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사모의 ‘교회 장애교육’(30) 미국도 시험지옥! 

홍경아 사모(미주)
아리조나한인교회, 현 공립초등학교 특수교사

미국도 시험지옥!    

이제 학년말이다. 치열했던 1년간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 내가 사는 애리조나는 7월에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어 5월 중순에 마무리하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은 바로 병장 말년 시기와 같은 지루하고도 약간은 흐트러지는 시기이다. 4월 말까지 학생들은 주 단위로 실시하는 학력 평가를 치렀고, 지금은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읽기, 쓰기, 수학 시험을 치르는 중이다. 모두 컴퓨터로 시험을 치르고 있다. 미국 학생들은 자유롭게 토론 수업을 하며, 이것저것 창의로운 방식으로 학습할 줄 알았는데, 막상 현장에 와서 보니, 한국 학생들보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보다도 더욱 주입식으로 그리고 시험 위주로 공부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내가 맡은 아이들, 그러니까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학력 평가나 교육청 단위의 시험을 볼 때는 교실에서 동급생들과 시험을 보지 않고, 특수반에 와서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시험을 본다. 이들에게는 시험 제한 시간이 없고, 누워서 시험을 보던, 서서 보던 본인들이 원하는 자세로 시험을 보게 해 준다. 특히 컴퓨터에 로그인하고, 평가 사이트에 접속해서 본인의 개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으므로 특수 교사인 나와 보조 교사가 도움을 준다. 또한 시험 불안증으로 울거나 공포에 휩싸여 있는 학생들에게는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살살 달래고 구슬려 시험에 임할 수 있게 하는 역할도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이렇게 쉬운 시험을 두고 벌벌 떨거나 울거나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 가는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 그렇게 시험이 보기 싫으면 적당히 한 번호로 찍고, 남은 시간 낙서를 하거나 잠을 자거나 편안하게 쉴 것이지 왜 저렇게 난리인가 하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했었다. 그래서 이런 시험들이 정말 괴로웠다. 작년에는 시험 도중에 불안증으로 책상 밑에 숨고, 물건을 집어 던진 학생이 있어서 같이 시험을 보던 학생들이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다른 교실로 이동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4년 차 특수교사인 나는 비로소 아이들의 심정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고, 내 생각과 입장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을 배려하기 시작했다. 나는 새로운 상황, 특히 긴장되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엄청나게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위로와 편안함을 주는 말들을 시험 시작 전에 이야기해 주었다. 

“얘들아, 이 시험은 시간제한이 없단다. 그러니 충분히 생각하고 여러 번 지문과 문제를 읽고 또 읽으렴.” 

“갑자기 모르는 문제를 만나거나 당황하게 되면, 5분 정도 정신적인 휴식을 취하렴. 스트레치를 해도 좋고, 엎드려 잠을 청해도 좋고, 잠시 컴퓨터를 닫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활동들을 하렴. 그래도 괜찮단다.” 

“이 시험 결과는 진급이나 학교생활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너희들이 안과에 가서 시력 체크를 하는 것처럼, 너희들의 실력을 점검하는 것이 목적이란다 그러니 너무 긴장하지 말아라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시험을 무사히 마친 학생들에게는 스티커 5개를 붙여줄게.” 

이러한 말들을 해 주는 것과 안 해 주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차이를 가져왔다. 그동안 컴퓨터로 보는 각종 시험을 거부하고, 컴퓨터 앞에서 30분 이상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하던 메리가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시험에 임했다. 시험을 보다가 눈물을 글썽이며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인 마크에게 다가가 등을 쓰다듬어 주며 고장 난 라디오처럼 앞서 해 준 이야기를 반복해 주었더니 금세 눈물을 그치고 시험에 집중하였다. 존은 너무 긴장하길래 노트북을 닫고 교실 뒤쪽으로 함께 가서 스트레칭을 5분간 하였더니, 마치 조금 전의 행동이 꾀병이 아닌가 할 정도로 금세 회복이 되어 다시 노트북 앞으로 향했다. 

새삼 다시 깨닫는다. 마음이 먼저라는 것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이성과 지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특수교육을 받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아니,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이성과 지성 이전에 마음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는 “Fixation”, 우리말로는 “집착”이라고 번역이 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문제를 풀다가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그 한 문제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다음 문제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 문제에 매달려, 그 문제만을 쏘아 보거나, 울음을 터뜨리거나 마치 큰 구덩이에 빠진 사람처럼, 그 문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때 특수교사인 내가 아이들에게 다가가, “이 문제를 그냥 두고 다음 문제부터 풀고, 나중에 다시 이 문제로 되돌아오자.”라고 말한다든지, 아니면 “도무지 답을 모르겠다면 아무 번호나 선택하려무나. 그래도 하늘은 무너지지 않으니 말이다.”라고 해결책 아닌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이렇게 그 문제로부터 끌어내 주지 못하면 나머지 문제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그곳에 머물며 울분을 토해낼 뿐이다. 

인생의 시험문제를 만났을 때, 학생들처럼, 나도 한 가지 문제에 걸려 집착하며 헤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일상의 문제에서 눈을 들어 인생의 문제 전체를 들여다보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해 준다는 것을 깨닫는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