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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균 목사의 설교이야기] 바울의 설교에 나타난 청중과의 소통 (6)

[권석균 목사의 설교이야기]  바울의 설교에 나타난 청중과의 소통 (6)

권석균 목사 – 남침례신학교 설교학박사(Ph.D.)
글로벌신학대학원 총장, 아틀란타지구촌교회

바울의 설교에 나타난 청중과의 소통 (6)

바울의 두 번째 설교는 사도행전 14장 6-15절에 나오는 루스드라에서의 설교다. 본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6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13 성 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루스드라는 안디옥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도시다. 이 도시에는 성전이 없었다. 그 곳에서의 청중은 농부들이었으며, 교육 수준이 낮아 많은 사람들이 미신에 사로잡혀 있었다. 바울은 이 도시에서 한 앉은뱅이를 고치게 된다. 우리는 앉은뱅이를 고치는 과정에서 바울에게 청중의 상태를 파악하는 영적인 통찰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바울은 나면서 앉은뱅이인 그 사람을 주목하여 보았을 때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행 14:9)이 있는 것을 간파하였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고쳤을 때 그곳의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이라고 불렀다.

여기에 나오는 앉은뱅이 사건은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앉은뱅이와 비슷한 면을 보인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고친 것처럼 바울이 앉은뱅이를 치유하는 기사를 부각함으로, 누가는 베드로의 사도직과 동등한 바울의 사도 직분을 입증한다. 누가는 또한 베드로가 유대인의 사도임에 비해,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대등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루스드라에는 아직도 옛 다신교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나바는 쓰스(제우스)라하고 바울은 허메(헤르메스)라 불렀다.

루스드라에서의 설교는 외침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하는 무리에게 뛰어 들어가 외치며 그들의 옷을 찢었다. 그들은 청중들의 의혹을 풀어주고 그들이 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청중들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옷을 찢고…뛰어 들어가서 소리지른 것”은 청중에 대한 적응의 원칙을 잠시 동안 사용하지 못한 것이었다. 바울이 그의 옷을 찢은 것은 하나님께 모독이 일어났을 때 하는 유대인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이었다. 이 행동으로 그는 루가오니아인에게 있어서 유대인으로 접근한 것이 되었다. 다시 말해, 바울이 그의 지나친 행동으로 인해 청중과 동일시하는데 실패한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여기서 학자들이 의문시하는 것은 그들의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단순히 제사 지내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면 그들은 청중에게 성공적으로 반응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전도자로서 보다 큰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주민들을 개종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서라고 강하게 권고한 바울의 설교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학자들은 루스드라에서의 바울의 설교를 실패작이었고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바울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에 대한 그의 성실성을 입증하였고, 그의 말과 행동은 아주 훌륭했다. 설교자가 경험할 수 있는 유혹이 이러한 경우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자가 청중들에게 환영받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설교자 자신이 영광을 받고 싶은 유혹이 온다면, 청중에의 적응력 같은 원칙을 차라리 잊어버리고 바울의 과감한 행동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설교자가 청중의 입맛에만 맞는 메시지를 전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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