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牧會斷想] 맑고 사랑스런 영혼이 진리의 짝을 만나야…
지준호 목사(헌츠빌 은퇴, 자유기고가)
맑고 사랑스런 영혼이 진리의 짝을 만나야…
학창 시절 역사 시험을 치를 때였다. 시험 범위 안에 있는 사건들의 내용과 지명 연도 날짜까지 밤새워 암기하여 시험지에 적었다. A+가 될 것이라 기대하면서…. 한 주 후 교수는 한 명 한 명 이름을 호명하며 채점한 시험지를 되돌려 준다. 시험지를 받아든 난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띠-이-잉’하다. 눈을 감고 잠시 숨을 고른 후 빨간 글씨로 쓰인 점수를 다시 보았다. 헛보았을 것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눈을 비비고 보고 또 보아도 글자는 여전히 F다.
교수가 무슨 강의를 하는지 귀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도 없다. 시간 내내 오만 가지 상상을 하며 소설을 썼다 지웠다 한다. 수업이 끝나자 사무실로 돌아가는 교수를 따라간 난 시험지를 내놓으며 혹시 착오가 있는 것 아니냐? 물었다. 흥분됨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교수는 지렁이 보는 표정을 하곤 왜 베껴 썼냐? 반문을 한다. 난 베껴 쓰지 않고 밤새도록 외워 썼다 항변을 했다. 교수는 의아한 눈초리로 왜 밤새워 암기를 했느냐? 며칠 지나면 다 잊어버릴 것을 …. 한다. 난 암기하지 않고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써야 하느냐? 따졌다.
교수는 한숨을 푹 쉬고 설명을 한다. “모든 사건 속에는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인 진리가 숨겨져 있다. 큰 사건이든 작은 사건이든 개인의 일이건 단체의 일이건…. 그 안에 숨겨진 진리를 발견하면 할수록 지혜스러워지고 영혼이 자유로워지는데… 넌 성경의 수많은 사건들을 사실이라고만 그저 믿기만 하느냐? 사건들 안에 감춰 있는 진리를 읽어 낼 줄은 모르면서…. 그래서 지혜로워져야 할 신앙인들이 거짓으로 선동하는 말에 속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치는데…. 아픈 마음 하나 없이 암기만 했느냐? 나쁜 놈들이라는 미움을 품고서…. 숨겨진 사실 관계와 진리를 바르게 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려고 역사 공부를 하는데…. 넌 점수 잘 받는 것에만 관심을 두느냐?”
난 부끄러움을 느끼며 진리에 눈 뜨는 기쁨을 맛보았다. 현재는 주어진 환경에 하나님의 뜻과 진리 그리고 인간의 반응이 어우러진 결과임이 이해되면서 이후에 난 역사의 사건들과 남들이 한 일들 속에 진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평가하는데 익숙해졌다. 그리고 세상과 남들을 비평하며 탄생되는 감정에 노예된 채 열심히 살았다. 나의 삶 가운데 진리는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는 모르고….
이러며 돈에 팔려 목회지를 옮길 때는 서러웠고, 친구들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하여 기죽어 있는 자녀들을 볼 땐 원망스러운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얄팍한 계산에서 나온 사람들의 처세를 보면 지렁이 보듯 했고, 자존심과 자신의 유익을 위해 교회를 이렇게 저렇게 하려는 이들을 만날 땐 미움을 감추고 태연한 척 처신을 했다.
예배는 빛으로 나가 자신을 보는 일이고, 잘못을 보고 깨닫고 돌아서는 일이고, 감사하고 위대하신 일을 찾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고, 깨달은 진리와 양심을 통하여 들려주는 음성에 순종하는 일이라 말은 하면서 ….
이러던 난 욕심과 허세와 섣부른 지식으로 잡초 같은 단어들을 엮어 문장을 만들고 있는 나의 실체를 본다. 써놓은 글 속에서 군더더기 단어 하나하나를 속아내면서…. 이러곤 만족하여 단잠을 자고 일어나 수정한 글을 다시 보니 잡초의 씨앗들이 또 새싹을 틔우고 무성하게 자라나 있다. 이들을 다시 뽑아 버리고 그 자리에 적절한 단어를 찾아 넣으며 이젠 가난한 어휘력과 어처구니없는 감정에 메인 내가 보인다.
나의 실체를 보면서 맑고 순수한 어린이가 되는 것이 신앙의 기초임이 새롭다. 그리고 찾은 진리를 겸손한 사랑의 마음으로 삶에 적용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예배가 되는데… 그리고 삶이 쉬워지는 신앙의 열매를 맺는데… 난 순수하기만 하고 진리를 몰라 어리석었던 적이 많았다. 그리고 진리는 알지만 사랑 아닌 미움과 편견에 노예 되어 허우적대기도 했다. 맑고 사랑스런 영혼이 진리의 짝을 만나야 삶이 예배가 되어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