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단상 牧會斷想] 주의 음성 가득 품은 아침 동산에 올라
![[목회단상 牧會斷想] 주의 음성 가득 품은 아침 동산에 올라](https://i0.wp.com/bpnews.us/wp-content/uploads/2023/01/%EC%A7%80%EC%A4%80%ED%98%B8-%EB%AA%A9%EC%82%AC%EB%8B%98.gif?resize=1200%2C640&ssl=1)

“주의 음성 가득 품은 아침 동산에 올라”
이른 새벽 Ralph Park의 동산을 오른다. 한발 한발 언덕을 딛고 또 디뎌 몸이 촉촉해질 때면 몽롱하던 머리 세포에 한껏 물먹은 새싹처럼 생기가 돋는다. 그렇게 송골송골 맺힌 이마의 땀방울을 훔치며 정상에 서면 산들바람이 스킨십하듯 부드럽게 땀을 식힌다. 난 홀로가 아님을 느낀다. 여유로워진 눈으로 동녘을 바라보면 하얗게 열리는 캘리포니아 하늘이 서서히 핑크빛으로 물든다. 그러곤 때로는 새털, 때로는 뭉개, 때로는 조개 모양을 한 구름에 하양, 파랑, 검정으로 덧칠을 한다.
넋 잃고 바라보는 내게 하늘이 “너도 예쁜 예술 작품 만들고 싶지?”라며 말을 걸었다. 이때 핑크빛 하늘 끝에서 붉은 태양이 이글거리며 떠 올랐다. “너도 할 수 있어. 해봐”라며.
“서쪽 하늘은?” 하는 호기심이 느닷없이 일었다. 얼른 뒤돌아 서녘 하늘을 바라보았다. 파란 바다에 한가로이 떠 있는 은빛 쪽배 같은 반달이 이야기했다. “이제부턴 하얀 도화지 위에만 그리지 말고 파란 종이 위에 흰 물감으로 그려봐. 다르게 지어지는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거든.”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처럼 내 안에서 상상과 창의력이 팔딱거렸다. 은빛 반달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지구는 왜 스스로 돌고 또 도는 것일까? 나까지 자신의 주위를 돌게 하면서. 그리고 왜 태양 주위를 충성스럽게 끊임없이 도는 것일까?”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새롭게 시작하게 하려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문득 Raph Park 동산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이 시시해 보였다. 그때였다. 발밑에서 야들야들하게 흔들리고 있는 풀잎이 눈에 들었다. 잎새엔 애처로이 맑고 영롱한 이슬방울이 놓여 있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눈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중얼거렸다.
이슬방울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우리는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었어. 그러다 어두운 밤, 외로움과 두려움과 추위에 바들거리다 서로를 꼭 껴안고 또 껴안았어. 하나 된 몸으로 무거워진 우리는 그만 풀잎에 내려앉았지. 그런데 들풀들이 우리를 생명의 양식으로 삼는 거 있지.”
지구와 달과 태양이 돌고 돌며 만드는 서사가 뇌에서 별빛처럼 반짝거렸다. 이슬방울이 이야기를 이었다. “태양이 곧 우리를 산산이 부수어 새털만큼이나 가볍게 만들어 버릴걸. 그러곤 높은 하늘로 데리고 갈 거야. 구름을 만들고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네가 반한 아름다움을 내일 또 짓겠지. 그러다 우리를 다시 세상에 뿌려 살아 있는 것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고, 더러운 것들 모두를 쓸어 바다로 보낼걸. 그리고 그들을 넓은 가슴에 모두 품어버리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순수하게 되어 거룩한 하늘로 들려 올려지는 신비가 보였다. 기울기가 0이 아니면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성품을 어여삐 여겨 생명의 근원이 되게 하는 오묘함도 보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물방울은 시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고, 넓고 큰 바다가 되는 경이로움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안개가 되어 환상적인 세상도 만들고, 눈이 되어 세상을 하얗게 덮어 거룩하게도 하는 기묘함에 무릎을 ‘탁’ 쳤다.
“그럴 때면 너희는 거룩한 세상이 되었다고 강아지들과 함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좋아하더라. 사랑하는 연인들은 한쪽 주머니 안에 함께 손을 넣어 만지작거리며 데이트를 즐기고, 부모들은 자녀들과 어우러져 예쁜 눈썹과 코와 입이 있는 눈사람을 만들고… 우리가 맑은 고드름이 될 때면 너희들은 기묘한 예술 작품인 양 감상하다 갑자기 우리를 부러뜨려 입속에 넣고 시원함을 즐기고.”
난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알량한 지식 하나를 알거나, 칭찬받거나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자리까지 높이 오르려는 멍청이, 나보다 못한 존재들을 만나면 깔보고 함부로 대하는 찌질이, 실패했을 땐 고개를 힘없이 떨구고 남 탓으로 돌리거나 숨기려 하는 못난이. 어설프게 아는 지식과 근원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소문을 듣고 ‘죽일 놈 살릴 놈’ 세상과 사람들을 정죄하며 사회를 혼돈케 하는 칠뜨기. 그러면서 생각과 몸이 낡아지는 나. 그리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 같아 의기소침해지는 나. 그러며 편함에 안주하려 낡고 냄새나는 옷으로 단단한 껍질을 만들어 입곤 꼰대가 되는 내가 보여 외로워졌다.
의기소침해진 내게 이슬방울이 이야기했다. “괜찮아. 그래서 우리는 돌고 또 돌며 너희를 새롭게 하려는 거야. 서사도 만들고, 사랑도 하고 하나 되어 행복을 누리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라고…” 이런 깊은 뜻을 헤아릴 겨를도 없이 나에게 쉽고 유익한 한 해가 돼달라고 매일 매년 똑같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빌기만 했다.
모든 피조물은 나름의 고유한 품성을 가지며 생존 본능에 따라 산다. 하지만 인간은 그에 더하여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 느낄 수 있는 감각과 감정, 이해할 수 있는 생각과 이성 모두를 종합하여 주어진 환경을 분석하고 다스리는 존재다. 그래서 그 능력에 따라 자신과 주위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해를 끼치기도 한다. 그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과 역사에 주님의 음성을 품게 하고 우리에게 말씀하심이 오묘하다.
불완전한 지식, 감각과 감정, 이성으로 갈등과 망설임, 두려움과 죄에 빠지기도, 비루해지기도 했던 어리석은 지난날이 보였다. 하지만 새로움을 위해 주어진 시간, 낮아지고 작아지며 귀 기울여 보고 들으며 맑고 영롱한 눈동자를 만드는 새해가 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밤엔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 새벽엔 하늘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작품들을 더 많이 바라보기로 했다. 콘크리트와 철과 비닐로 만든 생명 없는 것들에 둘러싸여 사는 세상에 더욱 더… 밤새 맑고 초롱초롱한 별들이 이슬방울에 새겨진 듯이, 맑고 영롱한 별들이 내 눈동자에 새겨지겠지? 그리고 낮은 자에게는 한없이 낮아지고, 높은 자들에게는 한없이 높아져 공평하고 당당하게 주어진 환경을 다스리며 아름다운 서사를 만들도록 도우시겠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새해를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 꿈에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주의 음성 가득 품은 동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사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