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희 사모의 가정상담칼럼] 독이 되는 관계 떠나보내기
심연희 사모(RTP 지구촌 교회,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NOBTS 겸임교수, 미주)
독이 되는 관계 떠나보내기
어느새 한 해를 마무리한다. 돌아보면 2020년은 정말 특이했던 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의 존재가 우리 모두의 삶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두려움이 일상을 지배했고 우리는 고립과 거리에 적응해야 했다. 사회구조, 경제구조,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의 구조까지 흔들리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힘들었던 한 해도 이제 저물어간다. 이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무엇을 흘려보내고 떠나보낼지 생각하게 된다.
한해 한해가 흘러서 지나가듯 우리의 삶에도 마무리되고 흘러가는 것들이 있다. 제발 코비드 사태가 종결되길 제일 먼저 기도하게 된다. 원치 않는 떠나보냄도 있다. 한 살이라도 젊었던 날들이 소리 없이 흘러가고, 사랑했던 가족들, 친구들에게 안녕을 고하는 가슴 아픈 일도 있다. 교회 가족도 참 이상하게 연말이 되면 변동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참에 섬기던 교회를 떠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때를 계기로 사역지를 옮기는 교역자도 있다. 고통이었던 경험들을 떠나보내고 싶기도 하고, 떠나보냄 자체가 고통이 되기도 한다.
마무리의 계절인 연말에 이제 그만 떠나보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어두운 기억일 수도 있고 후회나 분노일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또 떠나보내고 싶은 것들 중 하나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힘든 관계이기도 하다. 어떤 공동체에서든 종종 갈등과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을 만난다. 별일 없는 것이 너무 심심한 사람이다. 안 좋은 이야기에 쫑긋 귀를 세우고,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험담을 하는 것이 신나는 사람이다. 입을 열면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말이 먼저 튀어나오는 사람이다. 계속해서 화가 나 있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관계를 세우기보다는 파괴하는 것에 익숙한 경우다.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쪼개는 것에 익숙한 경우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안 좋은 일들이 모두 남의 탓이라고 빌미를 찾아내는 데에 능숙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의 주위에 있는 많은 이들은 항상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무엇을 해도 탈이 되고 문제가 되는 관계에서 늘 잘못한 사람이 되어 있다. 돕고 잘해주려고 애쓰다가 진이 다 빠진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조직에서 이런 한 사람이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상담은 이런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직업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교회는 이런 이들을 위한 곳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나는 이런 이들을 보듬고 모범을 보이라고 보내진 선교사가 아닌가 자문할 수 있다. 물론이다. 우리 모두는 화평케 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상담소나 교회는 매사 부정적이고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는 곳이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분명 그들의 행동에도 이유가 있고 아픔이 있다. 그러나 현재 마음이 바위처럼 굳어져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따듯함들을 밀쳐내거나 이용한다. 스스로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애쓰려는 결심이 서지 않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움직일 수 없다. 상담소를 찾는 사람들이 나아질 수 있는 확률은 그 사람이 비로소 변화의 준비가 되어있느냐에 달려있다. 상담하며 주위 사람들의 부당함에 대해 하소연을 하다가도 스스로가 변화해야 하는 시점에서는 뒷걸음질 치는 많은 경우,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고통스런 관계 떠나기’의 저자, 게리 토마스는 독이 되는 관계들을 정의하며 공동체를 허무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기중심성과 적의에 가득 차서 서로를 등 돌리게 하고 관계를 죽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떠나보내기도 하시고 스스로 그들을 떠나기도 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소개한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많은 사람이 떠나기도 했고(요 6:66), 헤롯이 공격할 때 자신을 정당화하여 언쟁하지도 않으시며 침묵하셨다(눅 23:9). 돼지 떼가 몰살되자 사람들은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간청했고(마 8:3), 재충전을 위해 기도하러 사람들을 떠나기도 하셨다(눅 5:15-16).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까지는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들에게서 여러 번 벗어나셨다(요 8:59, 10:39, 11:53-54). 예수님은 사람들의 기립박수나 야유와 모욕에 흔들리지 않으셨다.
독이 되는 힘든 관계를 떠나보내는 것이 마치 포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관계 안에서 나의 실패로 느껴지기도 한다. 충분히 인내하지 못한 건 아닌가, 내가 더 잘했으면 나아지지 않았을까 씁쓸하고 후회도 된다. 그러나 때로는 놓을 때 힘든 관계에 비로소 변화가 생기기도 하고, 놓을 때 집중해야 할 좋은 관계들이 보이기도 한다. 떠나보내는 것이 완전히 관계를 끊는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쏟는 에너지를 줄인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만족시키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그만하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냥 두기로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마 15:13-14). 독성의 영향력을 거부하는 것이다. 현재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님의 때에 그 사람의 내면에서부터 진정한 변화가 있길 기도하며 축복하는 것뿐일 때도 있다. 독이 되는 관계를 잘 분별하는 것도 좋은 관계를 잘 지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떠나보냄의 때를 결정하고 에너지와 마음을 긍정적인 관계에 집중하는 것도 지혜이다. 마음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 놓음이 상대와 나 자신을 모두 성숙하게 하는 배움으로 자리하길, 이후에라도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길 기도함이 최선일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