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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회 목사의 삶, 안목, 리더십]

열등감

[정태회 목사의 삶, 안목, 리더십] </br></br> 열등감

 

열등감을 완전히 극복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아니 열등감을 극복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리더의 내면세계는 파괴되고 말 것이다. 또 파괴된 내면세계를 갖은 리더가 조직을 잘 리드할리 만무하다.

지도자로서 사울이 가졌던 외적 자질은 탁월했다(삼상 9:2). 그는 유력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그 집안이 얼마나 유력했길래 성경은 사울의 5대 조까지 일일이 이름을 나열하고 있다. 사울 자신의 외모 또한 얼마나 준수했던지 성경은 그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그러나 문제는 그의 초라한 내면세계였다. 그의 속사람은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에 왕국이 건설될 무렵 사울과 사무엘의 관계는 돈독하였다. 그러나 사울이 사무엘의 명령을 두 번이나 불순종했을 때 사무엘은 사울에 대한 지지를 완전히 철회하였을 뿐 아니라 다윗에게 기름 부어 정계개편을 도모하였다(삼상 13, 15, 16장). 설상가상으로 백성 가운데 다윗의 인기가 충천하여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21:11)라는 노래조차 생겨났을 때 일인자로서 사울의 내면세계는 허물어지고 말았다.

옛날 사울이 가졌던 문제는 오늘날에도 많은 리더가 공유하는 문제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지지할 때 리더는 자신감을 얻는다. 그러나 대중이 자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때 리더의 마음은 종종 불안해지고 초조해진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 때 내면세계가 약한 리더는 억울함, 열등감, 무기력, 미움, 피해망상, 질투 등의 감정이 합쳐져 내면세계가 혼란해지며 결국 파괴적인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 열등감의 근저는 건전한 자존감의 결핍이다. 자존감이 결핍된 리더는 안정감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의 지지를 갈구한다.

개역개정판 성경은 사울이 가졌던 열등감을 적절하게 번역하지 못하고 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삼상 15:17). 이 번역은 사울이 겸손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의 적절한 번역은 이렇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비록 당신의 눈에는 자신이 작아 보일지라도 당신은 이스라엘 지파의 수장이십니다. 주님이 당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사울은 국왕의 신분으로 이스라엘 군대를 통제해야 했다. 그러나 전리품을 탈취하는데 급급했던 백성들의 지지를 잃지 않기 위해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했다(삼상 15:24). 사울이 백성들로부터 온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이유는 사울이 가졌던 자화상이 위풍당당한 군왕의 모습이 아닌 절박하게 백성들의 지지를 원하는 치졸한 인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리더로서 사울이 가졌던 문제의 핵심이다. 초라한 자화상과 겸손은 결코 동의어가 아니다.

40년 광야에서 사역했던 모세는 백성들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내면세계는 견고했다. 그는 하나님께 심정을 토로했고 필요한 경우 사람의 질책과 교정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견고하게 서 있었다. 리더를 견고하게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대중의 인정이나 지지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따른 부르심이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벧전 2:9)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엡 1:1). 리더로서 우리의 가치를 사람의 인정이 아닌 천명 (天命)에 두지 못한다면 리더의 내면세계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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