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관 목사의 목회의 길에서] “딱 반반을 살았습니다”
“딱 반반을 살았습니다”
며칠 전 캘리포니아 주최근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아진 사실인데, 제가 인생의 반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고, 나머지 반은 하나님을 알고 살았더군요. 제가 서른한 살 때 예수님을 영접했고, 올해 제 나이가 예순둘이니까 정확히 반반인 것이지요. 그것이 깨달아지고 나니 곧바로 내가 하나님을 모르고 31년을 살았던 그때의 나와 비교해 31년을 하나님과 동행한 후인 지금의 나는 얼마나 더 나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많이 다른 것 같지 않아서 부끄럽기도 하고 이렇게 큰 차이가 없는가 싶은 것이 긴장감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왜 다르지 않겠습니까? 많이 다르겠지요. 일단은 성품적으로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저의 성질을 제가 이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화가 나면 그 화가 내 모든 행동을 주도하도록 했지만, 지금은 어떤 일에도 그렇게 화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화가 내 행동을 지배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큰 변화네요.
두 번째는 고난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그때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세상이 꺼질 것처럼 실망하고 괴로워하고, 낙담했습니다. 따라서 삶은 늘 눈앞에 있는 기쁨과 낙담 사이에서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난이 온다고 해도 여유를 부릴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 괴로움이 다는 아니고 나에게 훨씬 더 의미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 거야 하면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특별히 ‘큰일 났다!’라는 사태를 맞을 때 더욱더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큰일 났다 싶으면 안절부절못하고 정신을 못 차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큰일 났다!’ 싶다가도 금방 “그게 뭐 그리 큰일이야. 큰일 아니야. 그럼 이렇게 하면 되고, 저렇게 돌아가면 되고, 괜찮아”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고는 잠잠히 기도하지요.
하지만 어떤 것보다도 더 큰 것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기쁨입니다. 그때는 늘 병적인 고독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인생은 고독하다. 나는 늘 혼자이고 외로워”라는 생각에 빠져들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외롭지 않습니다. 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을 부르고 대화를 나누고 하소연하고… 외롭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혹시 내가 그때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막연히 나이가 들면 인격이 좋아진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나이가 들면 더 조급해지고 성급해지고 그렇습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몰랐다면 지금쯤, 만약 인생이 잘 풀렸다면 은퇴하고 친구들과 골프나 치면서 은근히 나를 과시하며 잘난 척을 했을 것이고, 잘 안 풀렸다면 술이나 마시며 인생을 원망하고 있었겠지요. 그러니 많이 변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31년 하나님 없이 살았던 삶을 Cancel out 시키는 데 31년이 걸렸구나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시작하는 다음 10년, 그다음 10년은 정말 다르고 싶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정말 차이가 나는 인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