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牧會斷想] 고요한 토요일 오후에
지준호 목사(헌츠빌 은퇴, 자유기고가)
고요한 토요일 오후에
토요일 오후 평상과 다르게 고요하다. 여섯 식구 모두가 집안에 있는데…. 뒤 뜰 파라솔 아래서 인터넷 뉴스를 보다 호기심이 인다. 무엇을 하고들 있을까? 스톱을 누르고 살금살금 둘러보았다. 손녀는 리빙룸 카펫에, 손자는 침대에 엎드려 아이패드 좌판을 정신없이 두드리고, 딸은 자기 방 모니터 앞에서 아내는 소파에 앉아 드라마에, 대형 컴퓨터 앞에선 사위가 게임 삼매경에 빠져들 있다.
이것도 모자라 쇼핑할 때는 인터넷 매장을 이용하고 나들이를 할 때면 길까지 안내를 받는다. 이러다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주머니에 넣고는 몇 분 지나지 않아 대화 중에도 슬쩍슬쩍 꺼내 열어 보기 일쑤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와 정보의 창고라 믿어서일까? 흥미에 노예 된 탓일까? 궁금증이 그렇게 하게 하는 것일까? 일자리까지 잠식하는 인터넷이 인간들 삶 중심에 서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디바이스가 우리를 즐겁고 유익되게만 하면 좋으련만 손주들이 즐기는 아이패드를 불안한 마음으로 훔쳐보게 한다. 유혹하고 빼고 뒤틀고 거짓을 섞어 우리들 마음을 빼앗으려는 영상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리는… 깨어있지 못하여 겪은 아픈 역사적 사실이 떠 오른다.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으로 민주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가 탄생이 된다. 많은 지식인과 순수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에 열광하며 따랐다. 그러나 그 결과로 전쟁이 일어나고 수많은 인명과 재산이 희생되었다. 이러고 인간의 욕구를 무시한 공산주의는 독재자들에게 남용되며 순수한 지식인들은 생명과 삶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렸다. 아름답게 보였던 이상은 악의 축이 되어 버리고 무지한 백성들은 억울함과 가난의 고통 속에 함몰되어 버리고… 이러는 동안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욕망을 마음껏 사용하며 놀라운 발전을 이루지만, 빈부의 격차를 벌이며 아름답고 정겨운 문화를 빼앗으며 외롭고 고독한 인간의 삶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갈라진 보수와 진보 그리고 각가지 이익 집단들은 너도 나도 유튜버가 되어 수많은 동영상을 생산하여 퍼트리며 세상을 더욱 혼돈스럽게 한다. “구독 좋아요”를 누르라 구걸까지 하면서…. 이때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에 따라 한편으로 기울어진 사람들은 반대편을 증오하며 자기 편의 세력 확장을 위해 거짓된 정보를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퍼 나르기 일쑤다.
깨어야 할 때임이 새로워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한다. 난 얼마나 정직한 영혼인지, 내 안에 계시는 분의 음성을 듣고는 있는지, 인간의 본성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시대의 흐름을 바르게 보고 있는지, 이런 가운데 국가와 개인의 관계, 국가와 국가의 관계, 나와 이웃과 자연의 관계들을 복되게 만드는 지혜로움이 있는지, 한편에 기울어 편견 된 정보만 듣고 미움에 매여 있지는 않은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은 사랑에서 나온 것인지, 무지와 교만과 자존심과 이기심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근신에서 출발한 생각들을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함께 정직하고 논리에 맞게 나누고 싶다. 교회에서도 물론…… 이러는 가운데 깨임이 커지고, 다름을 이해하며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들게 되는 것이 아닐까? 민주주의를 성숙시킬 능력은 커지는 것이고…. 이러며 진리와 사랑 안에서 창의력이 더 활발하게 발휘되는 것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평케 하고 다른 이념들을 인간들의 행복을 위해 사용하게 하면서….
깨우침이 커지는 가정은 복된 가정이고, 교회는 신앙의 열매를 아름답게 맺게 하는 옥토가 될 텐데… 그 열매는 하나님과 함께 교회의 권위를 커지게 할 것이고…. 혼돈된 사회일수록 고요한 가운데 가슴속에 계시는 진리와 사랑의 음성을 듣고 만지심과 치료함을 받을 때임이 새롭다. 그리고 나의 실체를 먼저 보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을 듣고 깨달음을 나부터 먼저 하라시는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