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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牧會斷想] 못된 뻐꾸기를 통하여

[목회단상 牧會斷想] 못된 뻐꾸기를 통하여

 

지준호 목사(헌츠빌교회)

 

뻐꾸기는 암컷이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수컷은 뱁새, 개개비, 붉은 머리 오목눈이들의 둥지를 기웃거린다. 남의 둥지에 자기 알을 낳고 부화시켜 자라게 하려고…. 이를 위해 다른 새의 둥지를 몰래 훔쳐보고 있던 수컷 뻐꾸기는 알을 품고 있는 어미 새가 잠시 둥지를 비우면 재빨리 암컷 뻐꾸기를 불러 자신의 알 하나를 낳게 한다. 다른 새 알 하나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 버리고….

자기의 알과 뻐꾸기 알이 바뀐 줄 모르는 불쌍한 새는 자신의 따뜻한 체온으로 정성을 다하여 알을 품는다. 다른 새의 품에 있는 뻐꾸기 알은 이미 엄마 배 속에서 부화가 된 상태여서 다른 새들의 알보다 먼저 껍질을 깨고 세상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아직 부화되지 않은 다른 새들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 내버린다. 그리고는 다른 어미 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실컷 먹고 자란다.

공의의 하나님, 질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있는 나에게 질문이 생긴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못된 방법으로 살아가는 못된 뻐꾸기를 지으셨을까? 어쩌다 한번 하는 것도 아니고 본래 악한 성품으로 대를 이으면서 살아가는 뻐꾸기를 ……

질문을 품고 있던 나는 순간 엷은 미소가 지어진다. 영적으로 눈뜨는 기쁨을 누리면서 …. 세상에 뻐꾸기처럼 못되게 살지 않는 존재들이 얼마나 될까!? 먹이가 되는 생명체의 아픔을 배려하지 않고 먹고사는 대부분의 살아 있는 것들과 뻐꾸기의 못된 삶이 무엇이 다를까!? 뻐꾸기에게 억울하게 당하는 새들과 인간들의 양식이 되며 죽어야 하는 존재들이 어떻게 다를까!? 한편에서는 만족하고 한편에서는 고통 속에서 희생당하는 생명의 고리로 연결된 자연 …… 그래서 빼앗기지 않으려, 빼앗으려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것이 생명을 가진 것들의 일상인데….. 결국 뻐꾸기는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의 고리인 질서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존재일 뿐인데…. 나는 나의 생각 짧음을 모르고 교만하게 하나님을 의심하고 뻐꾸기를 미워하였다. 이렇게 어설픈 앎을 가지고 이기적인 계산을 하며 이 사람은 어쩌고 저 사람은 저쩌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미워하면서 살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만 보고서….. 나 같은 사람이 많아 세상에는 상처 준 사람은 없고 상처받은 사람만 많은 모양이다.

못된 뻐꾸기에 의해 진리에 눈떠진 나에게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더 있다. 난 뻐꾸기처럼 살 수도 있고, 뻐꾸기보다 더한 욕심을 부리며 살 수도 있다. 더 빼앗아 더 가지고 더 쌓아 놓으면서 ….. 반대로 속고 이용당하며 빼앗긴 것을 분해하며 불평 속에 살 수도 있다. 그리고 뻐꾸기에 당하는 멍청한 새들처럼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살다 무의미하게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나의 이익과 행복을 포기하고 어리석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

누군가 이야기한다. 사람이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그 사람의 부지런함에 달려 있다고…. 얼핏 들으면 진리인 듯하지만 세상에는 열심히 일하여도 가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 구조가 잘못되어서 ….. 어리석게 메이지 않아야 될 것에 메이고 섬기지 말아야 될 것을 섬겨서…. 그래서 행복을 위해 수고하지만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 바보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아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을 사랑의 품으로 진리 안으로 인도하며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삶, 그래서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인도받으며 잠시의 행복보다 더 큰 영원한 은혜 바라보게 하신 주님께 감사가 나온다.

그러나 이 더 큰 은혜가 동력이 되어 지속적으로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살아야 할 텐데… 교회 일은 열심히 하지만 진정한 사랑 없이, 자신들의 자존심과 체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고, 어리석은 생각에서 나오는 욕심을 충족시킬 수 없다고, 눈 뜬 자의 깊은 생각과 헌신은 안중에도 없고, 겉치레 가득한 종교적인 틀에 갇혀 교회를 교회답지 못하게 하는 이들,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으며 자기주장과 존재감을 세우려 하는 이들로부터 받는 상처에서 생기는 미움에 수시로 메인다.

선하게 포장된 내 욕심을 채워주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꾼이 되는 이들을 미워하며, 나보다 잘 된 이들을 부러워하며 그리고 스스로 위축되어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나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없는 듯, 남의 눈에 노예가 된 채로….. 이러며 난 열심히 구한다. 이기심과 욕심을 채우게 해 달라는 멍청한 구함인지도 모른 채…..

이런 나를 조용히 설득하는 음성이 들린다. 너를 아프게 하는 이들이 모두 주님의 뜻을 알아서 바르게 산다면 목회자가 왜 필요할까!? 죄인들이 회개하고 점점 생명을 얻고 성숙하게 하려고 교회를 세우고 너를 세웠는데…. 그들의 신앙이 어느 수준에 있는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그들의 상황을 바로 알아 그에 맞는 인도를 해야 하는데…. 때로는 이해하며, 때로는 모른 척하고, 때로는 훈계하며, 때로는 격려하고, 때로는 가르치며, 때로는 모범을 보이며, 때로는 기다리며, 때로는 용기를 주며…. 이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를 구하여야 하는데…..

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구함도 있지만 잘못된 구함도 있음에 눈이 떠진다. 그리고 고운 목소리와 아름다운 깃털로 탈을 쓴 못된 뻐꾸기처럼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본다. 못된 뻐꾸기를 통하여 진리를 깨우치고 나를 보게 하시며 생명의 길로 바르게 인도하시는 신비한 비밀을 품고 난 하늘을 바라보며 웃음을 웃는다. 주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을 하나님의 음성이 되게 하시며 나를 설득하시며 인도해 주시는 사랑이 영혼 깊이에서 느껴지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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