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희 사모의 가정상담칼럼] 문제를 드러내는 자기표현
심연희 사모(RTP 지구촌 교회,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NOBTS 겸임교수, 미주)
문제를 드러내는 자기표현
학교폭력의 희생자로서 학교 일진의 분풀이 대상으로 이유도 모르고 내내 맞으며 중고등학생 시절을 지냈던 한 개그맨의 간증을 접하게 되었다. 이렇게 맞다가는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과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외로움, 그 폭력의 악순환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무기력감을 토로할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는지 모른다. 피해자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과 더불어 같은 나이의 어린 가해자들의 무지와 악함, 그 폭력을 대물림하고 잘못 지도했던 윗세대들, 눈에 뻔히 보이는 폭력을 방관했던 친구들과 어른들의 비겁함에 씁쓸하기만 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말은 그의 부모님들이 했다는 말이다. 아버지는 맞을 만하니까 맞는 거라 하셨고, 어머니는 무조건 용서하라 하셨다. 크리스천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매번 멍과 피로 얼룩진 몸으로 집에 돌아올 때도 못난 아들을 낳은 당신 탓이라는 자책감으로 일관하셨다고 한다. 언뜻 보면 겸손하고 은혜가 많은 크리스천의 자세인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문제를 들여다보지도 해결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비겁과 나약함이 가려져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어른들 속에서 아이는 학대와 폭력을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자라나게 된 것이다.
문제가 일어날 때,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 우리는 갈등을 외면하거나 상황을 피해 숨는다. 부딪치는 것이 싫어 그냥 거리를 두거나 꾹꾹 눌러 참는다. 사모이자 상담자인 필자도 상대에게 불편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교회에서도 우리 아이가 괴롭힘을 당해도 말 한마디 못한다. 듣기 싫은 소리나 무례한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에게도 말을 못 하고 울분을 꿀꺽꿀꺽 삼킨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인내와 온유와 사랑의 훈련인지, 나의 낮은 자존감과 두려움 때문인지는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문제 사이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골병이 들어가는 누군가가 있다 해도 우리는 문제를 피하는 방관자로 머물러야 할까?
성경은 분명 형제에 대한 용서를 강조한다.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 17:4)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바로 그전에 하신 말씀이 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눅 17:3)라고 하신다. 형제가 죄를 범할 대 경고해야 할 책임, 잘못을 바로잡아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잘못을 경고할 때 상대가 뉘우치고 회개하거든 거듭, 계속해서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용서와 사랑의 주님이셨지만 우리의 죄를 간과하신 적이 없다.
함부로 말하고 판단하고 비난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분명 누군가의 문제를 드러내서 경고할 때는 칭찬할 때보다 백배 더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실제로 상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오해였을 가능성도 있다. 정죄가 아닌 사랑의 마음이 없을 때라면 안 하니만 못한 말들을 뱉어 낼 수도 있다. 우리가 상한 마음을 표현하는 이유는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영역에 침입한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러나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반복되는 문제를 간과하고 덮는 실수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차마 못한 말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자도록 억울해한다. 뒤늦게 아차 싶어 후회한다. 잘못한 상대를 계속 증오하고 미워한다.
‘어떻게 말할까’라는 저서에서 로버트 볼튼은 모든 생명체에게는 외부의 침략과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영역과 생명을 지켜야 하는 숙제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문제를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짐승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이 대화를 위한 자기표현이 효과적이려면 3가지 요소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상대의 잘못된 행동을 비난하지 않고 묘사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기분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상대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을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난을 담지 않은 행위를 말하고 그 행위 때문에 나의 기분이 어땠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당신 목소리가 높아지니까 내가 불안하고 무섭다’로 말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내 편을 안 들어주는 것 같아 섭섭하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지배하지 않되 자신의 의사는 확고하게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인 자기표현의 특징이다.
우리에게는 감정적, 육체적으로 우리에게 해를 가하거나 상처를 준 누군가를 용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너무나 어렵지만 분명 용서는 나 자신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거쳐 가게 하신 정화의 과정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용서는 값싼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그전에 형제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다. 문제를 드러내고 깨끗하게 하는 불편하고 고된 과정도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상대가 나를 미워할까, 나중에 더 맞을까, 회사에서 해고될까, 교회가 갈라질까 두려워서 입을 닫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해서 말도 하지 않고, 용서하지도 않으며 쓴 뿌리를 마음 깊이 심고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는 대화도,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과정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잘 말하는 것, 잘 야단하는 것도 우리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