는 욕심 때문인 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 6:34)’고 하신다. 내일이 내일을 걱정하도록 두자. 오늘 분량의 괴로움만 지자. 한 번에 한 가지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