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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스턴 칼럼-안지영]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드러나는가? (1)

[미드웨스턴 칼럼-안지영]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드러나는가? (1)

안지영 목사 (나눔교회 은퇴목사/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부교수)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드러나는가? (1)

교회에서 내 귀에 박히도록 들었던 표어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이었습니다. 천주교도 하나님 중심과 교회 중심에는 그다지 개신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 중심’은 그 무게감이 개신교에 훨씬 실려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종교 개혁 때, 성경이 해방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천주교의 신부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으니까요. 그러나 종교 개혁을 계기로 모든 믿는 자들이 차별없이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찾게 된 거지요. 게다가 인쇄술의 발전과 성경을 각 민족의 언어로 번역을 할 수 있게 되어, 성경의 보급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도 ‘말씀 중심’이라는 문구를 매우 중요시 여겨왔습니다. 한국 교회 치고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곳은 한 군데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 중심’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지에 대한 이해의 편차가 교회마다 매우 큰 것 같습니다. 또한 이 ‘말씀 중심’을 ‘설교’와 연계하여 생각하는 경우도 꽤 많은 것 같더군요. 예배 때 대표 기도에, “주의 종이신 우리 목사님께서 주의 말씀을 전하실 때, 우리 모두 ‘믿음으로 아멘’으로 화답하게 하시고…” 라는 내용이 거의 빠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기도 내용에서 보듯이,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는 것에 의문을 다는 이들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성도들이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는 경향이 한국 교회 안에는 여전히 팽배한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목사의 설교에 의문을 가져서는 안 되는 불문율이 교회 안에 자리잡게 만든 원인이 되었지요. 이렇게 되면, 스탠포드 대학교의 폴 킴(Paul Kim) 교수가, “질문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라고 했듯이, ‘질문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가 될 것이 매우 자명합니다. 이와 같이,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고 맹목적 신뢰를 보낸다면 한국 교회는 모래 위에 세운, 그야말로 취약한 교회가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한국 교회가 하나님 말씀에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가끔씩 들곤 합니다. 한국 교회는 하나님 말씀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는 한데, 그 말씀의 의미를 찾는 데는 그다지 진지하지 않은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고는 그 말씀의 겉표면에 나타나는 의미로만 만족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채, 더 이상의 깊은 의미를 찾으려는 진지함이 잘 보이지 않거든요. 그것도 교회에서 배운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성경 내용이 그간 배운 것에서 그리 달라질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성경 읽기가 지루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렇게 지루한 성경 읽기를 극복하려고 다양한 읽기 프로그램을 시도해 보지만, 성경 읽기가 즐겁기 보다는 의무감이 더 앞서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몇 번 읽었는지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고, 많이 읽은 것으로 그 사람의 영성을 가늠하려는 분위기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은 누구 하나 부인하지 않지만, 그 말씀에 진지하지 않은 것은 그 뜻을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라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의 해석만이 있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그 다음에 읽을 때는 또 새로운 의미를 만나게 되고, 그때마다 감탄하게 되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해석이 다 타당한 해석이 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설교가 말씀을 인용하지만, 그 인용된 말씀의 해석이 성경이 드러내는 하나님 나라의 정신 혹은 가치관과 다른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되니까요. 예를 들어,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풍성한 삶을 살도록 되어있다는 설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복을 내리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경우는 우리의 영적인 영역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겁니다. 그 영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기 때문이며, 곧 교회에 헌신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받으려면, 교회에 충성을 해야 한다는 기복신앙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는 고지론도 여전히 그 힘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유행했던, 한 도시를 하나님의 도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벌이는 ‘땅 밟기’도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이 성 주위를 돌았던 것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다분히 그 본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의 태도가 교회의 건강성을 해치는 요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성경 해석을 할 경우에, 선택한 본문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배경을 살펴야 합니다. 또한 본문의 전후 문맥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그 본문이 속한 책 전체를 살펴야 하고요. 더불어, 그 본문의 문학적 분석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의 과정을 잘 숙지하고 말씀 읽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일반 성도보다는 목회자가 거의 유일할 겁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책무가 중요합니다. 바울도 에베소교회에 전한 편지에서 목사는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얘기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평신도라고 해서 좀 더 진지하게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바라기는 일반 성도들도 가능하다면 그렇게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으면 합니다.

하지만 목회자가 신학 훈련 때 받은 성경 해석의 원리를 설교 준비하는 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설교해야 하는 사역 환경의 열악한 면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일주일 동안 교회에서 열리는 여러 예배, 기도회 모임을 위한 설교 준비가 목회자에게 큰 중압감을 느끼게 합니다. 특히 작은 교회의 목회자는 설교 외에 행정을 처리해야 하는 것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 됩니다. 게다가 재정적 문제도 겹치게 돼 설교자가 설교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할 뿐 아니라, 피로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지체들이 다양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 해석에 있어서 빼놓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소는 말씀 읽기가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차원을 넘어서 소그룹 차원에서 함께 배우기가 뒤따라야 한다는 겁니다. 개인적인 배움은 자칫 잘못하면 한쪽으로 치우치기 쉽지만, 소그룹 안에서 함께 배울 때, 우리는 균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깨닫고 배운 것을 서로 나눌 때, 우리 모두가 성장할 수 있기에 소그룹에서 함께 배우는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성경이 일관되게 말하는 핵심이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을 알게 됩니다. 창세기부터 마지막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지지부진한 것처럼 보이는지, 언제 그 나라가 드러날 것인지, 누가 그 나라를 드러낼 것인지, 어디에서 그 나라가 드러날 것인지,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성경 읽기를 지속하게 되면, 우리는 성경 본문이 말하려는 바를 제대로 깨닫게 되는 거지요. 이래야 우리가 갈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인식이 바뀔 때 비로소 사고의 전환이 가능해집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성경 배우기를 매우 진지하고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해야 합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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