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수다(21) – 개척교회 목사가 사람 대접도 받아보다

김영하 목사(샬롬선교교회, 미주)
개척교회 목사가 사람 대접도 받아보다
아들의 첫돌이 막 지났을 때 서울에서 막 개척해서 교회를 시작했다.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예배당은 싸늘하고 음침했다. 교인이 하나도 없이 개척을 했기에 아내와 기어 다니는 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다보면 어느덧 열린 문틈으로 나간 아들을 잡으러 아내도 나가서 혼자 할렐루야를 외치며 설교를 하는 날도 많았다.
널찍한 예배당과 많은 교인을 둔 목회자들은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골목길의 개척교회의 목사는 흔히 받는 상처가 있다. 섬길만한 교회를 찾는다며 전화를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교회와 목회의 비전을 소개하다보면 나중에 꼭 몇 명의 교인이 모이냐고 묻는다. 그러다가 자신이 예상한 숫자보다 적으면 황급히 전화를 끊는다. 이런 일을 몇 번 당하자 나는 3-400명 정도 모인다고 했다. 그러자 전화를 한 사람이 갑자기 태도가 바뀌며 더 적극적으로 교회에 대해 물었다. 목사는 성도가 많아야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느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일단 기선을 제압했으니 목회관에 대해 설교하듯이 설명한 후에 주소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예배시간에 밖에 얼씬거리는 사람이 있는 것을 느껴 나갔을 때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저렇게 작은 예배당에 도저히 그 인원이 들어갈 수 없음을 판단한 듯하다. 그렇다고 내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300명에서 400명 사이를 의미하는 말로 3-400명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3명에서 400명 사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나만의 착각이지만.
아들의 분유를 사 먹일 돈이 모자라서 물을 두 배로 타서 먹이니 아기가 자꾸 설사를 했다. 그런 와중에 어른들은 전도가 되지 않으니 동네 놀이터로 향했다.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20원짜리 쭈쭈바를 사주며 교회에 오라고 전도했다. 그중의 한 아이가 20원짜리 쭈쭈바는 안 먹는다며 50원짜리를 사주면 먹겠다고 했다. 순간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아들에게는 분유도 제대로 사주지 못하면서 이 아이들에게는 전도하려고 쭈쭈바를 사주는 내가 참 나쁜 아빠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런 나를 듬직한 남편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까?
그래도 쭈쭈바 때문인지 아이들이 몰려오고, 점차 학생들이 오더니 장년들이 출석하기 시작했다. 마침 지방에서 사역하던 어느 나이 많은 여 전도사님이 등록하여 협력하게 되었다. 그 분은 작은 건물을 가지고 있어서 월세를 받으며 생활했다. 어느 날 월세로 받은 10만 원 짜리 수표가 도난수표여서 경찰서에 출두하라는 서류를 받고 사시나무 떨듯이 내게로 왔다. 같이 경찰서에 동행했다.
같이 온 목사라고 소개하는 나를 향해 대뜸 교인이 몇 명이나 모이냐고 했다. ‘여기서도 교인 수를 따지나?’ 속으로 생각했지만, 형사 앞에서 3-400명이라고 할 수는 없기에 30-40명 정도 모인다고 했다. 형사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초라해 보였는지 복도에 나가있으라고 한 후 전도사님에게 큰소리로 취조하듯이 수표에 대해 따졌다. 전도사님은 형사 앞에서 자신이 지은 죄도 아니지만, 더욱 떨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저러다가는 없는 죄도 만들겠다싶었다. 마침 선교에 관한 일로 안면이 있던 검찰청에 근무하는 모 장로님이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 사정을 설명한 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설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조금 후에 그 형사가 전화를 받더니 벌떡 일어나 공손하게 나를 불렀다. 커피를 타주며 간단하게 조서만 받고 보내 드릴 것이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경찰서 밖까지 배웅하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명함까지 주었다. 개척교회 목사가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는 순간이었다. 그날 나는 아주 가끔은 개척교회 목사도 이정도의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