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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牧會斷想] 두 어린이의 다툼

[목회단상 牧會斷想] 두 어린이의 다툼

 

지준호 목사(헌츠빌교회)

 

두 어린이가 다툰다. 한 어린이는 1+1=2라 하고, 한 어린이는 1+1=1, 2, 3, 4, 5, 6, 7, 8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다고…. 다툼을 지켜보던 선생님이 두 어린이에게 질문을 한다. 무엇이 문제냐고…. 한 어린이가 두 연필을 하나하나 마루 바닥에 탕탕 소리 나게 놓으며 대답을 한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이렇게 둘이 되잖아요!” 이에 질세라 다른 어린이가 어미 토끼와 새끼들을 가리키며 주장을 한다. “암컷과 수컷이 하나가 되면 새끼가 2, 3, 4, 5, 8마리 다양하게 될 수 있잖아요!” 한다.

두 어린이의 주장을 다 듣고 난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한다. “둘 다 맞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그런데 모르는 것이 하나 있어. 그래서 맞는 이야기를 서로 하면서 다투는 거야. 무생물에서는 1+1=2가 되지. 이렇게 무생물에서 나타나는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 물리이고 이 법칙을 설명하는 언어가 수학이지. 그러나 생물은 무생물에서 나타나는 법칙과 달라. 생물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신비한 일이 벌어지곤 하지. 하위 계층에는 없는 특성이나 행동이 상위 계층에서 자발적으로 돌연히 출현하는 현상과 불시에 솟아나는 특성이 있어. 이를 창발성(emergent property)이라 부르지. 물론 현대 과학이 이 창발성에서 일정한 법칙들을 발견해가고는 있지만 …… 그래서 무생물에서 일어나는 법칙을 가지고 생물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가 없고, 생물에서 일어나는 법칙을 무생물에 적용할 수가 없지. 그리고 이 세상은 창발성으로 설명되는 생물과 물리와 수학 공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무생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지. 이렇게 다른 법칙들을 서로 이해하며 하나님의 신비한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더라면 서로 새로운 것을 깨달으며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오히려 다투고 있었던 것이지. 이렇게 두 다른 법칙이 어우러져 있는 세상을 이해하며 때로는 수학으로 때로는 창발성으로 보면서 하나님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은 지혜 중의 지혜이지.” 두 어린이는 선생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툼을 하던 친구의 얼굴을 보며 싱거운 웃음을 웃는다.

이 세상은 무생물과 생물뿐 아니라 어둠과 빛, 남과 여, 공의와 사랑 등등 같은 법칙으로 이해될 수 없는 짝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한쪽의 시각으로 다른 쪽을 판단하면 다툼이 일어난다. 이렇게 세상에 다른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성경이 형성되어 있다. 특별히 공의와 사랑이…. 그래서 말씀을 읽으며 나에게 공의를 말씀하시는지 사랑을 말씀하시는 지를 분별하는 것은 영적인 눈뜸의 기초이다. 그리고 공의 없는 사랑이 없고, 사랑 없는 공의도 바른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기본이다.

공의는 무생물에서 발생하는 수학 공식 같아서 단순하게 판단하고 정죄하기가 쉽지만 사랑이라는 것을 적용하지 않으면 율법주의의 칼이 되어 상처를 주거나 죽이기까지 한다. 반대로 사랑을 이야기하며 공의를 무시하면 은혜스러워 좋은 듯하나 사랑이 방종이 되어 세상을 혼돈스럽게 한다.

그래서 하나인 성경을 읽으며 공의를 말씀하시려 하는지 사랑을 말씀하시려 하는지 분별하지 못할 때 믿음 안에서 서로 다투게 된다. 그리고 사랑 없는 공의를 말하고 공의 없는 사랑을 말할 때 그 사랑과 공의는 모두가 허망한 것이 되게 된다. 이러한 기본을 모르는 어설픈 성경 지식이 오히려 우리를 해 되게 할 때가 있다. 성경을 읽으며 정직한 영이 되어 공의를 말씀하시는지, 사랑을 말씀하시는지 분별할 때 성경은 나를 인도하시는 선한 은혜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는데…. 특히 공의는 나에게 적용을 하고 사랑은 타인을 향하여 적용하며 서로를 존중하며 미처 이해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몰랐다” “생각이 짧았다” “미안하다” 이야기하면 새롭게 주시는 은혜와 하나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될 텐데…… 우리는 종종 서로의 다름을 만날 때 성경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곤 한다. 율법에 교리에 종 된 시각을 가지고… 본질에서 떠난 성서 해석을 하면서….

그래서 생명을 구원하고 성숙시키기 위하여 있는 교리와 율법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다툼을 만든다. 장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은혜의 품으로 인도하는 일을 효과적으로 잘하기 위하여 두는 행정 조직의 한 직분인데… 그래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서로 정죄하고 미워하며 싸우다니…… 비 본질을 가지고 본질을 흐리게 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보고 무어라 말할까? 주님이 주시는 생명을 얻고 은혜 안에서 성숙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오히려 교리와 율법에 메여하는 싸움을 보고 하나님을 외면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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