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화 목사의 하.나.우 이야기 (33)] “parchment에서 pavement으로”
IOO(Impact Of One) 재생산연구소장 박인화 목사
“parchment에서 pavement으로”
기숙사 생활을 한 적도 없고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다. 외아들로 자라고 일찍 결혼해서 어머니와 아내가 늘 음식을 챙겨주었다. 옆에서 늘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만들 줄 아는 음식은 데워 먹거나 다 된 인스턴트 음식을 끓여서 먹는 정도이다. 아내가 투병 중일 때, 부엌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주방 용기들이 어디 있는지 몰라 그릇을 꺼내려면 부엌 찬장 문을 모두 열어놓고 찾아야 했을 정도다. 해주는 음식만 먹었을 때는 몰랐다. 그러나 직접 부엌에 들어가면서 음식 만드는 과정의 수고와 이후의 설거지와 정리도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함을 실감했다. 제자재생산 훈련을 하면서 늘 반복했던 말이 있다.
- Tell me, I will FORGET, (말로만 하면 잊어버립니다)
- Show me, I will REMEMBER, (보여주면 기억합니다)
- Involve me, and I will UNDERSTAND. (참여하면 이해합니다).
전쟁에 능한 군인이 되려면 훈련장(Training ground)과 전쟁터(Battle ground)가 있어야 한다. 전신갑주를 입는 목적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나는 매주 경찰들과 만난다. 경찰은 총, taser(전기총), 두 개의 수갑, 곤봉, 무전기, 가슴에 다는 카메라 등 약 40파운드 무게를 몸에 부착하고 공무를 시작한다. 달라스의 여름은 얼마나 더운가! 40파운드 무장을 하고 도망가는 범인을 쫓아가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무장을 해야만 이유는 “언제 무기를 든 범인과 막닥칠지 모른다”고 하면서 “평상시는 무겁고 불편하지만, 생명을 구하는 고마운 장비”라고 하였다.
경찰의 수고와 고충을 몰랐을 때는 경찰이나 경찰차가 가까이 지나면 순간 차선을 바꿔 가급적 멀리 했다. 그러나 경찰들과 매주 만나 채플린 사역을 하면서 가까이 다가가려고 한다. 경찰국장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만나면 함께 순찰차를 탄 경찰의 이름을 언급하고 감사와 칭찬을 부탁한다.
매달 받아보는 침례신문이 우체통으로 배달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지나는지 몰랐다. 2월 중순, 아틀란타에서 침례신문 이사회가 있었다. 침례신문 ‘이사’로 섬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름만 이사였다. 그러나 이사회에 참석하여 침례신문이 한인총회를 잘 섬기려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또한, 어떻게 침례신문이 배달되는지 함께 참여해 보자는 제안에 신문을 비닐봉지에 넣고, 목회자나 교회 주소가 적힌 라벨을 붙이는 일을 했다. 신체적으로 부자유로운 20여 명의 학생들이 불편한 몸으로 자원봉사 하는 모습에서 신문이 배달되기까지 “이런 수고가 있었구나…”를 처음 목격했다. 이사 목사님들, 사모님들과 함께 몸을 굽히고 주소 라벨을 붙이니 점점 허리가 불편하고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겪는 불편을 이전에 누군가 감당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침례신문 이사회 모임은 유익하고 좋았다. 무엇보다 목사님들과 교회 우체통으로 신문 배달이 가능하도록 주소 라벨을 붙인 불편한 현장 체험이 가장 좋았다. 1세기 팔레스타인의 길은 지금처럼 세련된 길이 아니었다. 사람도 지나고 각종 동물도 지났다. 동물들이 배설물을 쏟아내고 비라도 오면, 그 길을 걷는 사람의 발은 더럽고 악취가 난다. 사람 몸에서 가장 못생긴 지체가 발인데, 그런 발을 아름답게 하는 처방이 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0:15b)
parchment에서 pavement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